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인손을 앓고 난 아침 / 박은혜
생인손을 앓고 난 아침
목련 꽃잎같이 말갛게
새살이 난 자리에
칼날이 돋아났다
내 안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등나무 푸른 새싹 만하게
시퍼런 칼날이 자라나
햇살을 톡 톡 끊고 있다
아프다
따스한 눈빛으로
내 손을 잡았던
그들의 영혼에
피가 흘렀겠구나
바람이 불어온다
윙 윙 칼끝이
별자리처럼 까마득한
기억 속까지
후벼 파고
삶의 바닥 밑까지
통증이
몰려온다
햇살이 쏟아져도
이렇게
세상이 캄캄 할 수 있다니
두렵다
내 곁에 아무도 없어
주여
신음 소리를 내뱉는다
살갗을 뚫고나온
시퍼런 칼날이 뽑혀지고
예수의 손에서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진다
맛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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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는 고통의 산물이다.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이 크듯이, 시인도 한 편의 시를 잉태하고 출산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겪는다. 영혼의 노래인 '신앙시'는 더욱 그러하다. 산고(産苦)가 큰 만큼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 또한 지극하듯이, 한 편의 시를 낳기 위한 고통이 클수록 작품에 대한 희열과 사랑은 그만큼 큰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도 쉽게 쓴 시들이 많이 눈에 띈다.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감상의 나열이 시가 아니다. 신앙의 넋두리나 푸념으로는 '신앙시'가 될 수 없다. 깊이 기도하는 자세와 거룩한 고통을 통해 영혼의 진액처럼 한 방울씩 시상이 표백되어야 한다.
이번 제9회 <기독공보 신춘문예>에 응모된 많은 작품들은 대단히 미안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쉽게 쓴 시'로 보여 진다. 선자(選者)의 이런 충고에 항변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얼마나 고뇌하며 이 시를 썼는데!"하고 말이다. 고뇌를 했다면 '고뇌의 흔적'이 있도록 써야 한다. 애써 고심해 놓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방법이 서툴러 무미건조(無味乾燥)한 타작(打作)을 하고 말았다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이런 점에서 시작(詩作)의 기본을 익히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자동차는 정해진 도로를 달리고, 기차는 레일을, 항로는 보이지 않으나 바다의 배와 하늘의 비행기도 정해진 항법에 따라 운항을 하지 않는가. 시도 산문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 엄격한 기본(基本)이라는 것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말하자면, '시의 길'이 있고 '시의 법'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녕 좋은 시를 써서 하나님께 예배와 찬송을 드리고 읽는 이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를 원한다면 훌륭한 시인들의 작품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기도하는' 한편, 좋은 시론(시작법)에 관심을 가지고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우리 주위에는 무릇 시를 포함한 예술은 천재성의 산물이라고 치우쳐 생각한 나머지 후천적인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좋은 작품이란 '선천'과 '후천'의 조화 속에서 나오는 법이다.
이런 점에서 선자들은 '기독교 문예'의 밭갈이를 선도하고 있는 <기독공보>사에 건의한다. 가능하다면, 평소에 기독교 문예강좌를 열어 이처럼 열망하는 전국의 잠재 시인과 작가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시기 바란다. 이처럼 기독교 작가 발굴을 위해 노력하는 언론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올해는 유독 시가 흉작이다. 응모의 열기에 비해 더욱 소출이 쓸쓸하다. 그런 중에도 눈에 띄는 몇 편이 있어 선(選)에 올려본다.
선자의 주목을 끈 작품으로는 <울음은 성(城)을 만든다>, <생인손을 앓고 난 아침>, <월곶 포구>, <마중물>, <나무의 기도> 등을 들 수 있겠다. 그 중에서 가작으로 선(選)한 <생인손을 앓고 난 아침>은 '생손'을 앓고 난 후에, 그 고통을 통해 십자가에서 당하신 주님의 고난을 빗대어 본 작품으로 평범하나 신선한 착상에 주목할 만하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울음은 성(城)을 만든다>는 울음을 기도로 비유하여 '나'와 '나무'를 화자(話者)로 내세워 울음을 들어야 하고, 울음을 새겨야 하고, 울음을 울어(올려)야 하는 메시지를 내세우고 있다.
이 작품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은 '나무'를 '성의 기둥'으로, '천장'을 크리스찬의 '상승적 인식'의 한계로 드러낸다.
이 작품은 상당한 시적 역량을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 심사위원 최은하,김성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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