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상 〕복숭아 / 전선용
달이 몰락한 골목에서 떨어진 유년을 줍는다
술 취한 사내가 더위에 끌려가는 언덕배기
복숭아를 담은 봉지가 비틀거린다
보름달을 따왔노라고 소리치며 귀가한 아버지
물컹한 복숭아를 잠든 내 입에 물리곤
까칠한 턱수염을 볼에 비볐다
얼큰하게 술이 오른 얼굴만큼 불그레한 복숭아
복숭아 과육이 배여 나온 진득한 기억은
머릿속에 포스트잇처럼 붙었다가
여름이면 밤하늘을 물끄러미 보게 했다
그 해 별은 왜 그리 반짝이던지,
별이란 별은 죄다 당신별이라 했다
별을 유난히 좋아해서 복숭 씨 같은 별을 삼키고
울대에서 키우길 서너 달,
아버지는 북쪽 하늘에 점지해 둔 별자리로 갔다
복숭아 밭뙈기 몇 마지기 살 돈을
왜 병원에 주느냐고 버틴 건 순전히 나 때문
늦은 귀가도 별을 사랑한 것도 다 자식을 위해서였다
학명에도 없는 복숭아 별자리가 내 기억 속에 들어서고
아버지와 나만 아는 밤하늘에
복숭아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제 11회 복숭아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박영우 (시인,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심사평에 앞서 올해로 11년째를 맞이하는 복숭아문학상 심사를 맞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또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문학상 운영과 지역문학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오신 청미문학회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투고한 작품들은 저마다 사연을 담은 나름대로 수준을 갖춘 의미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심사를 위해 몇 가지 기준을 마련하였다. 첫째로, 얼마나 시적 요소들을 충족시키고 있는가. 예를 들면 운율, 이미지, 신선한 표현 등이다. 둘째로,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공감력 있게 풀어내고 있는가. 셋째,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작품 속에 얼마나 잘 녹여내고 있는가. 넷째, 앞의 요소들을 얼마나 완성도 있게 한 편의 시로 형상화시키고 있는가 등이었다.
이러한 기준에 맞춰 최종심에 다섯 편의 작품을 선정하였다. <복숭아>11, <복숭아의 꿈> 19, <무른 복숭아> 21, <입, 덫> 18, <장날> 1 이 그 작품들이다. 그 중에서도 <복숭아>와 <복숭아의 꿈>이 대상을 두고 겨루게 되었다. 두 작품 모두 나름대로의 장점을 갖고 있는 수작이었다. 먼저 <복숭아>는 일단 ‘복숭아’라는 시적 대상을 시적화자인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별’의 이미지와 연결시키면서 이끌어가는 시상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그에 비해 <복숭아의 꿈>은 시적 대상에 대한 참신한 착상과 표현이 시선을 끌게 하였다. 특히 ‘복숭아’의 이미지를 화자의 내면 깊이 있게 끌어들여 ‘당신’에게 다가가고자하는 심리를 밀도 있게 표현하고 있는 점이 맘에 들었다. 그러나 고심 끝에 <복숭아>를 대상으로 결정하였다. 그 이유는 시적 대상인 ‘복숭아’의 이미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살려내고 시적 표현이나 구성 면에서도 완성도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들도 결코 뒤지지 않는 수작들이었다. 특히 <입, 덫>은 참신한 발상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제재의 시적 형상화 면에서 아쉬운 작품이었다. <장날>도 사연을 제재의 특성과 잘 연결시켜 전개하고 있는 점은 좋았으나 너무 이야기가 길게 풀어진 느낌이었다. 시적 응축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무른 복숭아>도 내용이 공감을 일으키게 하는 작품이었다. 특히 ‘복숭아’와 ‘아버지’를 연결시켜 가족을 위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표현해주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으나, 좀 더 세부적이고 자연스런 시적 흐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수상자들의 입상을 축하드리며 더 좋은 작품으로 문단에서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복숭아 문학상 당선소감문>
더위가 그렇게 기승을 부리더니 소나기 한줄금으로 한기를 느끼는 아침,
복숭아 문학상 당선 소식을 접했다,
여름 내내 무거웠던 골방이 가벼워지는 기분
쪽문을 열고 성큼 다가온 가을을 맞는다.
그저 감사한 마음 뿐,
우리시 임보, 홍해리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포엠바움 정 찬을 포함한
정형무, 조홍래, 그리고 일일이 호명하지 못한 문우들께도 고마운 마음이다.
더불어 졸시를 대상에 올려주신 심사위원께도 머리를 읊조려 경의를 표한다.
문학에 목이 말라 허덕이는 내게 단비 같은 이 수상은 시 농사의 밑거름이 될 터,
더 아름다운 글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이 더운 여름을 잘 견뎌준 어머니께도 감사드리며
물심양면으로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모든 지인들과 기쁨을 같이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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