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일들
나는 모른다네
창밖을
너구리를
개와 고양이의 꼬리 사용법을
장미꽃이 가장 간지러운 순간을
예수의 손바닥에 박힌 못의 크기를
탄성을 자아내는 여러 가지 체위를
당신의 혀에 돋은 새빨간 돌기의 감촉을
여름에 어울리는 머리색을
열매가 부풀어 오르는 아픔을
지금의 바람과 내가 몇 번째 대면하고 있는지를
허기가 나에게 주는 기쁨과 슬픔을
창밖에서
권투선수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얼굴을 내려치네
빗나간 훅
설령, 설령
디귿의 마음으로
당신은 나를 함부로 이해하네
나의 긴 갈색 머리
웃고 있는 칠월의 책상에 걸터앉아
갈겨쓰네
갈겨쓰고 있네
디귿, 디귿, 디귿이라고
함부르크로
떠나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드는
아이들처럼
찍찍찍
세상이 내 것인 것처럼
갈겨쓰네
사랑을 아십니까
길에서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 없네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싶은
나의 다리들
다리들
다리의 다리들
책장 위를 우아하게 걷는
열 개의 다리를 가진
고양이의 자의식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시도하네
비명처럼 길고 긴
기차
검정 거울
나는 모르네
어퍼컷 혹은 라이트 훅
내 몸을 빗나간 뼈들
바닥을 뒹구는 뼈들
*
옆 집 오빠는 키가 작지만
여러 가지 표정을 가졌고
나를 볼 때마다 미소를 짓네
캄캄한 주머니 속
그의 그림자
자꾸만 길어지는 그림자
디귿의 심정으로
난간에 기대
화단에 핀 장미를 내려다보며
우리는 인사를 나누네
그와의 대면이 몇 번째인지
모르지만
모르핀의 투명함
분침이 툭 하고 내려앉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
나는 배고파요
주머니 속의 주머니
주머니 속으로 삼켜지는 주머니
주머니와 주머니들만의 어둠
인사처럼 텅 빈
권투선수의 꽉 쥔 주먹
부풀어 오르는 손톱자국
나는 가장 단순한 사람의 얼굴로
오빠를 바라보았네
턱을 괸 채 킬킬대는 칠월의 꽃들
너구리가 디귿을 물고 골목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네
샹주망 아버지
도마뱀. 물을 핥는 두 개의 뾰족한 빨강. 육교 아래를 질주하는 새벽의 차들. 불빛들. 샹주망. 샹주망. 부릅뜬 눈. 눈두덩을 쓸어내리는 손. 아버지 당신은 아래가 젖은 채 침대에 누워 계시네요. 부르르 떨며. 제 손목을 움켜쥐시네요. 당신은 양서류. 나는 가장 어두운 물 밑을 헤엄쳐요. 산호를 찾아. 다섯 손가락을 벌리고. 입을 벌려요. 차들. 차들. 육교를. 내 아래를 관통하는 차들. 불 위를 떠다니는 배. 주머니 안에 숨겨진 손. 당신이 나를 만들었어요.
아버지. 춤을 추고 싶어요. 물속에서.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요. 시멘트의 높은 육교 위에서. 너무 먼 차들. 손끝을 모으고. 샹주망. 샹주망. 물 위를 걷는 도마뱀. 당신의 손톱이 팔뚝을 파고들어요. 땅 밑으로 나를 끌어내려요. 아버지 아파요. 아파요. 떨고 있는 쇠 난간. 속을 흐르는 피. 차가운 밤의 불빛이 나를 얼려요. 보내줘요. 혀의 움직임. 혀의 속도. 혀의 방향으로. 물을 그러모으는 손들. 샹주망. 샹주망.
* 샹주망Changement : 발레 동작 중 양다리의 장딴지를 부딪히며 공중으로 도약하는 자세를 말하며, 프랑스어로 변화라는 뜻을 갖고 있다.
