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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부] 미식(美食) / 임대섭

       

숲을 오래 걷는다

숲이 숨을 몰아쉬고 습기가 될 때까지

 

심장은 거꾸로 선 뿌리

 

괴물은 괴물이 되기 위해 제 살부터 씹는다

 

이에 낀 첫 살

맛의 죄

 

심장은 거꾸로 선 뿌리

 

내 피로 나는 무성해진다

바닥의 깊이로 갱신되는 성장 후의 생장

나는 추락의 가능성

 

여린 무릎의 멍이 다년생으로 죽는다

나는 나에게만 미안하다

 

살을 섞는다

 

너를 삼켜도 내 맛이 나

 

침을 삼킨다

머리부터 떨어지기 위해선 얼마나 자라야 할까

한 번에 부서지기 위해선

 

깨진 것들은 잔뜩 웃는 것 같다

 

살을 섞으며 섞이는 건 몸이 아니라 맛이다

 

내 몸 밖에서 무언가 깨지는 것 같은데 내 몸 안에서 무언가 깨지는 것 같은데

숲이 끝났다

 

어둠 속에서 괴물의 입이 밝게 부서진다

뒤엉킨 살덩어리

우리는 이곳에서 다정하다

 

 

 

 

 

[고등부] 오도독뼈 / 김상희

 

그 집 모퉁이에 세 들어 살고 싶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거긴 비 오는 것도 큰일이겠지 싶었다

그녀는 허리가 굽고 배가 나와 설거지를 할 때면

티셔츠의 배 부분이 젖어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안기는

주인의 어린 딸이, 그 딸이 기억하는 어미의 품이

축축하여 비린내가 났다

 

나는 장손이라 오도독뼈를 먹지 못했다 그녀는 소 돼지의

여린 살을 먹지 못했다 그녀는 설거지 더미에서

찾아 낸 오도독뼈를 금덩이인 냥

혀 아래로 숨겨두었다 이리주세요 그녀는 축축해진

윗도리를 잡고 제 말은요, 그러니까 혀 아래 얼마간의 슬픔을

머금고 전혀 안 그런 것처럼 살고 싶다는 말입니다

 

오돌뼈라고 부르셔도 고생하진 않으실걸요?

원래 우리가 편한 게 최고잖아요 사는 게

진창 같아도 여긴 우리나라니까요 나는 체류하던

환상에서 나와 그녀를 바라보았다

젖은 티셔츠, 물비린내 나는 고깃집 주인에게 나는 어째서 오돌뼈는

안 되는지 물어보지 못 했다 평생을 물어도 모를 일이었다

 

오돌뼈가 오도독 소리를 내며 혀 아래로

박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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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부] 대과거 / 전명환

 

이젠 모서리가 없는 관계를 믿을 수 있다

창틀 너머의 사건들에 관해서는 몰라도

미끄러지는 발자국은 여태 모아두었다

발자국이 쌓여 벽지 위에 계속 자라고 불 꺼진

하루는 병든 생각처럼 씹혀서

바닥도 언젠가 꺼져버릴 거라고 믿고 있다

믿으면 이루어진다는 과학자의 잠언과

더 이상 고양이를 키울 수 없다는 당신의 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문을 두드리면 죽은 소리가 난다

두드리고, 두드리다 보면 대답하지 않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배울 수 있다

배울 수 있는 하루는 얼마나 비참한지

아무 일도 없는 하루가 있다면

아무 일도 없는 하루의 어제와 또

하루의 어제에 대해 떠올리고 싶다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와 그 고양이가 우는 모습과

고양이 사진이 있고 사진이 없는,

지진처럼 지나가는 열차가 떠오르면

사람들 모습 사이 들어 있는 당신과

(당신 옆에서 깜빡이는 그림자)

방 안에서는 항상 가로등이 보이는데

바깥에서 안으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나는 닿을 수 없는 時制를 획득한다

무딘 조명 아래 차분하게 쌓이는 시간과

희미해지는 경계 덕분에 정말로

모서리가 없는 관계를 믿게 되었다

 

 

 


 

 

[고등부] 몽상 / 황주연

 

성년의 날 머리맡에 장미가 놓이기 전까지

몽상은 나를 살게 했어

여기는 침대가 아닌 선술집

가죽신발로 발을 구르고 선장과 건배를 하지

돛을 두른 여왕님을 따라 우리는 바다의 기사

용기 한줌으로 황금을 산다네

좋은 술 한통이면 모두와 친구가 되지

여관 주인은 말리지 않고 노래는 빨라지네

 

