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말(言)의 죽음 / 강민석

 

결국 모든 말이 죽었다.
입이 얼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우린 그 눈보라 속에서 아무런 말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이 가장 먼저 죽었다.
우린 서로를 밤하늘처럼 오랫동안 바라보았고
사랑은 별빛처럼 제 빛을 찾아갔다.
살기를 갈망하는 몇몇만이 간혹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뒤이어 고맙다는 말이 죽었다.
어떤 이들이 옷을 벗어 자녀들을 입혔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해
우리는 고맙다는 말의 죽음을 묵묵히 응시해야만 했다.
살기를 갈망하는 몇몇만이 간혹
두툼한 옷 사이로 고맙다는 말을 했다.

말들이 차례로 죽어가고
끝으로 삶이라는 말이 죽었다.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엮어 몸을 덮었고
지금이라는 말이 남긴 유품들을 태워 몸을 녹였다.
살기를 갈망하는 몇몇만이 간혹
수 천 킬로미터 밖에서 활을 쏘듯 삶이라는 말을 했다.

결국 모든 말이 죽었다.

내가 그 꿈에서 어떻게 깨어났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말들은 살고 말들이 애타게 부르던 것들은 죽어버린 이 세상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세상은 뜨겁고
사랑은 어느 그림자 틈에 혼자 쓰러져 잠이 든 것인지
사랑한다는 말만이 꽃단장한 영정사진처럼
길거리 여기저기 널브러져있다.
상주도 없는 거리에서 나는 상주마냥 우두커니
너를 기다린다.

 

 

 

 

 

[당선소감] "삶으로 시를 쓰는 시인, 좋은 그리스도인 되고파"

 

꽃이 만개한 화분보다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화분이 더 갖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이미 피어난 꽃보다 꽃이 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갖고 싶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화분에 담긴 식상한 푸른빛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언젠가 피어날 화사한 꽃을 상상하는 일은 시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인 것 같습니다.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기쁘면서도 제 분수 이상의 큰 상을 받는 것 같아 쑥스러웠습니다. 아마도 제가 쓴 시가 매혹적인 꽃처럼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앞으로 피어날 어엿한 꽃송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뽑아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쑥스럽지만 기쁜 마음으로 상을 받고, 쑥스러운 만큼 더 정성스럽게 제게 맡겨진 화분을 가꾸어가는 것이 제 시를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것에 대한 저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언제나 제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고 신뢰해주는 아내에게 가장 먼저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내의 지혜로운 사랑이 저를 얼마나 하나님과 가깝게 해주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딸 예채와도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아직 당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 나이이지만 그런 것과는 무관한 아빠의 마음입니다. 시의 '시옷'도 모르던 제게 처음 시를 가르쳐주신 김소연 시인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닮고 싶은 시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심사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더 성숙한 시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글보다 삶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고 싶습니다. 좋은 시인이기보다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이유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비유와 상징이 절정에 놓일 때 여운 증폭됨 기억하길 당선작, 현대인의 황폐화된 심성 역설적으로 추적"

 

제15회를 맞은 기독공보 신춘문예가 연륜을 더해 갈수록 투고되는 작품들도 고르게 향상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만 다수의 응모작품들이 어천정심(語淺情深)이나 촌철살인(寸鐵殺人)과 같은 시를 시 되게 하는 특질을 소홀히 여기고 있는 점이 아쉬웠다. '언어의 경제(經濟)'라는 말처럼 시는 '말하면서 숨기고 숨기면서 말하는' 비유와 상징이 절정에 놓이게 될 때 그 여운이 증폭됨을 기억했으면 한다. 선자(選者)들은 우선 12명의 작품을 1차로 추려낸 다음, 숙독(熟讀)과 논의 결과 '말(言)의 죽음'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말(言)의 죽음'은 현대인의 황폐화된 심성을 펼쳐 보인다. 일상의 언어 생활에서 '사랑'이나 '고마움' 같은 인간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내면의식의 흔적을 역설적으로 추적해간다. 우리 삶 속에서 사라진 사랑이 가식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사랑'이나 '고마움' 따위의 언사(言辭)는 "결국 모든 말이 죽었다"고 사망진단을 내린다. 사랑과 자비의 말씀을 몸소 행위로 보여주신 예수님의 참사랑을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시 속의 화자(話者)는 "너를 기다린다"고 오늘의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면서 간절한 소망과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도 짜임새 있는 시적 형상화를 보여주고 있어서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가작으로는 논의 끝에 '꽃에 대하여'를 뽑았다. 길지 않은 시행(詩行)으로 언어의 절제를 살리면서 꽃의 존재론적인 시점(視點)을 드러내고 동시에 그것을 신앙적으로 승화시키는 시적 구성과 조탁(彫琢)의 솜씨가 놀랍다. 세상의 꽃이란 꽃은 아주 작은 꽃일지라도 하나하나 창조주의 완벽한 창조물로서 신성(神性)을 드러내고 그것은 또한 오직 한 분 예수님을 위한 존재이며 그 한 분은 또 꽃보다 '사람(우리들)'을 더 사랑한다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복음의 핵심을 담아내고 있다. '내 마음에 자작나무 숲이 있어' 등 함께 응모한 작품들도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어서 시작에 대한 내공(內功)이 느껴진 점도 든든하게 생각되었다. '바늘귀'는 끝까지 선자들의 마음에 남은 작품이었다. 바늘귀를 중심으로 하여 시적 화자와 아내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로 이어지는 가족과 지상의 삶 나아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성경 말씀으로 실을 꿰는(연결하는) 솜씨가 뛰어났다. 그러나 함께 응모한 작품들간의 편차가 다소 크다는 점이 다음 기회를 한번 더 보자는 결론을 내리게 하였다. 이 외에도 '감나무 전등' '고향' '결석(結石)' 등의 작품들도 선자들의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었다. 입상하신 분들께는 축하와 가일층의 분발을, 입상하지 못하신 분들께는 지속적인 습작을 부탁 드린다.
 

심사위원 박이도ㆍ권택명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