박쥐
긴 꼬리 구둣발 소리 미간을 찌푸린 오월의 빛 친하게 지내자 꽃봉오리를 쥐어뜯는 왼손 끈적이는 보도블록 슬로우 다운 슬로우 다운
벗겨지지 않는 피 냄새. 굳게 입을 다문 밤의 냄새가 난다 길 끝에서 두 남자는 주먹질을 하고, 코끝에 손가락을 대고 냄새를 맡으며 냄새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육교 아래서 비를 피하며 물 뜯는 소리를 듣지 차는 멈추고 차창을 내린 하얀 얼굴의 남자는 묻지 찢겨진 입술을 찾아줄까? 묻지 떨고 있는 오월의 난간을 붙들고 가방끈을 꽉 붙들고 고개를 숙이지
슬로우 다운 아버지처럼 웃는 밤거리의 남자들. 뒤집힌 괴물들 세상에서 가장 뻔한 노래를 부르지 슬로우 다운 차창을 내린 얼굴처럼
발톱 오늘 밤의 발톱 셔터가 내려진 꽃집 앞 화분들 발톱에 걸린 긴 소매들 병뚜껑을 모으는 취미 출처가 불분명한 다리의 멍들 뭉개진 꽃잎은 손안에서 끝없이 끈적이고 있지 슬로우 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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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선 / 1987년 서울 출생. 2010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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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청년*
이란 사는 파란 남자는 베이지색 배 안에서 가능성이다
둘 중 한 쪽은 반이 추는 노란 춤일 것이고
자궁이 좁아 옆이 붙어버린 샴의 형일 것이며
엄마는 파라솔의 알록달록 아래 자주 눕고
태양의 정면을 쳐다보는 이란의 유일한 베이지다
파란 것은 배고파 어떡해 자꾸 묻는 아이의 느낌이고
노란 것은 스미고 번져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파란 옆인데
둘이 붙은 것은 파라솔 근처의 태양 때문임을
로션 바른 베이지가 알고 있다
먹힌 것은 그래서 노랑
동생의 배로 잡혀 들어간 트윈의 형
파랑의 움직이는 반
예뻐 죽기 직전인데
왜 청년은 임신인가 노랑을 품었으므로
형은 손톱이 자란 노란 손을 굽힌 채 내내 있었을 것이고
형은 치아가 솟은 노란 입을 모은 채 파란 놈의 내장이 되는데
놀랍지 여기서 노랑을 유지해 이건 형의 고발인가
노랑의 극단적 위장 파랑
사실 살인은 청년 베이지가
파랑노랑 분명하지 못한 놈이
누구에게 배웠나 멋으로 옆을 갈랐나
몸 작은 형은 곱슬거리다 죽지도 못하고 어쩌다 죽지도 못했는데
아니라면 임신이지 그러니까 약간 유머야 배 배 배
내 배 속에 형이 들어 있다
꺼내봐 네 형
죽었나 살았나 몇 살이야
동갑이군 여전히 노래
네놈은 파랑인데 위장이고 형이 노랑이고 아 참
형이 넌가? 너 이란이야 청년이야 이거 알록 아냐?
그러니까 이게 배 안에 두 배가 붙어 한 배가 한 배를
왜 먹었지요?
* 22세 이란 청년의 몸에서 태아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 시신은 청년이 엄마의 태내에 있을 당시 함께 자라던 쌍둥이 형의 몸으로 밝혀졌다.
아버지 딸뱀
소녀의 이름은 외자, 뱀이다
줄거리는 몸 쓰는 놈으로 섭외하고
누린내가 퍼지면 인물들 움직인다
아버지
그는 앉아 있고 단 한 번, 푸드덕댄다
백발을 감아올려 뱀을 세운 딸은
아비 앞에 선 채로 생리를 쏟아내고
기름이 다 빠진 뱀은 다리가 휘어진다
타닌 타닌 타닌*을 외치는 소녀
불현듯 안구를 꺼내 눈구멍을 비우고
멀미 오른 몸은 뒤를 건드리며 부드러워지는데
아비는 지금 무엇을 하나
나는 시력을 잃었으므로
어제 아비는 울었다 어제의 아비는 이제
아비의 어제
이제 나는 영영 아비를 알 길이 없고
한낮 어둑한 후방의 얼굴
깜깜한 얼굴을 삼키며 몸을 불리던 나는
곁이 없어 마른 접시에 든 낙지처럼
배 붙일 곳이 필요하므로 뒤로
뚱뚱하다
(팽팽하고얇은측백잎날렵한근육한점)
정사도 없이 부푼 몸이 나는 어지러운데
왔다 몸 쓰는 놈 이명을 다스리는
개들의 돌림노래
휘파 피 파 휘 축축한 켄터키 뱃집에 햇빛 비치어
어느 뱀 검둥이 시절 휘파 피 팟 척 척
저 해는 긴 뱀을 감아올릴 때 아버지는 벌써 익었다
아비를 굴리며 노는 어린 뱀 세상을 모르고 감나
분장할 시절이 닥쳐오리니 치장해라 아버지 딸뱀
그리운 아버지 등장하시어 울던 몸 오라며 운 날
척척한 등허리 찢으며 놀자 선지를 튕기며 놀자
* 타닌(tannin) 무두질 : 타닌을 이용하여 짐승의 생가죽에서 털과 기름을 뽑고 가죽을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
똥굿
똥이 폭발한다
꿈에서
젖은 하체가 달아난다
고의는 아니었고
하체는 하의 안에 있다
항문들은 줄을 지어 따라가고
사라지고
순식간에 퍼지는 낮잠의 바닐라
똥 싼다
밑이나 열자
항문이 질과 담합하여 새로운 구멍을 내세울 때
머리를 아래로 하고 기름에 튀겨보지
카락 카락 탁탁 튀는 낱개들 몸살들 쏟아지는
내장들 우리도 할 말이 있다
잠 속의 항문 마이크 물면
누구냐 질
너의 스위치를 켜라
띠용띠용
둥둥 떠다니던 잠자던 마초
꿈을 배신하며 기어코 죽어가
마초를 꿈꾸던 대낮의 애인
불 끈 질을 열고 시체를 내보내
항문엔 담배를 물리지
엉덩이를 낮추고 제법 연기도 뿜어
여배우 같아
임신도 했어 영화같이
엄마 이거야 탯줄 대신 숙주나 연결해줘
여자 다산콜센터로 달려가 허벅지를 연다
부탁해요 데친 숙주
120: 어서오십시오미친년 네 똥집이나 한 입 먹어라
여자: 그래요 그래요 정다운 나의 다산콜센타
임신은 아니었고 항문은 돌아왔다
안심할 일은 아니다 어쨌든 나는
잠이 폭발한다
이번 꿈은 액자식 키보드 구성
똥물 쓴 내가 휙 돌아보면
누군가 똥 싸고 있고 그놈 항문 파내면
내 뒤가 쓰라리고 밑을 건드리면 위가 넘어가고
머리칼 튀고 날고 머리통 구르고
엔터엔터 신나게 두드리는데 얼굴에 엔터 똥칠이고
