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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실역 일번 출입구 / 최정란


퇴근길, 지하도 계단을 올라서면
맥도날드 불빛을 등지고 일 톤 트럭 한 대가
가파른 작은 불빛을 밝히고 있다
그 불빛 아래 손짓으로만 말하는 두 사람
이마에 맺힌 근심을 닦으며 말을 굽는다
말과 말 사이, 사이
숨을 고르는 손으로
꽃 모양 틀에 묽게 풀린 소리의 반죽을 붓고
그 위에 잘 발효된 침묵을 한 줌 얹자
설익은 말들이 숨을 죽이고 돌아눕는다
반죽 묻은 손으로 간을 맞추고
삐걱거리는 관절의 안부를 묻는 동안
젖은 말들 불의 온기를 들이마시고
완숙의 음절로 한껏 부풀어올라
두꺼워지는 어둠을 몇 걸음 뒤로 밀어낸다
종이봉지 안에서는
단골이라고 한 마디 더 얹어준 덤의 말
속에 든 말없음표까지 골고루 뜸이 들고
보드랍게 말랑거리는 말을 받아든
나는 목에 걸린 고등어 가시 같은 누추한 설움에
목 메인 일상을 천천히 목으로 넘기며
무성한 차가운 말들이 파놓은
캄캄한 지하도 같은 숨은 함정들을 용서한다
오늘도 두실역 일 번 출입구 농아 부부
소리 없이 따뜻한 느낌표 같은 붕어빵을 굽는다



 

 

장미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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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시의 쌀을 씻는다. 시의 반찬을 늘어놓고 간을 본다. 아직은 시고 떫고 싱겁고 짜고 맵다. 어느 날인가 감칠 맛 나는 시를 밥상에 올릴 것이다. 알맞게 뜸들여 꼭꼭 씹어먹고 싶은 맛난 시를 써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 시의 식탁으로 초대해 까칠한 녹슨 수염이 비치는 반짝이는 수저를 손에 들려주고 삶의 허기를 메워 주고 싶다.


부엌에 굴러다니던 전복껍데기 하나를 들여다본다. 아름답다. 산란하는 빛에서 파도소리가 부서진다. 빛이 부족하고 파도가 거칠고 껍데기도 하나뿐인 전복의 삶의 조건은 부족한 것 투성이. 저 아름다운 무늬는 다름 아닌 고통이며 슬픔이었을 것이다. 슬픔이 없었다면 드러난 뼈 속에 고통의 무늬를 새기는 대신 허영을 살 찌웠을 것이다. 조금씩 들어오는 햇빛을 물의 프리즘을 통과시켜 갈무리하는 동안에 따라 들어온 물결도 같이 출렁이다 떠나지 못하고 머물렀을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 고통이라면 온전히 내 몫이겠지만 기쁨이라면 절반은 결핍과 부재의 몫이다. 내 미움을 받으면서도 나를 지켜준 결핍에게 악수를 청한다.


나머지 절반은 살아오는 동안 내게 기대를 걸어 주고 참고 지켜 보아 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내 삶의 힘인 지석 지혜, 그리고 늘 나를 설레고 긴장하게 만드는 당신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 아버지와 시어머니, 형제들에게 기쁨의 작은 몫을 드린다. 머무르고 흐르는 귀한 인연들에게도 인사를 전한다. 삶은 고통 속에서 아름답다는 말, 비오는 날도 맑은 날과 같은 무게로 소중하다는 말, 그대들이 없었다면 나는 감히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술한 가능성을 읽어 주시고 말없는 격려로 흙 위로 싹을 올리는 법을 보여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목요창작반 문우들에게도 부끄러움을 건넨다.


신입생의 설렘을 선물로 주시며 격려의 회초리도 같이 주실 신경림 남송우 두 분 심사위원 선생님께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첫 발자국 떼었으니 서두르지 않고 착실하게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다듬이 방망이 소리가 ‘곱게 똑딱, 곱게 똑딱’ 들린다며 어린 나를 옆에 앉히고 굳이 눈감고 들어 보라 하시던 어머니 산소에 이 글을 바칩니다.

 

 

 

 

사슴목발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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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려진 작품은 12명이 쓴 71편이었다. 이 시편들을 읽으면서, 예비시인들이 지향하는 시의 경향이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발상의 새로움도 있었고, 세태를 흥미롭게 반영하는 삶의 시들도 많았다.

