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호수 / 이시영
호수
갈매기들이 한강까지 날아와 쉰 적이 있다.
여기가 바다인 줄, 바다의 큰 호수인 줄 알고.
꽃
목련나무가 한겨울에 솜털 폭풍을 달았다
여차하면 하늘을 향해 발사하겠다는 듯이
8.15
기념식에서 돌아온 독립유공자 유족이 올해도 어김없이 비밀천막 문을 열고 들어간다
조국의 하늘은 저리 푸르건만
아침
너는 왜 여기까지 날아와 새가 되었니?
동몽골 고원의 푸른 草地에 내려앉아 아침 부리를 닦고 있는 작은 참새여
경찰은 물러가라!
옛날 동숭동 서울 문리대 시절, 교련반대 시위로 교문을 사이에 두고 학생과 경찰이 지루하게 장기 대치중일 때였다. 도저히 못참겠다는 듯 학생 하나가 대열에서 뛰쳐나오더니 맨 앞의 핸드마이크를 빼앗아 쥐고 경찰을 향해 외쳤다. “경찰은 물러가라! 경찰은 물러가라!” 놀란 경찰이 후다닥 방패를 챙겨들고 일단 진격 자세를 취하자 핸드마이크가 다시 한 번 외쳤다. “경찰은 물러가라! 경찰은 물러가라! 만약 안 물러가면, 만약 안 물러가면 안 물러가는 걸로 간주하겠다!” 그래서 경찰도 와르르 웃고 학생들도 한바탕 배꼽을 잡고 웃었다는데 그 학생의 이름은 뒷날의 유명한 소리꾼인 임진택이었다.
즈가버지
전라도 여인들은 남편을 부를 때 꼭 즈가버지라고 했다. 즈그(that) 아버지라는, 자식을 매개로 한 일종의 간접호칭인 셈인데 수많은 즈가버지들은 또 즈거매들의 목소리를 용케도 알아들어 회관 같은 데 한꾸네 모여 있다가도 “즈가버지 여기 짬 보시오 이”하면 “왜 그려?” 하면서 그 중의 한 사내가 진짜 고개를 쏘옥 내밀고 나오는 것이었다.
취미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남산 중앙정보부, 그곳에 들어가 신원진술서 취미란에 ‘식사’라고 썼다가 치도곤을 당한 유쾌한 학생이 있었다. “뭐 이 새끼 취미가 식사라고? 이 새끼 이거 순 유물론자 아냐?” 그 일로 그는 조사도 받기 전에 밤새도록 수사관 두 명에게 돌아가며 맞았다는데, 가난이 원죄이던 시절 그는 런닝구 바람에 책을 끼고 신당동에서 동숭동까지 걸어 다닌 강골의 고학생이었다.
베스트셀러 시인들을 위하여
누구나 다 한때는 순결한 영혼들이었다. 독자들이 그 영혼에 입 맞추자 그들은 배부른 돼지들이 되어 부끄러움도 잊고 제 분홍 머리들을 서점의 진열대 위에 올려놓은 채 호호 웃고 있으니 우리가 이제 싸워야 할 대상은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 바로 저 상업의 노예들인지도 모른다.
* ‘호호 웃는 돼지머리’ 이미지는 이성복의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 139쪽에서 빌려왔다.
창비가 주관하는 제6회 백석문학상에 이시영 시인의 시집 <바다호수>(문학동네)가 선정되었다. 이 상은 창비사가 시인 백석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 주관하고 있다.
심사위원회는 수상작이 “개인의 난숙한 체험이 폭발하듯 응집된 시집으로, 정밀한 관찰력에 온기어린 서정성이 결합하여 개인과 역사가 절묘하게 조우하는 장면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시의 본령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상금은 1천만 원이며 시상식은 11월 24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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