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복숭아문학상 시부문 [대상]
첫사랑
- 나의 황도복숭아나무 / 임상훈
있잖아, 살이 점점 불어갈수록 바람이
싸락싸락 내 여린 잎을 쓸어내렸지 무슨 봄날을 머금은
바람이었나 단단해졌어 내 속의 씨앗이
두근두근 여물면서 말이야 열일곱 살 내 가지들은
햇살보다는 바람으로 자라났지 볼이 살짝 붉어지며
너는 아니 내 꽃잎을 따가며 꽃자리 속
심장 몇 덩이를 가지가지 돋아나게 하던 너
매일 내 마음 속 탱자나무 울타리를 넘어
나를 서리했지 덜 익은 심장이 콰득
네 입 속에서 시큼하게 씹히던 여름날
나는 토방 깊이 뿌리내리며 울창해지는 한 그루
기다림이었네 침이 가득 고이던 잇속 너의
그늘이었네 여름이 깊어 갈수록
내 심장은 물러지고 한 철이었다는 듯
너는 오지 않았지만 있잖아,
불어가는 살 속 퐁 퐁 퐁
네가 뱉은 내 씨앗들이 내 속에 가라앉는 저녁
기억의 나이테는 파문처럼 전신에 퍼진다
열일곱 여름은 그랬지 다른 여름이 또 와도
아픈 꽃자리 뚫고 내 심장들이 앓을 걸 알면서, 그래도,
제3회 복숭아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복숭아의 사랑 / 서 규
우체통 같은 복숭아에서
그대의 편지를 읽는다
봉숭아로 꽃물을 들인
약지의 손톱처럼 꽃잎 음절들이
내재율의 향기로 배어난다
복사꽃 핀 언약의 한때가
깨끗한 마음결 여백에
깊고 고요한 떨림으로 새겨진다
나비가 일군 바람의 길을 따라
하늘하늘 꽃 진 작별이
이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샛별 뜬 샘물에서
정화수를 길어 눈빛을 씻고
햇살에서 뻗어 내린 혈맥을
푸릇한 과육에 올올이 엮었습니다
풀벌레 울음이 글썽한 한밤
그리움으로 돋운 등의 심지에
불씨를 밝혀 만월을 품었습니다
꽃몸살로 신열이 지펴지면
별빛 침으로 속살에 문신을 떠
고통으로 견뎠습니다
열매 한 알을 충만하게 익혀
당신께 고이 바칠 때
기쁨이 차고 넘치는
선한 눈매를 그렸습니다
결실의 축원으로 넘는 하루하루가
값진 생이었습니다
생혈 같은 과즙 한 방울을
허투로 흘릴 수 없는
편지 속 정금正金의 말씀들
향긋한 여운이 죄를 씻기며
해맑은 기운으로 휘감는다
사랑표시로 빚은 문양에
단청빛으로 환해진다
제3회 복숭아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도화-살 / 장 미
소시적 너는
솜털같은 바람도
간지러워서 날아가는 마음이었다.
낯을 붉혔던지
귀부터 발그레져 가던 얼굴은
집집마다 봄바람 다녀간 처녀들 같았다
꿈꾸듯 떠다닐 때에
처녀들 치맛단이 같은 색으로 나폴거렸던
그즈음
너는 누구를 사모했던지
보름달빛에
비쳐보이는 잔상이 있었는가 보다
- 그때부터였을 게다
아름답지만 슬픈 처녀를
너로 불렀던 것은 -
담장 밖으로 손뻗은 가지 하나가 꺾였다.
허울이었던 잔상을 쫓던 너는
온 마음을 슬픔으로 우르르 날려보내고는
하염없이 비춰보던 달의 얼굴을 닮아갔다
이제는
서둘러 가을을 들이려는
그 뺨
수줍음이 번지던 시절이 생각난다
두터운 상처로 엮은 외투
벗은 속살에 입 맞추면
가득 눈물처럼 번지는 진한 香
아직도 속내가 많은 여인이다
소시적 낯붉히던 풋 마음이
향으로 배있는
제3회 복숭아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기억에서 피는 꽃 / 이병희
베어낸 복숭아 나무로
아버지는 군불을 지피셨다
다 피지 못했던
꽃을 기억해낸 걸까
가지 끝에서
붉고 투명한 불꽃이
복사꽃처럼 밝게
꽃을 피운다
푸시시 푸시시 타닥거리며
가지에 앉아 부르던
새들의 소리도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늦은 기억에
아파한다
가지에 매달리던 복숭아 같던
첫사랑을 솎아 버리고
해마다
여름이면 장맛비보다 더 많은
눈물을 과수원에 쏟아내야 했다
첫사랑이 매달리던 그 자리에
올해부터 백촉짜리 전기불로 황도가 열리지만
기억까지 솎아내지 못하겠어
아프다
아궁이 안쪽이 달속처럼 환하다
헛기침 소리 두어번 난다
나는 복숭아 향내 나는 구들방에서
황도를 싼 봉지를 뜯는다
죄를 짓듯 뜯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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