눈을 뜨면 보이는 천장과 야광별 스티커

헤진 스티커가 더 이상 발광하지 않을 때

여기는 길거리가 아닌 사막별이야

나는 월세 찾아 방랑하는 음유시인

운하에 들어오는 거대한 유람선은

바쁜 사람들을 싣고 도심으로 흐르네

액정을 보느라 굳은 사람들 얼굴은

밝은 크림색도 있고 구릿빛도 있어

 

동물원에 도착해서 먹이를 주려 했지

앵무새는 석류 대신 터키석을 물어가네

불씨 남은 담배가 침침하게 빛나는 거리

언제부터였을까

아라베스크 무늬처럼 복잡해진 몽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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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부] 당선작 없음

 

 

 

 

[고등부] 도시의 염부 / 강혜원

 

뜨거운 햇빛이 정육각형으로 굳어가는 유리수면

도르레를 풀고 내려오는 청소부가

창문에 쌓인 소금을 한쪽으로 밀어내는 이곳은,

아파트 염전

갈기갈기 찢어진 구름이 칸칸이 나뉜 통유리창에 담겼다 사라진다

몇 달 저 증발한 동료 하나는

반사된 풍경에서 짜고 쓴 맛이 난다고 했다

하얗게 퍼진 소금벽을 타고 사내는

이쪽에서 저쪽,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이동하며

종일 밀대로 얼룩 같은 풍경을 증발시킨다

부서진 알갱이 같은 생계를 쓸어 모으기 위해선

두려움을 빠르게 졸여내야 한다

줄을 당겨 신호를 보내는 대신

발을 굴려 옆 칸으로 움직이는 사내

공중을 지상처럼 디디는 경지에 오른 것인가

땡볕에서 증발되는 것들이 많아

그의 몸은 수분을 빼앗기고, 거칠게 말라가고, 피부는 검게 타

고글을 쓴 자리만이 하얗게 남는다

모든 자국에는 증발의 기억이 있다

목덜미를 쥐어뜯는 열기에

염전과 함께 몸이 뜨거워지는 동안

창문은 더욱 찬란하게 반짝이고

청소부는 말없이 얼룩진 포말자국을 쓸어낸다

얼룩을 보면 무엇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일까

추측하는 버릇은 이 일을 시작하면서다

새똥자국에도 배설의 온기가 한 때 깃들여 있었음을

사내는 안다

견딤의 시간 속에서 끝내 그는 가장 작은 소금결정이 된다

오래된 줄 하나에 온 몸을 맡기고

구획된 소금밭을 하루 종일 누빈다

유리창에 비친 무표정한 얼굴,

밀대로 쓱 밀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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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부] 멧돼지 / 황익순

 

견고한 산맥은 그럴듯할 뿐

멧돼지를 만족하게 할 수는 없다

 

어디라도 가서 당장 그곳 숨을 들이켤 준비가 되어 있는

멧돼지는 고궁보다 오래된 숲의 외곽을 순례하고 있다 마치

움직이는 네 발짜리 언덕처럼

 

음영을 제 발밑에 둔 채 비탈진 등 위로

울창한 수목의 대기를 걷는다 나뭇잎들의 온갖 색채를 밟으며

가죽 속 뜨거운 혈기를 지닌 멧돼지, 고대 대장간 같은 열기를 내뿜는다

멧돼지는 모든 비밀 통로를 행보한다 무덤을 파헤치고

유해마저 젖혀버리는 어금니를 계속 끄덕거리며 계절을 감지하고 있다

 

미숙한 포수는

마침내 사냥감과 마주쳤으나 총을 겨눌 생각을 못 한다

멧돼지는 너무 멀리 있으나 이미 그 앞까지 와 있고

희미한 표석과 같은데 이미 포수의 그림자까지 밟고 서 있다 멧돼지가

단단한 발굽 속에 고인 힘으로 젖은 땅을 미끄러뜨리려 할 때

두 귀를 멧돼지의 눈에 기울이면 포수의 심장 기척 소리

북이 고동치고 있을 때 마치 멧돼지 가죽 속 가득 찬

소리의 무게에 짓눌린 듯 포수는 두 발을 돌릴 생각도 못 하고 멧돼지가

뜀박질을 내리치려 할 때 튀어나온 귀신같은 사냥개 무리 짐승들은 엉켜

 

