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 유현숙
목이마르다.
타르타로스의 호수 한복판에서도 갈증하는 탄탈로스처럼 나는 언제나
처마 끝 단풍나무가 비에 젖는
오대산 중대사자암에 들어 108배를 올렸다.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되새길수록 무릎 아래에 눈물이 고이는 건
어디에도 닻을 내리지 못하는 까닭일까.
빗소리가 남긴 그림자의 빛깔에 대하여 골몰해 본다.
이승길 다니러 오시는 기일상(忌日床)에 눈록(嫩綠)의 차 한잔 올리는 저녁
어머니 계신 길, 서쪽으로 삼천리를 가야 닿는 공간이라 했는데…
장미목 다탁 위로 다정하고 맑은 바람이 머문다. 찻잔을 쥔 그의 손끝에 찻물빛 스몄다.
젊은 날, 목을 매단 친구의 죽음을 목도한 후로
어떤 염세는 평생 허리 굽히고 고개 숙이게 했을까.
젖은 나뭇잎들 아직도 속뜰에서 수수거리고
나는 빗소리가 남긴 그림자의 빛깔과 수수 천리 저 너머의 공간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주춧돌 젖으면 비가 오듯이
눈 감고 내가 깊어지면 사방팔방 뼛속까지 감지되는 기미(機微), 그곳에 당신 있어
나는 구름을 거머쥐고 마른 목청으로 그대를 채색한다.
새벽에는 바람을 닫고 돌아앉아 진공관에 불을 붙였다.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 한 음악가의 생을 더듬는 일, 그를 듣는 일*은
파인 허공의 그림자 한 장을 걷어내는 일
바람을 품어 부드러워진 댓잎이 되는 일
입 닫고 장마저 비우고야 긴 잠드는 개구리를 생각하는 일
사람이 짓고 사람이허문 경계에 대하여 질문하는 일
비로소 한 수유(須臾)의 적막에 물드는 일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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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만의 「첼로협주곡」은 라인강에 투신자살을 하기 전, 1850년에 작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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