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광욕하는 가구 / 최영철
지난 홍수에 젖은 세간들이
골목 양지에 앉아 햇할을 쬐고 있다
그러지 않았으면 햇볕 볼 일 한 번도 없었을
늙은 몸뚱이들이 쭈글쭈글해진 배를 말리고 있다
긁히고 눅눅해진 피부
등이 굽은 문짝 사이로 구멍 뚫린 퇴행성 관절이
삐걱거리며 엎드린다
그 사이 당신도 많이 상했군
진한 햇살 쪽으로 서로 몸을 디밀다가
몰라보게 야윈 어깨를 알아보고 알은체한다
살 델라 조심해, 몸을 뒤집어주며
작년만 해도 팽팽하던 의자의 발목이 절룩거린다
풀죽고 곰팡이 슨 허섭쓰레기,
버리기도 힘들었던 가난들이
아랫도리 털 때마다 먼지로 풀풀 달아난다
여기까지 오게 한 음지의 근육들
탈탈 털어 말린 얼굴들이 햇살에 쨍쨍해진다
백석문학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창작과비평사가 주관하는 제2회 백석문학상에 최영철(崔泳喆·44)씨의 근작 시집 『일광욕하는 가구』[문학과지성사]가 선정됐다. 경남 창녕 출신으로 1986년 등단한 최씨는 『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 등 5권의 시집을 상재했고,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중이다.
이 시집은 살아남은 것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의지의 노래이다. 시인은 평범한 일상과 사물들 가운데서 생명에 대한 의지를 끌어내어 먼지를 털어내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게 반짝이는가를 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여기 담긴 시들에는 회복기 환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선에 어린 감탄과 따뜻함, 그리고 생동감에 대한 외경이 가득 담겨 있다. 그리고 시인은 이 의지의 노래를 잠언조로 되풀이하지 않고 싱싱한 이미지와 따뜻한 유머 속에 풀어 섞음으로써 찬탄할 만한 힘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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