이제 없는 이리 떼로부터

이제 없는 호랑이로부터

이제 없는 곰으로부터

이제 없는 과거의 횃불로부터

이제 없는 구석기로부터

그러나 이제 바로 등 뒤의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멧돼지는 석순 같은 어금니로

지금을 찢고 싶다

 

멧돼지의 비명이

온 숲에 메아리 울린다

죽음의 무게가 두텁다

그러나 멧돼지는

 

이제는 사라진

불타버린 과거의 숲 속에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해

모든 허공을 들이박고 있다

 

 

 

 

 

 

[고등부] 달리의 악몽 / 이세인

      

화상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내과로 가자

내 상처는 이미 외상이 아니므로

붉어진 손은 계속 등 뒤로 숨겨 두었다가

의사를 만나거든 그때 꺼내야 한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내 안의 모든 것이 녹고 있다는 사실

녹은 시계가 나무에 걸려 있고

책상 위에도 늘어져 있다

 

꿈속은 언제나 뜨겁다

차가운 방바닥에서의 악몽

녹은 시계는 움직이지 않는다

축 처진 시곗바늘을 돌리려 하면

초침보다 날카로운 열기가

손끝을 마구 찔렀다

빨개진 손을 얼른 숨겨보지만

내 안에는 내과가 없다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

내 눈꺼풀에는 잠이 늘어져 있다

천장은 꿈속 바다보다 멀다

귓가를 울리는 아득한 뱃고동 소리

 

머리맡 핸드폰 전원을 끈다

알람이 꺼지고,

녹은 줄 알았던 시계소리가 들려오고,

파란 물결이 흩어져버리고,

흐릿해진 내 손이 보인다

새벽 달빛을 두르고 있는 손

흉터는 아직 등 뒤에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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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부] 여름, 어시장 / 김지섭

 

가로등이 아물었다 생채기 같은

사람들이 돋아난다 하나둘 파라솔을 펼친다

 

그녀는 그늘 속에 앉아 꼬이는 파리를 쫓는다 사람들 발목에 파리처럼 들러붙는 목소리가 그녀의 그늘이다

감기지 않는 생선눈알이 녹슬고 있다 꼬깃꼬깃하게 주저앉은 노인의 눈동자, 동전처럼 거리를 구른다

껍질을 들추고 흐느적대는 바지락,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하던 남자가 혀를 내밀고 잠들어 있다

나는 바지락처럼 달그락거리는 집으로 전화를 건다 커튼 주름을 비집고 아이들의 부패된 목소리가 건너온다

 

가로등이 돋아났다 생채기 같은

사람들이 아물어간다 파라솔이 접히고 시장골목도 이젠 물러진다

 

 

 

 

 

 

[고등부] 장화 / 안성군

 

장화는 검은 늪이다.

아버지는 어쩌다 검은 늪에 두 발 빠지셨을까

철벅거리는 발자국소리는

왜 허우적거리는 소리로 들렸을까

늪은 신는 것이 아니라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아무도 늪을 신어서는 안 된다

문밖에서 벗고 들어오세요,

엄마는 완고하다.

 

그렇지만 엄마, 아버지의 장화 속에는 물갈퀴가 자라고 있어요. 아침 이슬 속을 헤엄치거나 개구리밥 뜬 파릇한 논물 속을 자유롭게 유영해 요. 논물에 거꾸로 누운 몇 그루 미루나무 속을 헤집으면 잠잠한 가지 들을 휘젓고 파릇한 이파리들이 돋아나요. 봄부터 가을까지 헤엄쳐 다녀요.

 

장화를 털면

거름냄새가 쏟아져 나오는 그 속에는

발목 깊은 늪 속에서도 꿈틀거리는 폐어肺魚처럼

크고 억센 아버지의 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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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봉지 / 이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선생님 지금은 손을 들어도 되나요? 이런 질문까지 손을 들고 해도 되나요? 부족하다면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똑똑똑똑, 문을 두드립니다. 뼈가 아픕니다. 오늘따라 더요.

 

안녕하세요, 인사합니다. 빈손을 흔들어 안부를 묻습니다.

