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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 도종환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 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머지 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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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는 제13회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도종환(57) 씨를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며 상금은 1천만 원이다.

 

심사위원단은 "이순에 가까운 시인이 발견한 의외로운 시적 경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 혹은 '다른 시간'의 겸허한 수락"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와 함께 제11회 창비신인시인상은 시 '돼지들' 9편을 쓴 시인 이지호(41) 씨에게 돌아갔다. 또 소설 '-부풀어오르다'의 천정완(31) 씨는 제14회 창비신인소설상을 받는다.

 

상금은 각각 소설 700만 원, 500만 원이며 수상작과 심사평은 계간 '창작과비평' 올해 겨울호에 실린다.

 

이들 수상작에 대한 시상식은 오는 22일 오후 630분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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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지펴야겠다 / 박철

 

 

올 가을엔 작업실을 하나 마련해야겠다

눈 내리는 밤길 달려갈 사나이처럼

따뜻하고 맞춤한 악수의 체온을---

무슨 무슨 오피스텔 몇 호가 아니라

어디 어디 원룸 몇 층이 아니라

0000면 산 0번지가 아니라

비 듣는 연립주택 지하 몇 호가 아니라

저 별빛 속에 조금 더 뒤 어둠 속에

허공의 햇살 속에 불멸의 외침 속에

당신의 속삭임 속에 다시 피는 꽃잎 속에

막차의 운전수 등 뒤에 임진강 변 초병의 졸음 속에

참중나무 가지 끝에 광장의 입맞춤 속에

피뢰침의 뒷주머니에 등굣길 뽑기장수의 연탄불 속에

나의 작은 책상을 하나 놓아두어야겠다

지우개똥 수북히 주변은 너저분하고

나는 외롭게 긴 글을 한 편 써야겠다

세상의 그늘에 기름을 부어야겠다

불을 지펴야겠다

아름다운 가을 날 나는 새로운 안식처에서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을 한 번 해야겠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서설이 내리기 전 하나의 방을 마련해야겠다

 

 

 

불을 지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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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가 주관하는 제12회 백석문학상에 시인 박철 씨(50·사진)가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로 수상자로 선정됐다.

 

박철 시인은 1987<창작과비평>김포외 열네 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하였고 이번 신작 시집 불을 지펴야겠다에서 시인은 누구나가 겪고 느끼는 사소한 기억과 일상의 마디마디를 돌려 말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세상을 향한 단호하고도 따뜻한 애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시의 자리를 거닐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백석문학상에 주어지는 상금은 1000만 원이며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자로는 황시운 씨(34)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차고 날카로운 달이며 상금은 3000만 원이다. 시상식은 24일 오후 6시 반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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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족도濯足圖 / 안도현

 

 

전주 누옥에서 백담사 만해마을까지 과속을 일삼아 달려왔으니 무릇 짐승의 그것처럼 뜨거워졌겠다 싶은 두 발을 계곡물 속으로 밀어 넣는다

 

잠깐 김밥과 물을 찾아 휴게소 상인들의 점포 앞으로 누추하게 벌벌거리며 걸음을 뗀 적 있으나 그래도 오줌을 눌 때는 제깐에 제법 사이좋게 떨어져 있던 두 발이다

 

내 발바닥에 달라붙어 딱딱하게 굳고 뜨거워진 길이여, 불 꺼지는 소리를 내며 식으라, 나는 내심 고사高士인양 물의 속살에 발을 의탁하였다

 

허나, 빈한한 하체와 허리띠 밖으로 삐져나오려는 아랫배의 과격이 적이 민망하여 애써 한참을 생각느니, 길을 달려왔으나 정작 길을 데리고 오지는 못하였다는 자책이 물소리가 되어 발목을 묶는다

 

일찍이 들으니 연암 같은 이는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도 물소리가 귀에 닿지 않았다는데, 내 귓속에는 일생을 헛짚고 살아온 물소리가 몇 두레박이다 헛짚어도 길을 여는 저 물줄기를 장하게 생각할지언정 무심하게 흘려보낼 수는 없다

 

그러다가 또 내 두 발은 비유컨대 물속의 교각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나는 물속에 발을 담그고 두 개의 허공을 뚫고 말았던 것, 내 몸이 앉아 있는 허공이었던 것, 필경에는 아무도 건널 수 없어 스스로 건너가야만 하는 허공 같은 다리였던 것

