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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감 / 김순옥

 

 

방을 빼라는 집
주인의 목소리가 뜨거워
엉뚱한 방에 들어가 누워보아요
문지방에 끼인 돌멩이가 으스러져요
감긴 눈을 씹었어요


생선꼬리라도 주세요


돌멩이가 입 안에서 굴러다녀요
미안해요 뱉을 수가 없어요
입 깊숙이 밀어 넣어 볼까요?


늙은 복숭아 껍질에 돋은 거웃이
천일동안 타고 있대요
꽃을 달고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요


노랗게 곪아가는 눈
저만치
나는 엄마보다 더 늙었고
낯익은 젊은 여자 하나
생뚱맞은 얼굴로 거울을 빠져 나가요


불 꺼진 방 아랫목에 우두커니
앉아 있어요

 

 

 

 

[당선소감] 내 안에 끓고 있는 시어들 계속 퍼담아 내고파

 

눈 내린 비암산 계단을 오르며 앞서 걷는 학우들의 등에 나의 표정을 새기고 햇살에 차가운 입김을 데우는 동안 우리는 선구자를 목 놓아 불렀습니다. 시인의 고향을 찾아 서러운 나무가 되어 바람을 끌어안은 그곳에서 간절한 소망 하나를 주머니에 담아 온 며칠 후 질문 하나를 던지듯 날아온 소식에 쓸쓸한 등을 기댈 곳이 내게도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잠시 어리둥절한 틈을 타 기쁨이 봇물 터지듯 차고 넘쳤습니다.

 

저승에 계신 아버지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제 얼마만큼의 나를 바라볼 수 있을지, 지나온 시간 속에 시가 있었고 중년의 문턱을 넘었을 때 중독처럼 다시 다가온 시는 내 안의 어두워지는 순간에 진심을 담아낼 힘을 주었습니다. 내 안에 끓고 있는 하얀 시어들, 나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시어들이 눈물에 찍혀 하나둘씩 떨어지곤 했습니다.

 

마음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지면을 허락해 주신 국제신문과 더 용감하게 시를 쓸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강영환 선생님, 곽재구 선생님, 문태준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지금보다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겸손한 자세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시의 진실이라며 적당한 시의 중독을 가르쳐 주신 김륭 선생님, 아버지 같은 미소가 보고 싶습니다. 아파할 때마다 힘이 되어 주었던 오 선배님을 비롯한 반문 선배님, 글쌈 문우님 고맙습니다. 하얀 손수건을 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격려해 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수고했다며 등을 토닥여 주던 남편과 시를 쓰면서 행복해하는 엄마가 정말 보기 좋다는 나의 숨과 같은 진영, 은영 고맙고 사랑합니다.

 

어린 시절 나의 우주였던 아버지, 어머니 아프도록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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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여성 세입자 미묘한 감정 변화 섬세하게 포착

 

투고작들을 읽으면서 설레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이 작품들로 인해서 한국시의 미래가 열린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경쟁한 작품들은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신선한 감각의 내용도 좋았고, 고유한 육성도 청취할 수 있었다. 다만 전반적으로 장황하다는 느낌이 들게 해 아쉬웠다. 생각에 비해 언어들의 부피가 과도한 경우가 있었다.

 

최종심에 남은 작품은 이희주 님의 '하현', 황미현 님의 '나선형 화석', 김순옥 님의 '질감' 3편이었다.

 

'하현'은 밤 하늘가에 뜬 하현달을 만두의 형상에 빗댄 작품이었다. 만두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방법을 시에 버무려 놓으면서도 만월에서 하현으로 이울어가는 시간의 경과도 함께 활용했다. 그러나 '한 여자를 다 돌아 나와야 먹을 수가 있는' '그때 굴뚝연기는 온 동네에 맛있는 소문을 퍼뜨리고'와 같은 표현이 모호하고 평범해 작품 전체의 재치 있는 상상력을 제한했다. '나선형 화석'은 정밀한 묘사를 보여주었으나 너무 인위적으로 다듬어서 자연스러운 시상의 유로(流路)를 방해했다.

 

'질감'은 세입자의 생각과 감정을 담담하게 그리되 그것의 미묘한 변화를 잘 포착한 작품이었다. 갈등하는 마음속을 겉으로 드러냄은 물론 늙어감에 대한 한 여성의 심리 상태를 세밀하게 표현했다. 심사위원들은 김순옥 님의 시 '질감'을 당선작으로 흔쾌히 결정했다. 자신만의 시 세계를 펼쳐 한국 시단의 변화를 이끌어가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곽재구 강영환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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