 

문득 손을 든 나를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걸어갈 때 나의 냄새가 다른 사람에게 가기 전에 또 다른 나는 멈춰있고. 멈춰있고 싶은 것처럼.

 

그런 말들은 넘친다고요, 조금 더 자유롭게 살아보라고, 좀 예술적으로.

 

보이는 것 말고 집중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 이건 지워야 할 문장입니다. 무언가 있을 것 같지만 없는 문장이에요.

 

오늘은 많은 선생님들이 돌아가셨습니다. 어쩐지 동시에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거니 하다가 눈물을 흘릴 수도, 추모의 입을 열 수도 없습니다.

 

어제 동생이 그랬어요. 언니, 나 비닐이 생겼어. 아장아장 걸어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냅니다. 그 안에 어떤 것이 들었는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맨 처음 비닐을 기억해주면 좋았을 텐데. 언젠가 비밀에서 풀려나도록.

 

검은 봉지 안의 것들의 폭로. 더 이상 검은 봉지도, 폭로라는 단어도 필요하지 않는 세상이 만들어질 겁니다. 선생님이 일순간 사라졌다는 것을 기억할 테니까.

 

들었던 손을 내립니다. 한동안 볼륨을 낮추고 몸의 무게를 낮췄습니다.

 

도로 위로 비닐봉지 여럿이 떠오릅니다. 온몸을 뒤집고, 봉지 안의 추진력으로.

존경하는 선생님, 나는 문득 도로 위의 움직임이 더 배울만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선생님, 존경하는 세력이 한 줄 두 줄 줄어들고 있는 것은 왜일까요.

더 이상 손 들지 않고, 도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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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꼬치 / 강응민

 

우리는 노점상을 마주보고 나란히 서서

닭꼬치를 먹는다 한 방울의 매콤한 소스까지
남김없이 해치운다 그러다 문득 너는 묻는다
닭꼬치에 꽂힌 이 육즙 어린 살점은 닭의 것일까
그러자 머릿속에는 닭도 아닌 비둘기도 아닌 어떤
새가 그려지고 그것을 우선은 닭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말 그대로 피와 살과 뼈도
없이 아침마다 홰를 치고 모이를 쪼는 그런
가상의 닭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서로의
입술에 묻은 소스 같은 것을
닦아주었으니 가상의 닭을 엮은
이 닭꼬치는 가상의 닭꼬치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가상의 것을 좇는 식욕에 이끌려 왔을
따름이고 때때로 식욕은 사랑과 공생하며
허기를 태(胎)삼았으니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가상을 뒤따라온 우리의 사랑 또한
가상의 사랑일 수 있겠다
그리하여 가상의 사랑을 하는
우리 또한 가상의 우리일 뿐이고

그제야 알고 말았다

 

너는 나의 

나는 너의
가상이라는 것을
이렇듯 우리를 둘러싸고
계절감을 잃은 계절풍이 불어오자
소스도 핏물도 아닌 것이
뚝뚝 떨어지며
이내 흥건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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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진 시외버스 터미널 / 전명환

 

칼이 떠다니는 바다에는 술 위에 배가 뜬다

바람을 먹고 자라는 배들은 만석이 될 때까지 해를 거두었다가, 얼마 안 되는 빛까지 잔에다 들이붓고 말하는 법을 까먹은 등대만 눈을 깜빡인다

바다 향이 이렇게 독하다

동네에 불을 지르는 생각 같다

생각

 

소년은 쥐고 싶은 것이 많다

한 번쯤 쥐어 본 것들을 다시 놓지 않겠다고 결심할 때 소년은 과거로 도망치고

이 동네 사람들은

바다에 떠다니던 칼을 하나씩 주워 온다

대부분 사람을 죽이기 손쉬운, 생김새다

생김새니까 죽은 사람만 있고

죽인 사람은 없다

칼을 무서워하는 뜨내기들은 바람에 귀가 베여 있다

뜨내기들이 그렇다

 

나 또한 집에 칼을 세워두었다

나름 살 만한 동네라는 말이 거기서 나오고

 

몇 년째 일기에 꼭 쓰는 말이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허세를 부린다 술을 마시면 누구나 그렇고 남자들은 대개 그렇다

그러니까 문제인 것이다

검은 비닐엔 만 원이 겨우 담기는데

게다가 단골이라니,

빨리 이 동네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뿐

가끔은 당신의 칼과 악수하는 상상

그때는 기쁘게 속삭이고 싶다

 

