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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 조동범
차창으로 바람은 물렁하게 저녁을 속삭인다. 지평선 너머로 모래바람은 불어오고, 렌트, 당신은 속도를 높여 죽은자들의 지평선 너머를 상상하며 절망에 빠진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흑인 영가의 음역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그것은 알 수 없다고 렌트, 당신은 천천히 읊조린다.
렌트, 쿵쾅거리는 엔진은 육기통이다. 여섯 개의 피스톤은 단 하나의 속도가 되어 이곳을 떠나려 한다. 죽은자는 어느새 무덤을 나와 붉은 사막과 붉은 언덕이 있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가. 도로의 끝에 과연 끝은 있는가.
일기장은 타오르며, 저녁 어스름을 들려주던 검은 재가 되어 사라진다. ‘누구의 것도 아닌 이번 생이여’라고, 라디오의 늙은 가수는 노래하며 흐느낀다. 렌트, 길의 저편에는 오래 전에 죽은 동물의 냄새가 피어오르는구나. 불길한 무덤처럼 부풀어오르는
한줌 태양을 향해, 단 한번도 내 것이 아니었던 생을 향해 렌트, 당신의 속도는 사라지는구나. 핸들을 잡은 나의 손은 렌트, 당신의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 채 길의 끝을 그저 가늠해볼 뿐이구나. 내 것이 아닌 별빛을 바라보며 렌트,
당신을 바라보며 나는 육기통의 엔진처럼 두근거린다. 어디선가 붉은사막의 밤을 서성이던 여우의 울음소리가, 언제나 허상인 렌트, 당신의 비밀을 속삭인 듯도 하였다. 그리하여 렌트. 쿵쾅거리는 엔진은 육기통이고 그것은 영원토록, 당신과 나의 심박이 되지 못하는구나. 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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