 

어쩔거나, 물에 뜬구름들 불러보아 비빔밥을 만들어 저자의 중생들에게 한 양푼씩 먹일까, 수면에 율랑율랑 무늬를 짓는 빛의 시문詩文을 베껴두었다가 밤들면 어두운 창가에 걸어나 볼까, 이 계곡에 산다는 어름치의 집을 방문해 그 새끼들에게 공책값이라도 쥐여 줄까, 이렇게 적어도 과하지 않을지

 

 

 

간절하게 참 철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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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가 주관하는 백석문학상의 제11회 수상자로 안도현 시인이 6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이다.

 

이번 시집은 안도현 시인이 4년 만에 선보이는 아홉 번째 시집이다. 시인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아름다운 소재들을 뛰어난 감성으로 노래하며 우리가 잊었거나 잃어버린 기억들을 호명하고 있다. 특히 음식을 통해 편안하고 따뜻했던 공동체의 원형을 복원함으로써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는 고운 마음의 세계를 고스란히 살려내었다. 조용하고 정성스럽게 밥을 짓던 어머니의 손길처럼 잔잔히 마음의 양식을 만드는 시인의 시들은 그리움을 전달받은 독자들의 가슴을 배불려준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인 고은 시인은 "이 시집은 백석 세계에 가장 잘 접속된 근친 언어로 되어 있다""안도현의 대중성은 상당한 오해에 덮여 있음으로써 그의 실질성은 그동안 그런 오해와 상관없이 도도하게 일관되어온 바 있다"고 평했다.

 

9회 창비신인시인상에는 주하림씨, 12회 창비신인소설상에는 이반장씨, 16회 창비신인평론상에는 김영희씨가 각각 선정됐다.

 

상금은 백석문학상이 1천만 원, 신인소설상이 700만원, 신인시인과 평론상이 각각 500만원이며, 시상식은 25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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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 김해자

 

 

물길 뚫고 전진하는 정어리떼를 보았는가

고만고만한 것들이 어떻게 말도 없이 서로 알아서

제 각각 한 자리를 잡아 어떤 놈은 머리가 되고

어떤 놈은 허리가 되고 꼬리도 되면서 한몸 이루어

물길 헤쳐 나아가는 늠름한 정어리떼를 보았는가

난바다 물너울 헤치고 인도양 지나 남아프리카까지

가다가 어떤 놈은 가오리떼 입속으로 삼켜지고

가다가 어떤 놈은 군함새의 부리에 찢겨지고

가다가 어떤 놈은 거대한 고래상어의 먹이가 되지만

죽음이 삼키는 마지막 순간까지 빙글빙글 춤추듯

나아가는 수십만 정어리떼,

끝내는 살아남아 다음 생을 낳고야 마는

푸른 목숨들의 일렁이는 춤사위를 보았는가

수많은 하나가 모여 하나를 이루었다면

하나가 가고 하나가 태어난다면

죽음이란 애당초 없는 것

삶이 저리 찬란한 율동이라면

죽음 또한 축제가 아니겠느냐

영원 또한 저기 있지 않겠는가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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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제10회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김해자(47) 시인을 선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축제'(2007).

 

심사위원단은 백석문학상의 첫 여성 수상자인 김 시인의 작품에 대해 "병과 죽음과 노동의 기억이 주조를 이루는 삶의 저 한 켠 구석진 곳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고통의 얼굴들이 다른 시집들과 구별되었다"라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1천만 원이 수여된다.

 

한편 창비가 제정한 제8회 창비신인시인상에 백상웅(27)씨의 '각목' 4, 15회 창비신인평론상에는 이경진(26)씨의 '속물들의 윤리학-정이현론'이 각각 당선됐다. 수상자에게는 각각 상금 500만 원이 수여된다. 한편 신인소설상 부문은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백석문학상과 창비 신인문학상 시상식은 다음 달 20일 오후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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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백석문학상으로 김정환(53)씨의 시집 드러냄과 드러남’(2007)이 받는다.