 

그러나 심사자들의 관심은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는 시적 대상을 개성적인 시선으로 노래하는 역량이었다.


다양한 소재들이 시적 대상이 되고 있었지만 참신한 언어감각, 선명한 이미지 조형력과 개성적인 자기 호흡법을 지닌 시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는 대부분의 시들이 신춘문예용 맞춤시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cafe 통기타’ ‘낙타할머니’ ‘굴비’ ‘두실역 일번 출입구’ 등이었다.

 

‘cafe 통기타’는 통기타의 줄이 지닌 음역을 다양한 이미지로 변주하고 있는 발상 자체가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짧고 긴 호흡의 교대가 빚어내는 개성적인 리듬은 살만했다. 그러나 시를 여는 첫행의 이미지가 다음 행을 적절히 유도하고 있지 못해 시작의 적절성이 문제가 되었다.


‘낙타할머니’는 한 노파의 일상의 모습을 낙타로 형상화하고 있는 발상은 좋았으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기법이 너무 교과서적인 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새로운 발상에 걸맞는 새로운 이미지가 필요했다는 말이다.


‘굴비’ 역시 충분히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역량을 보이는 작품 중의 하나였다. 어머니가 엮던 굴비에 대한 추억을 섬세한 리듬과 원형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는 점은 이 시가 지닌 강점이다. 그러나 한 편의 시가 지녀야할 구성의 집중력이 떨어져, 시가 지녀야 할 긴장감을 갖지 못한 것이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이에 비해 ‘두실역 일번 출입구’는 시의 구성력이나 언어를 다루는 감각이 뛰어났다. 뿐만 아니라 농아부부가 굽는 붕어빵을 시적 대상으로 삼아, 그들이 빵을 굽는 행위를 말을 굽는 시적 의미로 끌어올리고 있는 시선이 돋보였다.


그리고 그들과의 교감을 통해 전해지는 시적 화자의 따뜻한 인간애를 무리 없이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데 쉽게 합의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계속적인 정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 신경림(시인), 남송우(문학평론가·부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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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집 근처 / 전다형


구서1동 산 18번지
무허가 간이 수선집이 있었네
의수족 아저씨는 십 수년 째
주일만 빼고 수선일을 했네
나는 팔 부러진 우산을 들고 찾아갔네
허름한 문이 굳게 닫혀 있는
단골집 돌아서다 어둠 속
우두커니 서 있는 입간판에게 물었네
수척한 얼굴로 속사정을 털어놓았네
꺾어진 골목으로 어둠 몇 장 굴러다니고
영문을 모르는 바람이 틈새를 드나들고 있었네
맞은 편 산뜻한 수선집 미싱 요란하게
푸른 하늘을 박고 있었네
찾아준 은혜 잊지 못할 겁니다
헛걸음하게 해 죄송합니다
삐뚤한 글씨체가 손잡이 근처 붙어 있었네
나는 뜨거운 것을 목에 걸었네
발길을 돌려 건널목에 섰네
의수족 아저씨가
손때 묻은 연장을 메고 걸어가고 있었네
누가 맡겼다 찾아가지 않은 낡은 가방에
망치, 칼, 가위 쓰다 남은 실, 지퍼, 우산대 몇
땅으로 기우는 어깨 위에서 강물소리가 들렸네
아저씨가 자꾸만 되돌아보았네
신발 밑창에 친 못처럼 총총하게 박혀 있는
별을 올려다보며 헛기침을 했네
수선집 근처
굵은 주름살 떨어져 뒹굴고 있었네




 

수선집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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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연필을 깎는다. 뭉텅한 연필 입구 깊숙이 들이민다. 빙빙 돌린다.

투명한 통에 잘게 부서져 쌓이는 나무들의 아픔 어디에 뿌리를 남겨둔 나무였을까. 또 다른 제 살들은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무의 아픔 끝에, 몸체 안에 숨은 심이 보인다. 그 단단함이 역사(歷史)같다.

뼈와 살을 깎는 아픔으로 세상을 건너보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 그런 삶만이 깊고 곧은 마음을 품을 수 있다.


내 삶을 연필 깎기에 넣어 빙빙 돌린다. 톱날이 신이 난다. 욕망과 죄의 비늘을 쳐내고 물관부의 투명으로 눈뜨고 싶은 것이다. 때로는 밤을 세워 섬세한 연필심으로 시(詩)의 행을 이어나가고 싶은 것이다.

