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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걷는 낙타 / 조경섭

 

 

1.

방울 소리가

사막의 단색 시야를 밀어낸다

 

2.

낙타가 광야를 지나 협곡 앞에 섰다

바람도 한꺼번에 들어갈 수 없다며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한때는 제 덩치만 한 적막을 몰고 다녔다

그런 그가 다른 세상에 들어온 듯

어찌할 바 모른다

이제 이곳만 빠져 나가면

지상의 경계는 하늘뿐이다

 

3.

보이지 않는 길의 여백을 넓히기 위해

며칠이고 굶어 몸집을 줄여본다

살아 있는 어떤 것도 통과할 수 없다는 바람길,

털오라기 하나도 마음대로 빠져나가기에는

버거운 세상의 두께 앞에서

힘없이 무릎 꿇을 때

지식, 열정, 용기 따위는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나의 의지, 나의 고독, 방울소리까지도

 

4.

지금껏 누구를 위해

나를 내려놓고 살아 보았던가

그토록 먼 길을 돌고 돌아

바람 불면 지워질 길, 내 영혼의 마른 땅

모래가 증명하는 것은

여전히 사막이라는 이정표뿐

 

5.

자잘한 별빛이 통통 튀는 모래바다

나를 사막의 빗금무늬로

감싸고 있던 거푸집이 해체된다

털과 가죽, 살과 뼈, 화석이 된 그리움조차

나는 뭇별처럼 세상에서 분리되고

목숨이 통째로 녹아 실이 되어 나오더니

비로소 바늘귀에 들어가는 순간,

 

방울소리 가까운 하늘 문이 열린다

 

 

 

S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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