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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 김영무

 

 

암선고를 받은 순간부터

(암은 언제나 진단이 아니라 선고다)

너의 세상은 환해진다

컴퓨터 화면 위를 떠도는 창문처럼

기억들이 날아다닌다

원시의 잠재의식도 살아나서

뚜벅뚜벅 걸어오고, 저 우주에 있는 너의 미래의

별똥들이 쏟아진다

어둠은 추방되고, 명암도 무늬도 사라진,

두께도 깊이도 무게도 지워진,

노숙과 밥굶기와 편안한 잠과 따뜻한 한끼의

경계가 무너지고, 모든 칸막이가 허물어진

환하디 환한 나라

시간의 뿌리와 공간의 돌쩌귀가

뽑혀나간 너의 현실은 안과 밖 따로 없이

무한복제로 자가증식하는

, 디지털 테크놀로지 최첨단

암세포들의 세상

지독한 오염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미국자리공, 황소개구리, 실지렁이, 거머리가 못 되어

시름시름 힘을 잃고 약자로 전락한 어느 순간부터

경쟁력 없는 자 솎아버리는 구조조정의

덫에 걸린 너의 삶은

순백색 빛의 나라, 가상현실

 

 

 

가상현실

 

nefing.com

 

 

창작과비평사가 주관하는 제3회 백석(白石)문학상 수상작에 김영무(57·사진) 서울대 영문과 교수의 시집 가상현실(문학동네·2001)이 선정됐다. 신경림 시인 등 심시위원은 이 시집이 삶의 경의로움을 감동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근대문명의 위기를 밝게 통찰한 작품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김영무의 가상현실은 몇 겹의 '가상현실'의 코드를 가지고 있는 다층적 텍스트이다. 암의 은유도 사회 현실의 코드, 역사의 코드, 종교의 코드, 제국주의적 코드 등 여러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다의성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질병을 이만큼 은유화시켜 역사, 사회, 문화적 맥락으로 확산시켜 다의성을 획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시인의 개인적 질병의 텍스트가 사회, 역사, 정치, 문화적 질병의 텍스트로 확산되어 몇 겹의 은유로 해석될 수 있는 점이 이 시집의 탁월한 아름다움이라 하겠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시상식은 1130일 오후 6시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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