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 도종환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 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머지 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
창비는 제13회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도종환(57) 씨를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며 상금은 1천만 원이다.
심사위원단은 "이순에 가까운 시인이 발견한 의외로운 시적 경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 혹은 '다른 시간'의 겸허한 수락"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와 함께 제11회 창비신인시인상은 시 '돼지들' 등 9편을 쓴 시인 이지호(41) 씨에게 돌아갔다. 또 소설 '팽-부풀어오르다'의 천정완(31) 씨는 제14회 창비신인소설상을 받는다.
상금은 각각 소설 700만 원, 시 500만 원이며 수상작과 심사평은 계간 '창작과비평' 올해 겨울호에 실린다.
이들 수상작에 대한 시상식은 오는 22일 오후 6시 30분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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