연필이 깎인다. 뾰족한 심이 일어나 나를 찌른다. 아픔을 견딘 것만이 가장 아름답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시인의 명찰’을 달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내 시의 철자법부터 짚어주신 하현식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께도 감사드리며 함께 공부한 문우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묵묵히 내 시의 길을 지켜봐 준 가족들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사과상자의 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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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200명에 이르는 응모자의 시들 중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20명 시인들의 시적 수준이 모두 만만치 않았다는 점에서 심사자들은 아주 ‘기뻤음’과 함께, 단 한 편을 골라야 하는 ‘고통에 빠져야 했음’을 밝히고 싶다. 그러나 거의 전부 산문시라는 ‘시적 유행’에 물들어 있는 점은 심사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며 언어를 쓰는 솜씨, 또는 그러한 감각적 표현의 형상화는 모두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으나 그 감각의 표현 뒤에 숨은 사유라든가, 리얼리즘의 진정성, 따라서 肉化되어 있는 시를 찾기가 어려웠음은 결정적 흠이었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남은 작품들은 다음 네 편이었다.

‘해류와 노동’, ‘주먹만한 구멍 한 개’, ‘퇴행성 관절이 왔다’, ‘수선집 근처’- ‘해류와 노동’은 상당히 아까운 작품이다. 그러나 신선한 그 소재와 시적 세계에도 불구하고 아직 관념성이 농후했다. 그리고 리듬감이 없었다. 좀더 진정성으로, 리얼리즘의 무대를 세웠다면 리듬감이 살아나는 시를 이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먹만한 구멍 한 개’는 사유가 있는 시적 공간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그 사유의 깊이가 언어에 실리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언어와 사유가 따로 놀고 있었다고 할까.

‘퇴행성 관절이 왔다’도 진정성과 필연성, 구체성이 함께 하나의 시적 무대 위에서 형상되지 못하고 있었다. 상당히 육중한 세계를 세우려고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선집 근처’는 우선 리듬감이 있고, 시적 무대 위에 형상화된 세계가 아주 肉化되어 감지되는, 아름다운 시였다. 그리고 감각적 언어에 실린 그 사유의 깊이도 심사자들을 아주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또 이 시인의 시 중에 ‘구서동 신 서동요’가 지닌 리얼리스틱한 현장감의 언어도, 이 시인의 시에 대한 심사자들의 마음의 자를 간절하게 했음을 밝힌다. 따라서 심사자들은 위의 네 편 중에서 ‘구서동 신 서동요’를 쓴 시인의 ‘수선집 근처’를 당선작으로 하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예심 정일근· 이성희 / 본심 허만하·강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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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파업  / 오영숙

 

 

집이 난파되자 나는 가슴에 얼음 하나 깨고 있었다
햇볕에 풀어져버린 기와집은 아버지를 밀어내고
활자가 부서진 우편함에는 주인 잃은 일련번호들이 빗물에 잠겨 얼룩을 물어 뜯고 있었다
등이 굽은 문짝 사이로 세간들이 퇴행성 관절염에 걸려 전신을 삐꺽거리며 엎어진다
여기 저기서 숨어있던 먼지들이 뛰쳐나와
아버지의 독한 체위에서 잠수한다
허기진 방안을 매운 온기가 가족사진에 곰팡이를 피워내고
내 어린 시절을 떠내려 보냈다
청마루 밑에 흩어진 헌 신발들이 맥박이 뛰고
빈 뜨락에는 녹이 슨 농기구들이 동강 나서 비명을 지른다
한 구석에는 잠을 털고 일어선 우물가에는 절구통이 무게를 잰다
나는 아버지의 흔적을 하나하나 버리고 있었다

 

 


춘궁기  / 오영숙

 

초가집 서까래는 전신을 삐걱대며 소리를 낸다
촘촘히 박힌 돌담, 한 모퉁이가 허물어졌다
허물어진 흙더미 속에서 일어난 붉은 장미 한그루가
햇살을 당기며 울타리를 만들었다 울타리는 안간힘으로
서서 얼굴을 가리고 봄 날을 만났다 풀섶을 헤친
틈 사이에서 못다핀 꽃 한송이가 빗장을 푼다
넓은 마당에는 낡은 의자가 부러져 움츠리고 앉자
슬픈 상처를 달래고 있었다 욕망의 살갖을 태운
얄팍한 브라우스가 창가에 서성이며 잃어벼렸던 암내를
찾고 있었다 암덩어리 끄집어 낸 돌담은 무게 무거워서
길 하나 열어놓고 불그레 취해있는 장미와 물레방아를 돌린다
속살드러낸 이데올로기 길 밖으로 질주한다

