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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복숭아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권상진 외

 

[대상]
별자리 / 권상진


 

1
고향집 어귀 삐뚜름한 복숭아밭에   
붉고 선명한 별자리가 내려앉았다
밤하늘의 한 끝을 힘껏 당겨서
대문 앞 삽자루에 묶어 놓았는지
별들의 간격 사이에 향기가 팽팽하다

 

실직 이후 섭섭게 팔려간 저 밭뙈기가
가난한 식구들의 몇 계절을 일구는 동안
아버지는 반듯한 밭 하나를 가슴에 품었다

 

'복숭아나무를 심을란다, 어메가 참 좋아하셨지'

 

흙도 한 줌 없는 마음밭에는 올해도
헛꽃만 피었다 지고 있었다

 

2
모깃불 연기가 구수한 밤이었다
할머니는 평상에 누워 거문고자리 돌고래자리를
손가락 그림으로 그려주었고 할머니 옆구리에
기대앉은 나는 소쿠리 가득한 복숭아를 꺼내
공중에 그려놓은 별자리를 본뜨는 여름이었다

 

아들 보다 자주 본다는 읍내 의사는
할머니가 복숭아밭에서 키운 것은 별이라 했다
땅에서 하늘을 경작하는 일을 치매 농법이라 하였고
노구에서는 이제 별의 향기가 난다 하였다

 

할머니의 거처를 복숭아밭으로 옮기는 날
나는 하늘에 별자리 하나를 새로 그려 넣었고
아버지는 밭 가장자리에 묏자리를 그려 넣었다
빚이 반, 밭주인 인정이 반인 좁은 거처에   
옮겨온 별의 향기가 파다하다

 

'올해는 복숭아가 풍년인갑다'
   
아버지 목소리가 환한 별자리를 헤치며
우주의 귀퉁이를 돌아 나오고 있었다

 

 

 


[최우수상]

입덧 / 제인자

 


내가 눈이 작은 이유는
복숭아를 못 먹어서라고
한 알만 먹었어도 당신을 닮았을 거라고
나만 보면 찾으시네 잃어버린 복숭아
엄마의 과원에 탯줄 매달고 심장소리 전송할 때
수북이 쌓아 올린 과일가게를 돌며
탐스런 복숭아 곁눈질로 베물고 또 베물고
향기로운 과육 한입 군침 삼키고 또 삼키고
부끄럼 타는 열아홉 새댁의 태기
참을성이 미덕이던 시절이 있었다하네
메슥메슥 게워 내던 한여름의 뒤꼍
매미는 얼마나 자지러지게 울던지...
흐드러져 분홍물 듣던 봉선화는 어떻고...
평생 되풀이하는 울 엄마는 짱짱한 아흔
햇사레복숭아 상자 앞에서 주름마다 웃다가
서러움 북받쳐 입맛이 쓰고
나는 믿을 수 없는 속설을 믿네
복숭아나무 같은 엄마의 자궁
그 푸근한 방으로 숨어들면
정말 눈이 커질까 엄마가 복숭아를 드시면
나는 믿을 수 없는 속설을 믿고
눈이 커다란 아이를 낳았네
농익은 황도 털옷을 벗기자 꼭지에 새겨진
상형문자, 어여쁜 손녀의 배꼽!
엄마 두 볼 가득 단물 고이네
꽃구경 가요 엄마 복사꽃 피면

 

 

 

 

[우수상]

열여덟, 복숭아에게 / 김민정

 


운동장 한가운데 찡그린 얼굴이
쨍한 햇빛에 반짝거리는 모래 알갱이들보다 눈부시네
두근거리는 내 심장의 심박수를 양분 삼아서
그렇게 곧게 자라나고 있는 것일까
마알간 네 얼굴에 온몸이 저려오네
우리 집 마당에도 너를 닮은 아이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가지에 가득 앉아 있어
가지의 지휘를 따라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는 구름처럼
나는 너의 말 한 마디에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유영하며 둥둥 떠다니고
내 마음 속 정원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꽃밭이 생겼어
도화를 따서 꽃잎점을 치는 것이 내 일과야
너도 날 좋아한다 안 한다 좋아한다 안 한다

 

언제부터였을까
밤마다 달님을 가리고 익숙한 얼굴이 고개를 드네
매일 밤, 내 방 창문으로 만월이 찾아오고 있어

 

 

 

 

[우수상]

은퇴 / 박혜은

 

 