 

심사위원단은 예술론과 문명사적 사유를 일상의 언어로 탐구하면서 유려한 상상력과 활달한 리듬을 창출, 요즘 보기드믄 시적 형상을 구축했다고 평가해 22일 심사위원회에서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드러남과 드러냄1졸업앨범-죽음과 일상의 모뉴멘탈리티’, 2오래된 나들이-삶이 늙어간다는 것으로 구성됐다.
이들 시집은 느슨한 듯 긴밀하게 서로를 떠받치며 현현(顯現)하는 시간의 총체로 일상을 감각하고 사유하는 시인의 대담한 기획 속에 드러남과 드러냄의 한 몸으로 묶여 있다.

 

6000행이 넘는 시편들은 40년 가까운 한국근대의 복잡다다한 시간이 시인의 몸에 남긴 곤경과 난해를 그 자체로 감당한다. 동시에 일상의 시적 현현을 역설의 명징성으로 폭발시킨 보기 드문 광경에 이르고 있다.

 

창비가 최근 2년내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백석문학상은 시인 백석(白石·1912~1995)의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정신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옛 유명 요정 대원각여주인 김영한(1916~1999)이 출연한 기금으로 9710월 제정됐다. 백석의 영원한 연인 자야(子夜)’가 바로 김영한이다.

 

시상식은 1123일 오후 630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드러남과 드러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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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시인은 민중들의 고통과 좌절, 희망을 리얼리즘적으로 형상화한 시들을 주로 발표한 한국의 대표 시인이다. 시대의 진실을 밝히려는 결의와 열린 감성으로 우리 시대의 언어에 일대 변혁을 몰고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집을 비롯해 장편소설, 인문ㆍ역사서, 클래식 음악 해설서, 인터뷰집 등 등단 후 30년 동안 100여 권에 달하는 저작을 펴낸 정력적인 저술가다.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1980년 계간 창작과 비평에 시 마포, 강변동네에서외 다섯 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제9회 백석문학상, 2009년 제8회 아름다운 작가상을 수상했다. 노동자문화운동연합회 의장, 한국작가회의 상임이사,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사무국 국장, 한국문학학교 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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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미시령 / 고형렬

 

 

저만큼 밤11시 불빛 저만큼

보이는 용대리 굽은 길가에 차를 세워

도어를 열고 나와 달을 보다가

물소리를 듣는다

다시 차를 타고 이 밤 딸그락,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걸듯

시동을 걸고

천천히 미시령으로 향하는

11시 내 몸의 불빛 두 줄기, 휘어지며

모든 차를 앞서가게 하고

미시령에 올라서서

, 기척을 내 보지만

두려워하는 천불동 달처럼 복받친 마음

우리 무슨 특별한 약속은 없었지만

잠드는 속초 불빛을 보니

그는 가고 없구나

시의 행간은 얼마나 성성하게 가야 하는지

생수 한 통 다 마시고

허전하단 말도 허공에 주지 않을 뿐더러

- 그 사람 다시 생각하지 않으리

- 그 사람 미워 다시 오지 않으리

 

 

 

밤 미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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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가 주관하는 제8회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고형렬(52)씨가 16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집 '밤 미시령'(창비)이다.

 

1979'현대문학'으로 등단한 고씨는 '성에꽃 눈부처' '김포 운호가든집에서' 등의 시집을 냈으며 지훈문학상(2003) 일연문학상(2006) 등을 수상했다.

 

심사위원회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적 화법을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시인은 인생과 고향에 대한 변하지 않은 정감의 세계를 비장하고도 씩씩한 언어로 그려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상금은 1천만원이다.

 

이와 함께 제6'창비 신인 시인상'에 고은강(35)씨의 '푸른 꽃' 5편이, 13'창비 신인 평론상'에는 김종훈(34)씨의 '문태준-황병승론'이 선정됐다. 상금은 각각 500만원이다.

