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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낙타 / 권수진
어느 날 문득 세상이 황량하다고 느껴질 때
내가 건너야 할 길이 사막인 걸 알았다
황사가 지나간 자리마다 끝없이 펼쳐진 물결무늬 모래톱
카라반 행렬 속에 짐을 얹고 걷는 동안
지친 내 발걸음이 백년처럼 길었다
어두운 밤, 남천 끝자락에 총총한 전갈자리
한껏 맹독성의 오기를 품고 살지 않으면
삭막한 이 도시는 그 무엇도 얻을 수가 없었다
당신의 눈빛은 강렬하고 뜨거웠으나
차가운 별빛아래 얼어붙은 내 심장을 도려내진 못했다
밤마다 아무도 모르게 층층이 쌓아 올린
바람만 불어도 쉽게 무너지는 모래성 같은 꿈
굴곡진 내 삶은 늘 2%의 물이 부족했다
비에 굶주린 광야 한 가운데 내팽개친
목마른 영혼들이 안식을 취할 곳은 어디인가
모래알과 모래뿐인 사구를 넘는 동안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멍에가 혹이란 걸 알았다
아무도 찾지 않고 그늘 한 점 허락지 않는
사하라, 나미프, 룹알할리, 타클라마칸
저 멀리 신기루 한줌을 움켜 쥔 내가 보인다
오아시스처럼 맑은 눈을 가진
낙타의 눈망울 속에 비친 푸른 하늘이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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