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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 최재영

 

 

연두빛 내력들이 제 몫의 봄을 키우느라
햇살을 끌어 모으는 중이다
허공 한구석 팽팽해지고
골목에 나앉은 늙은 여자들
볼우물 가득 생의 이력을 오물거리는지
골목은 하루종일 분주하다
봄의 한 복판에서 출렁이는
저 환한 푸념들
가지마다 탱탱하게 들어차는 수런거림
한 순간 시간이 정지된 듯
지상과 허공 그 짧은 간극으로
물오른 생의 주름들이 펼쳐지고
음탕한 농담 한 두 마디 건넬 때마다
자지러지게 흩어지는 쭈글쭈글한 웃음소리
잠시 생을 붉게 물들이는
봄날 눈(眼)빛 환한 기억들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다
담장에 기대앉은 봄꽃들
한동안 그들이 피워올린 검버섯을 따라 올라가고
여기 짧은 환희, 봄은 덫이었나.

 

 

 

꽃피는 한 시절을 허구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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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든든한 버팀목 동인들에 감사”

 

오랫동안 불면과 함께 지냈다.

불편한 이름 하나 가슴에 간직한 채 수년을 흘러왔다.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고 새벽녘 수시로 찾아들던 까닭모를 설움들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밤새 머리맡에서 수군거리는 은유의 모퉁이만 스쳐도 그 밤은 행복했다.
눈을 뜨면 무수히 쏟아지는 허물……, 나는 얼마나 자주 절망을 내몰아야 했던가.
시 쓰기는 항상 어렵다. 알 수 없는 것들이 나를 이곳까지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크고 작은 사소한 상처들이 생의 변두리로 나를 밀어냈는지도 모르겠다.
상처의 흔적 하나씩 생길 때마다 내가 견뎌야 할 시간은 깊고 또한 어떤 목표라고 여기던 것들은 점점 멀어지는 순간을 경험하면서 매번 쓰디쓴 독배를 마시곤 했다.


지사연수로 대둔산을 산행하게 되었는데 그곳 정상에서 어떤 새로운 다짐을 새기고 있을 때 전화를 받았다. 골목길…… 내 생의 상처가 자라고 그 상처가 다시 꽃이 되어 피어나는 곳, 바람이 들어차면 그곳에 뿌리내린 모든 삶이 다시 환하게 들썩거리는 곳……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골목길을 나는 오래도록 사랑하게 될 것이다. 또한 내 언어의 뿌리도 그곳을 지나치지 못할 것이고 오래오래 곰삭아 깊은 맛이 우러나는 언어가 그곳에서 피어날 것이다.


내 안에 푸른 독이 스미기를, 내 안에 갇힌 사유들이 자유롭게 햇빛을 볼 수 있기를, 그래서 날카로운 칼날로 나를 벨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 편 한 편 시를 쓸 때마다 다짐을 한다. 삿됨없이 시를 쓰도록, 내 시가 누군가를 위로하고 기쁨을 줄 수 있도록 또한 절실하지 않은 그 무엇을 나는 애써 미화하고 있는가를…….


이미 올 봄에 이승을 떠나신 어머니, 당선소식에 세상에서 당신이 제일 예쁘다고 말해준 남편, 아침도 잘 챙겨주지 못하는 엄마를 제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이들, 모두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 내가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의 지사장님과 이곳 평택의 영어를 책임지는 사무실의 선생님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 같은 시원 동인님들과 이 기쁨을 같이 하겠다. 부족한 작품에 손 들어주신 대전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리며 큰 절 올립니다

 

 

 

루파나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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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적 미학 절묘한 표현 돋보여”

 

예심을 통해 올라온 작품은 16명이 출품한 80여편이었다. 이 중에서 본심을 통해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네 명의 다섯 작품.

 

‘그해 겨울…’(허남훈)은 아프가니스탄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그린 시였다. 변압기 공장에서 손가락마저 잘리고 임금마저 받지 못한 채 고향인 카불로도 갈 수 없는 처지인 형을 한국인 화자의 시선으로 그렸다. 이 시는 과거의 리얼리즘 시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작품 속에 감상주의의 낙인이 깊게 남아있다.


‘맛있는 두부’(최성춘)는 이채롭고 속도감 넘치는 시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말랑말랑한 두부는 아스팔트에 떨어졌다/ 두개골이 갈라져 피가 나듯이/ 녹슨 냄새와 국물은 흘러나왔다”처럼 식탁에 차려진 두부와 오토바이 사고의 기억을 합성시켜 특이한 시적 활력을 생성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후반부로 갈수록 활력을 살리지 못한 채 상투형으로 마무리된 것이 흠이다. 시는 소설처럼 연속된 서사가 아니라 비연속의 연속적 서사다. 텍스트에 너무 친절한 서사를 부여한 점이 이 시의 최대 약점이었다.

 

‘떠들썩한 식사’와 ‘검객 사오정’(김영식)은 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떠들썩한 식사’는 “오후 두시의 강변 뷔페 안” 창가 식탁의 어느 청각장애부부의 “부지런한 필담”을 마치 그 부부의 일원이 된 듯 세밀하게 전하고 있다. 또 ‘검객 사오정’은 “황사 휘날리는 도시 비탈을 순례”해야 하는 자본주의 세일즈맨의 ‘검법(판매술)’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두 작품의 결점을 굳이 찾자면 작품들이 너무 고요하게 완성됐다는 점이다.


“연두빛 내력들이 제 몫의 봄을 키우느라/ 햇살을 끌어모으는 중이다”로 시작되는 ‘골목길’(최재영)은 응모작들 중 단연 돋보이는 따뜻한 작품이다. 총 20행의 시행들이 저마다의 밀도로 촘촘히 살아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볼우물 가득 생의 이력을 오물거리는지/ 골목은 하루종일 분주하다”와 같은 표현은 그야말로 순간포착을 절묘하게 묘사했다. 또 시적 미학을 충분히 쏟아놓은 마무리 역시 뛰어나 심사위원들은 일치된 마음으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 김명인, 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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