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의 전개 외
윤은성
영원이라는 말을 쓴다 겨울의 도끼라는 말처럼 우연히 여기라고 쓴다 공원이라고 쓴다 누군가를 지나친 기분이 들었으므로
모자를 벗어두고 기타를 치고 있는가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아이의 다리 위로 그대는 날아가려 하는가 발을 버둥 가릴 때 옷깃을 쥐려 하는 손들이 생기고
손목을 내리찍으려고 돌아다니는 도끼
물이 어는 속도로
얼음이 갈라지는 속도로
겨울의 공원이 생기지. 해가 저물도록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던 사나이여
그대의 곁에서 넘어지고 일어서는 어린 수리공들
우리는 우리의 작업을
언제든 완료할 수 있지,
그저 꽃잎을 떨구면 그저 붉은색
페인트 통을 엎지르면
상점은 짜부라지면서 물건을 토해내지, 상점의 주인처럼 주인의 집주인처럼 이빨들이 썩어가지, 그림자에서는 머리카락이 점점 길어지고 그대의 책장이 넘어가고
또 해가 저물지, 테이블 위의 물컵은 놓아둔 그대로 있는데 무엇이 여기서 더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불씨를 사방에 퍼뜨리고 말았다네, 우는 말들을 내버려두고 그대의 늙은 신부들이 먼 도망을 준비한다
수리공이 모이자
그대에게 주려던 꽃이 굳고
페인트가 빠르게 갈라지기 시작한다
의자 밑에서 듣는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악수하는 두 마리의 코끼리를 본다거나
검은 승용차가 집 앞에 도착한다거나
손을 귀처럼 떨군다 물방울마다 창문이 비친다 투명은 어디에든 차 있는가 창문은 아귀가 맞지 않는 종種인가
이런 창밖을 기억한다 볕이 지글거리는, 남자가 걷어찬 푸른 의자 같고 의자의 주인인 노인의 다리 같고, 그녀가 내다 놓은 마른 선인장 같은,
골목을 돌아 나가는 고양이의 얼룩 같은
그런 뺨을 기억한다
그가 지났던 곳에 생긴 그을음을
깨진 접시 위에서 파닥거리는 날생선을
그녀가 문지른 뺨에서 떨어지는 소금을
의자가 다시 접착되는 순서에 상관없이
해약하는 계약들의 종류에 상관없이
하루 중 한 순간은 기대어 손을 편다
벽과 손 사이에 화흔火痕인 두 개의 눈이 있다
갈라지는 손바닥, 두 마리의 코끼리와 그 사이의 코끼리
포트가 끓어오르고 손등 위로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휘발유 냄새가 끼쳐오고 사라지는 기나긴 오후
이런 오후로부터 바닥의 청중들은 생기지
어느 벽으로든 튀어 오르고 싶다
점심을 먹고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화흔에 물이 모인다
네 개의 귀 사이에서 얼룩이 잠깐 웃는다
파티션
내가 티스픈으로 계단을 휘젖는다 할지라도
석양이 얼음의 관절을 파고든다 할지라도
얼음의 여름이 가파르고 얼음의 무릎들은 호흡의 간격이고 나는 나의 속도를 늦출 수 없고
시계가 느립니다
1초의 간격은 어디서부터 정지한 석양입니까
기념일에 귀가하지 못하는 자세처럼 등뼈의 관념이 가로등을 닮아가고 분침이 없는 눈동자 안에 눈동자 없는 광장 안에 바람이 불지 않고
시계의 표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전차입니까
얼굴이 궤도에서 노동은 어디서 멈춥니까
*
굴곡으로만 이루어진 총탄이라 할자라도
만국기가 흩날리는 액자 속이라 할지라도
화분이 점점 느립니다 어항이 점점 느립니다 팔꿈치를 얹어 놓을 탁자가 느립니다
새파란 사나이와 더 새파란 사나이 사이
유리의 벽을 생각할 때 깨지고 다시 붙는 공기의 속도
이 혈관의 지속을 멈출 수 없고
창이 지나가고 탁자가 삐걱이고 나의 팔꿈치가 기우뚱하고
고개를 내미는 자리와 고개를 집어넣는 자리와
살갗에 늘어붙은 탄피를 끍어내며
서로를 마주 보는 사나이들
윤은성
1987년 전남 해남 출생
중앙대학교 국문과 대학원 재학 중
2017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 당선
-「문학과사회」 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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