 

 

 

 

[당선소감]

 

《부모님 영전에 영광바쳐》밤마다 골짜기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여울은 다시 세찬 바람이 되어내 어린 날의 가슴에 그리움의 언덕 하나씩을 쌓아올렸다. 그렇게 내 시의 꿈은 열병처럼 달아올랐다. 때로는 벼루에 먹을 갈고 화선지에 문인화를 저미면서 시를 향한 담금질을 쉬지 않았다. 그리고 당선소식을 접하는 순간 내 작은 어깨 위에 큰바위덩이 올려졌다.

고달프지만 즐거운 이 길을 나는 소중하게 가꾸어 가리라 다짐한다. 잔잔한 파도가 거센 파도 앞에서도 역시 파도가 되는 것처럼 시는 나의 일상이며 생활이 될 것이다. 부딪혀도 깨어지지 않는 모래알로 남을 것이다.

자리를 마련해 주신 국제신문과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언어미학의 맛을 깨우쳐 주신 하현식선생님께도 깊은 감사드립니다. 먼나라에 계신 부모님 영전에 모든 영광 바칩니다. 그리고 항상 자상한 남편과 내 착한 아들 승준이와 격려해 준 문우들과 더불어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마트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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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선을 거쳐 선자들의 손에 넘어온 작품은 열 분의 것이었다. 시단의 흐름을 일정하게 따르고 있으되, 다 같이 시적 개성이 무엇이며 새로움이 무엇이며 현실이무엇인가를 알고 썼다고 할 수 있다.

왜 시가 새로워야 하고 개성적이어야 하는지를 재론할 필요는 없다. 새롭지 않으면 새로운 신인이 등장할 필요는 없다.

선자들은 위와 같은 시각에서 열 분의 작품을 꼼꼼히 읽고 검토하였다. 그런 과정을 두 시간쯤 거쳐 우리의 손에는 이영옥씨의 작품과 석미화씨의 작품, 오영숙씨의 작품들이 남았다.

이영옥씨의 작품들은 여섯편 모두 고통스런 삶이 가지는 깊이와 넓이를 지니고있다는 점이 남달랐으며, 석미화씨의 작품은 당선작으로 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강구에서」의 「전어들이 가을을 몰고 다닌다」거나 「비상등을 켠 안개는 소문처럼」이라는 구절은 시의 맛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이미지들을 투명하게그리고 끈질기게 밀어나가며, 매우 절제된 언어를 쓰고 있는 오영숙씨의 작품들이나타나자 밀려났다. 오영숙씨의 작품에서는 허점도 과욕도 찾기 힘들다. 균형을 취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응모작품 모두가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있다.

선자들은 「아버지의 파업」 「춘궁기」 두 편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쉽게 합의하였다. 쉼없이 정진하여 좋은 시인이 되기를 선자들은 바란다.

 

심사위원 김규태, 최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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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 강리


새벽마다 유리창이 잠을 깨웠다
얼음산 몇구비 방안에 들어섰고
발시린 보리밭은 퍼렇게 일어섰다
갈가마귀 두 마리 날개를 둥글게 말아
허공에 검은 울음을 쏟는다
싸늘한 구들장 철마산이 뒤척였다
저문 금숭화 빛으로 손등이 갈라지고
머리칼에 내려온 사락별이 빗질을 한다
창가에서 손톱으로 세상을 지웠다
하얀 산맥들이 우수수 무너지고
죽은 새울음소리 소의 혼령이 되어 지나간다
서릿구름이 산허리를 치댈 때
눈가루를 뒤집어 쓴 기차가
사내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온마을 동솥은 아낙네 한숨을 끓이고
아랫마을 산모의 허기는 서까래를 들먹거렸다
겨울모퉁이에서 삭지않는 눈바람은 숨이 가빴다
아침 햇살이 으깨어진 길을 일으키며 다시 돌아왔다

 

 

 

#풀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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