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지펴야겠다 / 박철
올 가을엔 작업실을 하나 마련해야겠다
눈 내리는 밤길 달려갈 사나이처럼
따뜻하고 맞춤한 악수의 체온을---
무슨 무슨 오피스텔 몇 호가 아니라
어디 어디 원룸 몇 층이 아니라
00군 00면 산 0번지가 아니라
비 듣는 연립주택 지하 몇 호가 아니라
저 별빛 속에 조금 더 뒤 어둠 속에
허공의 햇살 속에 불멸의 외침 속에
당신의 속삭임 속에 다시 피는 꽃잎 속에
막차의 운전수 등 뒤에 임진강 변 초병의 졸음 속에
참중나무 가지 끝에 광장의 입맞춤 속에
피뢰침의 뒷주머니에 등굣길 뽑기장수의 연탄불 속에
나의 작은 책상을 하나 놓아두어야겠다
지우개똥 수북히 주변은 너저분하고
나는 외롭게 긴 글을 한 편 써야겠다
세상의 그늘에 기름을 부어야겠다
불을 지펴야겠다
아름다운 가을 날 나는 새로운 안식처에서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을 한 번 해야겠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서설이 내리기 전 하나의 방을 마련해야겠다
창비가 주관하는 제12회 백석문학상에 시인 박철 씨(50·사진)가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로 수상자로 선정됐다.
박철 시인은 1987년 <창작과비평>에 「김포」 외 열네 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하였고 이번 신작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에서 시인은 누구나가 겪고 느끼는 “사소한 기억”과 일상의 마디마디를 돌려 말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세상을 향한 단호하고도 따뜻한 애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시의 자리를 거닐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백석문학상에 주어지는 상금은 1000만 원이며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자로는 황시운 씨(34)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차고 날카로운 달’이며 상금은 3000만 원이다. 시상식은 24일 오후 6시 반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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