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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황도의 맛 / 최미숙

울음은 실패를 이해할수록 진합니다

새들의 부리에 떨어진 이들과
적과(摘果)를 통과하지 못한 이들이
상자 속에서 둥글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평생 조연을 떠돌다가 침대 속에 누운
반신불수의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흉터는 베어 물린 과육의 독백입니다
메마른 입술이 중심에서 멀어진 때부터
침상에는 환한 복사꽃이 떨어집니다
단물을 빨리고도 살아남은 명랑한 맛
울음의 안쪽은 순간마다 말랑거립니다

과즙 밖은 무너진 선도仙桃의 세계 

맛은 등급의 세계를 거부합니다
흉터는 동족의 슬픔을 알아챌 수 있고
바닥에 엎드린 울음은 제 어깨를 빌려 줍니다
지상은 과즙 밖의 방향대로 움직일 테지만
울음이 질겨질 때 세계는 격동합니다

한 상자의 B급 황도를 집에 들이고
껍질을 벗겨 내면 단물이 멈추지 않는
아버지의 독백을 편들면서
나는 울음의 맛을 먹고 있습니다

뒷모습을 알아갈수록 맛이 깊어집니다





〔우수상〕복숭아 깎는 날 / 소수아

밤마다 엄마는 복숭아 조각을 머금곤 했다
가는 털이 돋은 몸 안에서
매일 복아(腹兒)의 부피가 팽창했기 때문이다

엎지른 계절에 돋은 튼살의 수만큼
그녀는 과육을 잘라내는 연습을 계속했다 
칼에 벗겨진 껍질이 많아질수록
매일 허공에 쪼그라드는 과실의 부피
가슴 속에 두고 온 허물을 꺼내 
여섯 다리로 재단하는 곤충의 영역처럼
집의 내벽은 복숭아의 단면을 닮아갔다

이따금씩 몸의 균형이 흔들리는 날이면
약사가 쥐어준 알약 봉지를 으깨
입술 사이로 그녀는 한나절을 곱씹었다
혓바닥 위 접질린 담홍색, 
무른 언어를 채집하며
거꾸로 매달린 채 잠결 끝으로 도망친 
자신의 두 발을 잡아 왔다
배를 비집고 나오려는 생명이 움칠댈수록
이불보로 둥글게 말린 몸통은
성장의 역사를 더듬이에 묶고
쉴 새 없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지구 아래로 침몰하는 오늘의 온도가
내일의 잠으로 복사될 즈음
앙글거리는 향기에 엄마는 날숨을 뱉었다
부엌에 놓인 복숭아 바구니
안에 익숙한 얼굴이 올려졌다

입 안 가득 베어 물은 이야기가 저녁의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





〔우수상〕복숭아語 / 서원일

설익은 복숭아 속으로 들어가
가만히 귀 기울이면
부름켜를 오르느라 흐트러진 철자들로 인해
어린 가지들이 부르르 몸 떠는 소리를 듣겠지.
복사꽃이 일러주는 간지러운 문장을
재잘거리는 단어들이
복, 복 따라 소리를 내다가
한 철이 지나는 동안 연한 언어만 듣겠지.
연하다는 것은 포용이라고
초여름 햇살이 포옹하는 소리를 듣겠지.
첫 페이지, 첫 문장이 늘 어려웠어.
자칫 줄거리를 들킬까봐
좁은 행간에 흔들리는 함축을 키우느라
씨방을 키우느라 
씨는 단단하여서 합장주(合掌珠)로 소망을 걷는 소리를 듣겠지.
개요는 가벼운 솜털처럼 일어나
한여름의 뜨거운 클라이맥스를 전개하고 있을 때
하나씩 떨구는 이유들
방금 지나간 소나기처럼 이유들에 젖고 나면
다는 해답을 모른다 해도 각각의 이유들이 함축되어 다가오는
마지막 문장이 떠오를 거야.

그 마지막 문장을 버티고 서 있는 복숭아 한 그루
이제야 너의 제목이 보여
세상을 향해 그토록 해보고 싶다는 너의 언어.

기다림.





〔우수상〕낙과 / 문정안

멍든 것들은 아프다
어제도 당신을 생각했다
아직 보드라운 털을 가진 존재이기를 바랐다
내가, 그대에게
놓치고야 그리운 사람으로 남은 우리가
짓무른 복숭아로 운다
달콤한 눈물은 끈적하게 집요하게 쫓는데
뚜렷한 향기만 지독했다
낙과로 데굴데굴 굴러버린 우리가
아직 나무였던 때를 기억한다
같은 것을 심던 순간을 추억한다
잎보다도 먼저 꽃으로 피어
붉게 따뜻하게 그리하여 뜨거웠던 시간
그 속에서 꽃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름다웠다
초록만 남은 순간마저 싱그러울 수 있었다
빈자리가 공허하다 생각했던 우리가
작은 열매로 익어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
눈물이 났다
함께 있어도 늘 궁금했던 당신이
솜털을 내보였을 때
뜨거운 손들에 멍이 들까 차마 만져보지 못해
그냥 웃어보았다. 설레었다
연약한 것들은 예쁘다
당신과 내가 예뻤다
예뻐서 오래갈 수 없었음을 비로소 알았다
벌레조차 먹지 못한 마음도
소나기에 떨어질 수 있음을 깨닫는 동안
바닥을 구르며 동그랗게 울고 있다
오늘도 당신을 생각한다
아직도 달콤한 나를 주워주기를
멍들이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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