누가 나 좀 말려봐요 쟤 좀 건져줘요
저년 싸겠네 저거 꿈꾸다 구체적으로 웃는 거 봐
굿이라도 해야겠지 똥병이지 저거
거기 똥신이시어
차라리 나 타인 되게 하시오 이 몸 작살에 올릴 테니
제대로 썰어 다시는 붙지 않게 멀리멀리 뿌리시오
워이 똥물 워이 똥 튄다
————
장수진 / 1981년 서울 출생. 2008년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연기 전공) 졸업. 2006~2010 극단 〈골목길〉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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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총 368명이 응모한 올해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 부문은 예년에 비해 100여 명 정도 수가 줄어 기대할 만한 작품이 적지 않을까라는 우려 속에 심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를 비웃듯 심사위원들을 긴장시키고 설레게 만드는 수작(秀作)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예심을 통과한 이들의 수가 15명에 이른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의 이름을 전부 부기해도 좋을 만큼 작품의 수준과 완성도가 모두 당선작으로 뽑아도 무방하다는 이야기가 오갈 정도였다. 구현우, 김복희, 김선미, 박수지, 백지은, 송민규, 안희연, 양안다, 유재숙, 이소연, 이진기, 장수진, 정재우, 주완식, 한그린 등은 곧 다른 지면을 통해서라도 만나볼 이름들이다.
15명의 작품 중 누구를 본심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부터 행복한 고심거리였다. 올해의 경우, 심사를 진행하기 전에 심사위원들이 중요한 규준으로 의견을 모은 것은 기성의 틀을 벗어난, 이해를 거부하는 과감한 ‘파격’으로 보일지라도 자기만의 독창적인 시적 발화를 선보이는 진정한 ‘신인(新人)’의 형상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중략)
논의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백은선과 장수진의 시였다. 그런데 그간의 심사에는 없었던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이 제정된 이후 단 한 차례도 없었던 시 부문의 공동 수상을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만큼 백은선과 장수진 중 그 누구의 시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다.
백은선의 시는 장황한 말의 집적으로 시를 불필요하다 싶을 만큼 길게 만드는 요즘의 경향과 비교할 때, 선명한 이미지의 제시와 긴 호흡을 다채롭게 변화시키는 유려한 리듬을 통해 한국 시에서 장시의 새로운 미학을 일굴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드는 예로 꼽을 수 있다. 그 가운데 드러나는 선연한 상처의 흔적과 세계와 사물을 대하는 부정적 대결의식은 뒷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날카로움 또한 숨기고 있다. 로르카의 민요시를 떠올리게 만드는 감각적 리듬감은 그가 계속 견지해야 할 큰 장점으로 보인다.
장수진의 시는 자신이 창출한 형식을 스스로 그 내부에서 산산조각 내려는 강력한 자기파괴적 힘을 발하는 요설로 시종일관한다. 흡사 접신의 경지에 이른 무당의 굿판을 떠올리게 할 만큼 말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독백조의 발화는 단정하고 우아한 정제미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의 시에 내재된 요설의 형식과 거친 리듬은 시대를 조롱하며 비극적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토해내는 자의 목소리를 연상시키며, 그러한 목소리가 갖게 마련인 강한 마력으로 독자를 자기 세계로 이끄는 형용키 어려운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자기 내면에 도사린 퇴폐와 파멸의 징후를 거침없이 발산하는 그의 시는 한국 시에 또 다른 ‘마녀’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기성의 시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독자적 개성이 빛을 발하는 이들 중 한 사람만을 당선자로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심사위원들은 단 한 명을 선택하는 일을 과감히 포기했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두 명의 새로운 시인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배출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한다. 수준 높은 기량의 시편들을 함께 투고해준 응모자 분들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한국 시의 미래는 고맙게도, 감히, 여전히, 밝다. _ 이광호, 강계숙(문학평론가)
♦ 1차 심사: 이원, 강정, 강계숙 2차 심사: 이광호, 강계숙
—《문학과사회》201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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