 

백석문학상 및 창비 신인문학상 시상식은 1129일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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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길 / 정양

 

 

흐린 하늘 밑

들 건너 마을이 자꾸 멀어 보인다

눈에 묻힌 길은 아예 잃어버렸다

들판을 무작정 가로지른다

발목이 아무데나 푹푹 빠진다

 

잃어버린 길 위에 까마귀떼

까마귀떼도 길을 잃었나보다

어디로 날아가지도 않고

눈밭에 우두커니들 서 있거나

느릿느릿 서성거린다

 

길이 보여도 길을 잃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고

길이란 잃어버리려고 있는 거라고

구구구구 두런거리며 눈 덮인 들판을 조금씩 비켜주는 까마귀떼

 

들끓는 검은 피에 취하여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눈길을 여는 까마귀를 따라간다

또 눈이 오려는지

먼 마을 연기가 낮게 깔린다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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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가 주관하는 제7회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중견시인 정양(鄭洋63) 전주 우석대 교수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집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문학동네)이다.

 

김제에서 태어난 정 시인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돼 등단했다. 그는 상은 내가 탄 것이 아니라 시집이 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심사위원회는 "이 시집은 시인이 오랜 세월에 걸쳐 다독거려온 양심과 고독을 마치 다정한 이웃들과 이야기하는 듯한 방식으로 풀어냄으로써,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예지와 훈기를 내뿜고 있다"고 평했다.

 

최근 2년 내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하는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순정한 문학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1997년 제정됐다. 상금은 1천만원이며 시상식은 18일 오후 630분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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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호수 / 이시영

 

 

호수

 

갈매기들이 한강까지 날아와 쉰 적이 있다.

여기가 바다인 줄, 바다의 큰 호수인 줄 알고.

 

 

목련나무가 한겨울에 솜털 폭풍을 달았다

여차하면 하늘을 향해 발사하겠다는 듯이

 

8.15

 

기념식에서 돌아온 독립유공자 유족이 올해도 어김없이 비밀천막 문을 열고 들어간다

조국의 하늘은 저리 푸르건만

 

아침

 

너는 왜 여기까지 날아와 새가 되었니?

동몽골 고원의 푸른 草地에 내려앉아 아침 부리를 닦고 있는 작은 참새여

 

경찰은 물러가라!

 

옛날 동숭동 서울 문리대 시절, 교련반대 시위로 교문을 사이에 두고 학생과 경찰이 지루하게 장기 대치중일 때였다. 도저히 못참겠다는 듯 학생 하나가 대열에서 뛰쳐나오더니 맨 앞의 핸드마이크를 빼앗아 쥐고 경찰을 향해 외쳤다. “경찰은 물러가라! 경찰은 물러가라!” 놀란 경찰이 후다닥 방패를 챙겨들고 일단 진격 자세를 취하자 핸드마이크가 다시 한 번 외쳤다. “경찰은 물러가라! 경찰은 물러가라! 만약 안 물러가면, 만약 안 물러가면 안 물러가는 걸로 간주하겠다!” 그래서 경찰도 와르르 웃고 학생들도 한바탕 배꼽을 잡고 웃었다는데 그 학생의 이름은 뒷날의 유명한 소리꾼인 임진택이었다.

 

즈가버지

 

전라도 여인들은 남편을 부를 때 꼭 즈가버지라고 했다. 즈그(that) 아버지라는, 자식을 매개로 한 일종의 간접호칭인 셈인데 수많은 즈가버지들은 또 즈거매들의 목소리를 용케도 알아들어 회관 같은 데 한꾸네 모여 있다가도 즈가버지 여기 짬 보시오 이하면 왜 그려?” 하면서 그 중의 한 사내가 진짜 고개를 쏘옥 내밀고 나오는 것이었다.

 

취미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남산 중앙정보부, 그곳에 들어가 신원진술서 취미란에 식사라고 썼다가 치도곤을 당한 유쾌한 학생이 있었다. “뭐 이 새끼 취미가 식사라고? 이 새끼 이거 순 유물론자 아냐?” 그 일로 그는 조사도 받기 전에 밤새도록 수사관 두 명에게 돌아가며 맞았다는데, 가난이 원죄이던 시절 그는 런닝구 바람에 책을 끼고 신당동에서 동숭동까지 걸어 다닌 강골의 고학생이었다.

 

베스트셀러 시인들을 위하여

 

누구나 다 한때는 순결한 영혼들이었다. 독자들이 그 영혼에 입 맞추자 그들은 배부른 돼지들이 되어 부끄러움도 잊고 제 분홍 머리들을 서점의 진열대 위에 올려놓은 채 호호 웃고 있으니 우리가 이제 싸워야 할 대상은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 바로 저 상업의 노예들인지도 모른다.