아저씨, 나는 더 무서운 사람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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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싸움 / 황익순

 

서로가 낭떠러지다
눈앞이 절벽이라 
흰자위 가득
거센 돌풍이 불어닥친다 
 
떨리는 뒷다리 오금까지 고기압이 진동한다
온몸을 다해 전진하지만 뒤로 미끄러질 뿐이다
머리 가득 느껴지는 체중에 사방을 볼 수도 없다
가쁜 숨결로 짠 조수가 밀려온다
늑골이 혈액에 휩쓸린다 
폐부로 높새바람이 세차게 치밀어오른다
분신의 격투

두개골이 폐석 더미를 박는다
탄광으로 폭음이 터진다   
절벽이 충돌한다
정월이 수평선으로 떨어진다
힘껏 내리친 도끼가 두꺼운 나무를 두 쪽으로 팬다
뜨거운 아스팔트로 굉음이 달려나간다
불타오르는 숲, 이제
멀어버린 두 귀와 속으로
붉은 피를 피리로 휘몰아가는 소리 
두 마리의 머리 
살갗으로 뼈가 튀어나온다

두 눈이
겁으로 가득 한
우물이 된다 
 
복받친다
열점의 숨결과 빙점의 공포가 자기장을 일으킨다
해골과 해골이 부딪친다  
비명이 비명으로 부딪친다
폐가 부풀어 올라 자꾸만 피멍을 친다
두 마리 동시에 몸을 빼고 
체중을 실어 힘껏 상대를 찍을 때 

뿔이 깨지는 소리
두 뿔이 깨지는 소리
두 마리의 두 뿔이 네 개의 뿔이 되고
여덟 개의 뿔이 되어
 
서로를 박는다
박는데도
박히지 않는다
밀려나지 않는다 바로 눈앞의
벼랑을 향해 서로
떠밀지 못하고
떨어지지도 못한다

절대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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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퍼즐놀이 / 고은별

 

이 퍼즐은 모서리로 보내야 하지
자, 봐 파란 지붕 마당 넓은 집 한 채가 완성됐잖아
잘린 버드나무 가지 조각을 하늘 조각 사이에 끼워 넣으면
단발머리로 잠을 자던 버드나무도 번쩍 눈을 떠
담은 아예 골라내도 좋아 그 자리엔
보도블록 사이 피었던 들꽃 퍼즐을 놓아두자
나의 발길을 따라 풍경은 조각조각 나눠지지
내가 허공을 한 발 한 발 짚으며
꽁무니에서 경계를 뽑을 때마다
허물어진 이 동네는 알쏭달쏭하게 흐트러져
나는 신중하게 수치를 재며 졸고 있는 버드나무 사이에 발을 뻗었어
수많은 다리가 조수가 되어 내 작업을 도왔지
서울 바깥 변두리에 얌전히 걸려 있던 동네는
어느 날 포클레인 폭격을 맞고 흐물흐물 허물어졌어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이제 완성작을 기억하는 건 나 뿐
나는 조각들이 모두 떨어져
하늘과 버드나무가 뒹구는 동네를 다시 맞추는 중이야
좁은 퍼즐 속에서 지금도 자라는 뿌리들을
앞마당 텃밭에 옮겨 심는 중이야
깨진 창문 조각을 하늘에 두면 투명한 새털구름으로 새들이 돌아오지
시든 짚을 마당에 채워 넣은 날은
햇살 병아리가 쫑쫑 깨어나기도 했어
하늘을 한 조각 찾으면 빛도 한 조각 들어와 불 꺼진 집들을 밝히고
널브러진 그림자들 모아 맞추면
푸른 그늘 아래 멈췄던 바람이 다시 달리기를 시작해
내 투명한 집 속에서 버드나무가 몸을 일으키는 게 보이니?
곧 저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휑휑 휘날리며 퍼즐의 먼지를 닦아낼 거야
슬레이트 지붕 틈에서 꺼낸 보름달이 홀쭉해질 때마다
햇살과 병아리와 사람이 버드나무에 기대 살던 동네는 깨어나겠지
어느 하루, 한참을 덜어낸 보름달이 다시 차올라 둥글어지고
그 통통한 빛이 버드나무 머리칼을 빗어주는 날
그 쯤 되면 사방으로 숨어들어간 웃음 조각들도
돌아오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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