탁족도濯足圖 / 안도현
전주 누옥에서 백담사 만해마을까지 과속을 일삼아 달려왔으니 무릇 짐승의 그것처럼 뜨거워졌겠다 싶은 두 발을 계곡물 속으로 밀어 넣는다
잠깐 김밥과 물을 찾아 휴게소 상인들의 점포 앞으로 누추하게 벌벌거리며 걸음을 뗀 적 있으나 그래도 오줌을 눌 때는 제깐에 제법 사이좋게 떨어져 있던 두 발이다
내 발바닥에 달라붙어 딱딱하게 굳고 뜨거워진 길이여, 불 꺼지는 소리를 내며 식으라, 나는 내심 고사高士인양 물의 속살에 발을 의탁하였다
허나, 빈한한 하체와 허리띠 밖으로 삐져나오려는 아랫배의 과격이 적이 민망하여 애써 한참을 생각느니, 길을 달려왔으나 정작 길을 데리고 오지는 못하였다는 자책이 물소리가 되어 발목을 묶는다
일찍이 들으니 연암 같은 이는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도 물소리가 귀에 닿지 않았다는데, 내 귓속에는 일생을 헛짚고 살아온 물소리가 몇 두레박이다 헛짚어도 길을 여는 저 물줄기를 장하게 생각할지언정 무심하게 흘려보낼 수는 없다
그러다가 또 내 두 발은 비유컨대 물속의 교각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나는 물속에 발을 담그고 두 개의 허공을 뚫고 말았던 것, 내 몸이 앉아 있는 허공이었던 것, 필경에는 아무도 건널 수 없어 스스로 건너가야만 하는 허공 같은 다리였던 것
어쩔거나, 물에 뜬구름들 불러보아 비빔밥을 만들어 저자의 중생들에게 한 양푼씩 먹일까, 수면에 율랑율랑 무늬를 짓는 빛의 시문詩文을 베껴두었다가 밤들면 어두운 창가에 걸어나 볼까, 이 계곡에 산다는 어름치의 집을 방문해 그 새끼들에게 공책값이라도 쥐여 줄까, 이렇게 적어도 과하지 않을지
창비가 주관하는 백석문학상의 제11회 수상자로 안도현 시인이 6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이다.
이번 시집은 안도현 시인이 4년 만에 선보이는 아홉 번째 시집이다. 시인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아름다운 소재들을 뛰어난 감성으로 노래하며 우리가 잊었거나 잃어버린 기억들을 호명하고 있다. 특히 음식을 통해 편안하고 따뜻했던 공동체의 원형을 복원함으로써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는 고운 마음의 세계를 고스란히 살려내었다. 조용하고 정성스럽게 밥을 짓던 어머니의 손길처럼 잔잔히 마음의 양식을 만드는 시인의 시들은 그리움을 전달받은 독자들의 가슴을 배불려준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인 고은 시인은 "이 시집은 백석 세계에 가장 잘 접속된 근친 언어로 되어 있다"며 "안도현의 대중성은 상당한 오해에 덮여 있음으로써 그의 실질성은 그동안 그런 오해와 상관없이 도도하게 일관되어온 바 있다"고 평했다.
제9회 창비신인시인상에는 주하림씨, 제12회 창비신인소설상에는 이반장씨, 제16회 창비신인평론상에는 김영희씨가 각각 선정됐다.
상금은 백석문학상이 1천만 원, 신인소설상이 700만원, 신인시인과 평론상이 각각 500만원이며, 시상식은 25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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