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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은 城을 만든다 / 이순주

 

 

울음은 기도였으므로 그 누구도 잎새에 달라붙은 울음을 떼어낼 수는 없다

숲을 뒤덮는 매미울음 그대로 천장이 된다

 

날마다 천장에 슬픈 악보가 그려졌다

구름을 만져보고 싶은 날이 있었다

 

울음은 안식을 거느렸으니,

 

페이지가 펼쳐질 때마다

땅바닥에 안식을 번식시켰다

 

나는 잠시 어느 고요한 유배지를 떠올리고,

바람이 타고 내려간 언덕배기 버려진 기타에서 늙은 여자의 울음 소리가 났다 낯익은 저 울음은 너무 많은 그늘을 지나온 내 이력의 후렴부였구나

 

잎새 뒤에 숨어 울고 있는 이름 모를 새여! 이곳에서는 나무들은 어떤 울음도 귀 기울여 듣는단다

 

천장이 또다시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뒤꿈치 든 나무들은 城의 기둥이 되고 수천 년 천장을 떠받들고 서 있을 것이다

 

그늘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나는 그 울음을 다 들어야 한다

 

 

[당선소감] 겨울을 참아낸 보람이 있습니다

 

듬성듬성 눈 녹아 내게 징검돌이 되어주는 산길, 눈 속엔 황소바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편집증을 앓는 그 바람은 산비탈 훑으며 내게로 달려왔습니다. 시린 내 목을 끌어안고 팔짱을 끼며 알 수 없는 말을 쉴새없이 지껄였습니다. 산까치 몇, 불씨를 찾아보려는 것인지 불 꺼진 단어들을 쪼고, 윤슬처럼 반짝이며 햇살에 언 눈(雪)이 빠끔빠끔 타들어갔습니다. 구상나무일까 회화나무일까 자작나무일까. 나 어디쯤 멈춰서야 이 길고 긴 문장이 끝나는 것일까. 겨우내 이곳에 오르면서 세워놓은 수많은 성(城)들, 나는 모딜리아니 잔느의 긴긴 목을 하고서 봄까지 무작정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움은 겨울의 문장 아래 숨어 있었습니다. 뒷산을 오르곤 하며 겨울을 나고 있었습니다. 경칩 지난 어느 날, 산길을 여전히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핸드폰 떨림이 예사롭지 않더니만, 아! 전화 한 통으로 당신은 나를 울리고야 말았습니다. 겨울을 참아낸 보람이 있습니다.

 

새봄을 맞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작품을 선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한국기독공보사에 머리를 숙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나를 위해 늘 기도하시는 어머니! 들꽃, 글숲 동인들,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맛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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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는 고통의 산물이다.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이 크듯이, 시인도 한 편의 시를 잉태하고 출산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겪는다. 영혼의 노래인 '신앙시'는 더욱 그러하다. 산고(産苦)가 큰 만큼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 또한 지극하듯이, 한 편의 시를 낳기 위한 고통이 클수록 작품에 대한 희열과 사랑은 그만큼 큰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도 쉽게 쓴 시들이 많이 눈에 띈다.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감상의 나열이 시가 아니다. 신앙의 넋두리나 푸념으로는 '신앙시'가 될 수 없다. 깊이 기도하는 자세와 거룩한 고통을 통해 영혼의 진액처럼 한 방울씩 시상이 표백되어야 한다.

이번 제9회 <기독공보 신춘문예>에 응모된 많은 작품들은 대단히 미안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쉽게 쓴 시'로 보여 진다. 선자(選者)의 이런 충고에 항변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얼마나 고뇌하며 이 시를 썼는데!"하고 말이다. 고뇌를 했다면 '고뇌의 흔적'이 있도록 써야 한다. 애써 고심해 놓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방법이 서툴러 무미건조(無味乾燥)한 타작(打作)을 하고 말았다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이런 점에서 시작(詩作)의 기본을 익히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자동차는 정해진 도로를 달리고, 기차는 레일을, 항로는 보이지 않으나 바다의 배와 하늘의 비행기도 정해진 항법에 따라 운항을 하지 않는가. 시도 산문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 엄격한 기본(基本)이라는 것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말하자면, '시의 길'이 있고 '시의 법'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녕 좋은 시를 써서 하나님께 예배와 찬송을 드리고 읽는 이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를 원한다면 훌륭한 시인들의 작품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기도하는' 한편, 좋은 시론(시작법)에 관심을 가지고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우리 주위에는 무릇 시를 포함한 예술은 천재성의 산물이라고 치우쳐 생각한 나머지 후천적인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좋은 작품이란 '선천'과 '후천'의 조화 속에서 나오는 법이다.

이런 점에서 선자들은 '기독교 문예'의 밭갈이를 선도하고 있는 <기독공보>사에 건의한다. 가능하다면, 평소에 기독교 문예강좌를 열어 이처럼 열망하는 전국의 잠재 시인과 작가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시기 바란다. 이처럼 기독교 작가 발굴을 위해 노력하는 언론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올해는 유독 시가 흉작이다. 응모의 열기에 비해 더욱 소출이 쓸쓸하다. 그런 중에도 눈에 띄는 몇 편이 있어 선(選)에 올려본다.

선자의 주목을 끈 작품으로는 <울음은 성(城)을 만든다>, <생인손을 앓고 난 아침>, <월곶 포구>, <마중물>, <나무의 기도> 등을 들 수 있겠다. 그 중에서 가작으로 선(選)한 <생인손을 앓고 난 아침>은 '생손'을 앓고 난 후에, 그 고통을 통해 십자가에서 당하신 주님의 고난을 빗대어 본 작품으로 평범하나 신선한 착상에 주목할 만하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울음은 성(城)을 만든다>는 울음을 기도로 비유하여 '나'와 '나무'를 화자(話者)로 내세워 울음을 들어야 하고, 울음을 새겨야 하고, 울음을 울어(올려)야 하는 메시지를 내세우고 있다.

이 작품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은 '나무'를 '성의 기둥'으로, '천장'을 크리스찬의 '상승적 인식'의 한계로 드러낸다.

이 작품은 상당한 시적 역량을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 심사위원 최은하, 김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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