 

* ‘호호 웃는 돼지머리이미지는 이성복의 시집 , 입이 없는 것들139쪽에서 빌려왔다.

 

 

 

바다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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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가 주관하는 제6회 백석문학상에 이시영 시인의 시집 <바다호수>(문학동네)가 선정되었다. 이 상은 창비사가 시인 백석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 주관하고 있다.

 

심사위원회는 수상작이 개인의 난숙한 체험이 폭발하듯 응집된 시집으로, 정밀한 관찰력에 온기어린 서정성이 결합하여 개인과 역사가 절묘하게 조우하는 장면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시의 본령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상금은 1천만 원이며 시상식은 1124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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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꽃이 불편하다 / 박영근

 

 

모를 일이다 내 눈앞에 환하게 피어나는

저 꽃덩어리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 돌리는 거

불붙듯 피어나

속속잎까지 벌어지는 저것 앞에서 헐떡이다

몸뚱어리가 시체처럼 굳어지는 거

그거

밤새 술 마시며 너를 부르다

네가 오면 쌍소리에 발길질하는 거

비바람에 한꺼번에 떨어져 뒹구는 꽃떨기

그 빛바랜 입술에 침을 내뱉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흐느끼는 거

 

내 끝내 혼자 살려는 이유

네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저 꽃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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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문학상 운영위원회는 '5회 백석문학상'에 시집저 꽃이 불편하다(2002)의 저자 박영근(45)씨를 선정했다.

 

박씨는 1981反詩(6)에 시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취업공고판 앞에서」「대열」「김미순」「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등의 시집을 펴냈으며 1994년 제12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다.

 

심사위원회는 "박씨의 시가 세계의 고통과 자신의 고통을 동시에 맨몸으로 감내하는 치열한 고투를 통해 지난 시대의 이념적 좌절을 넘어서는 감동적인 아름다움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다음달 26일 오후 6시 서울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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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야 / 신대철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1

 

 

서울이나 평양에서 오지 않고

사우스 코리아나 노스 코리아에서 오지 않고

우리가 어린 시절 맨 처음 구릉에 올라 마주친 달빛을 눈에 가슴에 다리에 받아와 꿈을 뒤척이던 그 금강 그 개마고원에서 온 날은 구름에 살얼음이 잡히고 광륜을 단 두 개의 달이 마주 떠 얼음 안개 속을 스치는 화살 다리를 비추고 있었던가요.

 

화살 다리* 그 아래

낮은 판잣집 지붕 밑에서 에스키모들은

술과 마약과 달러와 민주주의에 취해 잠들어 있었고

우리는 빙평선을 사이에 두고 무엇을 찾으려 했던가요.

 

그날 나도 모르게 다가가 어디서 오셨느냐고 묻자 당신은 '개마고원요' 하고 얼어 있는 나와 갑자기 내 뒤에서 저절로 맞춰진 우리의 환한 얼굴까지 함께 보았지요. 그때 나는 비로소 우리가 서로 幻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잠시 한 얼굴로 극광을 보면서 광륜을 단 두개의 달을 굴려 극야에서 주야로, 다시 백야를 향해 가고 싶었던가요.

 

극야를 넘어 67일째, 마침내

15분간 떠 있던

금강에서 개마고원에서 동시에 떠오른 해.

 

* 에스키모 설화에 의하면 외로운 별과 눈을 맞추면 잡혀간다고 한다. 한 아이가 아버지의 말을 어기고 별과 눈을 맞춰 별나라로 잡혀갔다.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오기 위해 별을 향해 무수히 화살을 쐈다. 날아가는 화살 꽁무니에 화살을 쏴 화살 다리를 만들고 그 다리로 별나라에 올라가 마침내 아들을 구해왔다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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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시인 백석(白石)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위해 제정한 백석문학상 제4회 수상자로 시인 신대철(申大澈.57)씨가 9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집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문학과지성사)이다.

 

신씨의 시집은 "국내 뿐 아니라 세계 오지 탐사를 통해 고도의 집중력으로 과거의 상처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함으로써 한국시가 다다를 수 있는 한 극점을 형상화했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시상식은 내달 27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리며, 상금은 1천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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