수십 년간 일하던 사무실 책상을 정리하듯
엊그제 아버지는 복숭아 과수원을 뒤엎었다
손가락 마디마다 맺힌 굵직한 매듭의 힘으로
복숭아 가지를 하나씩 하나씩 부러뜨리다
마침내는 자식 같던 당신의 나무를
뿌리째 뽑아내고야 만 아버지
밤새 일하고 지쳐 잠든 당신의 손등을 쓸어본다
새벽바람을 맞은 듯 오소소 일어난 살비듬
바스락거리는 그 거친 감촉을 더듬어 본다
언제 한 번 복숭아 과육처럼 촉촉했던 적 있었나
복숭아 열매를 감싼 포장지처럼 버석거릴 뿐
그렇게 메말라 있던 당신의 손이
내 철없던 시절 기억의 창을 열어젖히면
기다렸다는 듯 복숭아 향기가 줄달음질 친다
학교가 파하자마자 잰걸음으로 굽이 길을 돌아
복사꽃처럼 달아오른 뺨을 식히며
시골집 앞마당에 들어서면
가지 끝 조롱조롱 매달린 복숭아를 따주던 당신
처녀의 뺨처럼 물오른 과육을 사이좋게 베어 물 때,
입 안 가득 퍼지던 그 맛이 아직도 달큰한데
이제 당신의 기억은 미각을 잃고
어설프게 추억을 더듬는 둥근 눈은
복숭아나무가 심겨져 있던 구덩이처럼
움푹 팬 채, 메마른 울음을 울고 있다

 

 

 

 

[우수상]

복사뼈 / 고은강

 

 

고속버스가 복사밭을 지난다
복숭아 냄새가 창틈으로 들어오다가
잔상처럼 흩어진다
그새 복숭아 향 유년이 콧속으로 들어온다

 

어릴 적 나무 사이로 숨고 뛰놀던 복사밭 과수원길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진 나의 다리에는
잘 익은 복숭아 한 알이 맺혔다
퉁퉁 부어오른 복사뼈를 보며 울던 나의 유년은
입 속에 달콤한 과일만 넣어주면 조용해졌고
고요를 따라 붓기가 빠져갔다
두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선
엄마 등에 업혀서 지나오던 과수원 길에는
내 주먹보다도 커다란 복숭아를 달고 있는 나무들
묵묵히 수십 개의 복숭아를 견디는 저 관절들이
얼마나 아플지 생각해줄 정신도 없이
복숭아 향에 취해 눈물을 과즙삼아 머금어야 했다
잊고 있던 유년을 다시 맡게 되었을 때
얄궂은 복사뼈는 어느새 부었던 만큼 자라 있었고
버스가 과수원을 다 지나갈 무렵
그리운 나의 복사뼈가 간지러웠다

 

 

 

 

 

 

 

 

 

제10회 복숭아문학상 시부문 심사평 / 박영우 (시인,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올해로 복숭아문학상이 10년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우수한 작품과 신인 발굴을 위해 노력해 오신 박승열 청미문학회장을 비롯한 회원 여러분께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아울러 10년 세월만큼이나 응모 작품의 수준도 해마다 더욱 새로워지고 높아지고 있는 것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생각된다.


    본선에 올라온 작품 중 권상진의 <별자리>, 제인자의 <입덧>, 김민정의 <열여덟, 복숭아에게>, 고은강의 <복사뼈>, 박혜은의 <은퇴>를 최종심에 올리게 되었다. 그 심사 기준은 첫째, 자신의 이야기를 얼마나 시적 특성에 맞게 풀어내고 있는가? 둘째, 표현이나 시상 전개가 제재의 특성이나 주제의식에 맞게 신선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는가? 셋째, 얼마나 독자들에게 공감하고 울림을 주고 있는가?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체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복숭아’라는 제재와 잘 조화시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작품마다 나름대로의 완성도가 있었으나, 너무 자신의 이야기에 치우쳐 운율이나 형식 등이 너무 산문적으로 흘러버리거나, 표현의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한 작품들은 선외로 하였다.


    하지만 최종심에 오른 다섯 편의 작품들은 앞서 제시한 심사 기준들을 충족시키는 작품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권상진의 <별자리>는 특별한 시적 기교를 보이지 않으면서도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 경험을 제재와 연결시키며 시적 형식을 살리면서 서사적으로 이끌어가는 힘이 큰 공감을 주었다. 특히 ‘할머니’, ‘아버지’ 등 가족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고향’, ‘복숭아’라는 제재를 통해 ‘별자리’로 연결시켜나가는 우주적이고 자연적인 상상력이 매우 신선하였다.


제인자의 <입덧>도 제재가 갖는 특성을 ‘입덧’이라는 이미지와 연결시켜 시상을 전개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웠고 마지막 부분에서 ‘손녀의 배꼽’으로 연결되는 상상력이 신선했다. 김민정의 <열여덟, 복숭아에게>는 ‘복숭아’의 특성을 시적화자의 내면과 연결시켜 이미지화시키려는 의도는 좋았으나 좀 더 내밀한 심리나 신선한 표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고은강의 <복사뼈>는 여행 중 우연히 맡게 된 복숭아의 향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유년 시절의 추억을 어머니의 진한 사랑과 복숭아라는 제재의 특성을 잘 연결시켜 이미지화시킨 점이 인상적이었다. 박혜은의 <은퇴>도 공감력을 주는 좋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시의 전반적인 이미지가 너무 우울하고 무거운 느낌이어서 제재의 특성을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어보였다.


    입상을 축하하며 더욱 정진하길 바란다.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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