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당선작]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그리고 나 / 남택규

 

 

숭고함은 어디서 올까

누군가 나로 하여금 닭을 잡게 한 한다 난생처음 배를 가르게 한다

 

오밀조밀 장기들을 맨손으로 매만진다 미끌미끌 따뜻하다 의사가 나의 심장을 만져도 이럴까

 

그만 나는 막막해져 얼른 배를 닫는다 속울음을 들었다 그것은 비릿함 가까운 데다

 

아무렇게나 내장을 꺼내는 손으로 인삼 대추 쌀을 차곡차곡 채우는 칼날 위 아슬아슬한 식() 풍경, 순간 뇌우가 들이친다 식탁에 칼이 꽂혀 부르르 떨고 맨발로 황급히 빗물이 차오르는 거리로 뛰어드는 이도 있겠지, 그래 삶은 누군가의 온기를 끊임없이 배반한다

 

현실에서 가능한 답을 찾아가는 나에게도 한 가지 궁금한 건 혹 내가 개복한 상태에서 의료진도 없이 나 홀로 남겨질 때 과연 웃을 수 있을까, 수술대에도 기대지 않고

 

나는 천천히 둥글게 몸을 만다 얼굴이 배에 닿지 않는다 잠깐의 열패감, 이런 기분일까 다시 추스르며 손가락으로 위 창자가 있을 배 이곳저곳을 꾹꾹 눌러간다 센서등은 복도에만 있는 게 아니다

 

기도는 사절, 다만 낮아서 아름다웠으면,

 

 

 

[가작] 울음의 질량 / 이정미(이마리)

 

비가 허공을 딛고 안전하게 내려와요

머리맡으로 옮겨온 하룻밤의 오아시스도 담겨있어요

고무장갑 손끝으로 물방울이 속눈썹처럼 떨어져요

예전의 것은 아니에요

여전히 지금도 외줄을 타고 내려와요

창밖 난간에 유리알들이 매달려있어요

떨어지면 산산조각 날 쏭알쏭알 벌레알들,

저것들은 누가 분실한 노래일까요

사내가 추락하면서 남겨진 코팅장갑 한쪽이 보여요

몸보다 먼저 떨어진 비명도 그를 지켜주진 못했나 봐요

사내의 아내는 박보살이에요

알아요, 자신의 운명까지 점칠 순 없었다는 것

그런 것쯤 이 골목에선 이미 단물 빠진 소문

낮달이 아라비안나이트의 단검처럼 우윳빛 조등을 걸었네요

주방 한 켠에 방치된 나는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싱거운 침묵이라도 조리할까요? 당신의 입맛에도 단물이 빠진 것을 알아요

다시 비가 와요

비는 질기게 시간을 밀봉하고

오후는 하얗게 질식된 사체에요

움직이던 모든 순간들이 창백하게 지워져요

당신은 어느 별에서 지워졌나요?

고무나무 숲에서 맨발로 나를 받아내던 거친 손등

그녀도 무중력 속으로 풍선이 되어 떠올라요

슬픔에도 세금이 붙는 세상을 아세요?

카드 한 장으로 울음의 질량이 입력되는 그 마을은 여기서 멀죠

죽은 코팅장갑 속으로 걸어 들어간 고무나무 숲이

지하 울음들을 모조리 삼킨다고 중얼대는 흰 소리가 들려와요

나는 이제 습기 찬 소리들을 받아낼 수 있지만

내 몸으로 흡수 시킬 수는 없어요

어둠이 코팅 된 시간을 낮이라고 부르자

태양이 나를 녹이네요 나의 붉은 계절은 모두 밖에 있어요

내 심장은 곧 낡을 거예요

발뒤꿈치까지 끌려오듯 그림자를 키우는 여자를 알아요

인대가 늘어진 여자, 누군가 뱉은 껌처럼 던져졌어요

수술방 차가운 침대에

수술 장갑을 온몸에 껴입은 누군가 들어와요

소독약 냄새가 구겨진 나를 뒤덮어요

고무나무 숲으로 빗소리가 천천히 걸어와요

나는 오래도록 썩지 않는 나무의 혈흔이에요, 붉고 질겨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