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 간 거울 / 정용화
얼어있던 호수에 금이 갔다
그 틈새로 햇빛이 기웃거리자
은비늘 하나가 반짝 빛났다
그동안 얼음 속에서
은어 한 마리 살고 있었나보다
어둠에 익숙해진 지느러미
출구를 찾아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 속을 헤엄친다.
넓게 퍼져 가는 물무늬
한순간 세상이 출렁거린다
깊고 넓은 어둠 속에서
너를 지켜주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픔 속에서 반짝임이 나온다
반짝이는 모든 것은
오랜 어둠을 견뎌온 것이다
금이 간다는 것은
또 다른 세상으로의 통로다
깊이 잠들어 있는 호수 속에서
물살을 헤치고 길이 꿈틀거린다
[당선소감] “참된 미학 지향해 나갈것”
매서운 기세로 겨울이 당도했습니다
바라보던 눈빛 그대로 두고 이파리 다 떨군 나뭇가지는
그 모습만으로도 춥습니다 하지만 나뭇가지 속에는
겨울이 푸른 어둠으로 꿈꾸고 있음을 믿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시를 품고 살았습니다
문학은 내게 있어 미완성적 허기를 채우기 위함입니다
시가 되기 위해 기다리던 사물들이 언어를 만나
갇혀있던 존재에게 제 이름을 붙여주고 작고 하찮은 것에
가치를 부여하여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을 하면서
때로는 지치고 힘들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내안의 또 다른
나를 다독여야했습니다
언젠가 수필집에서 꿀벌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원래 꿀벌은 몸집에 비해 날개가 작아서 날 수 없는데
꿀벌은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날개짓을 해서 날 수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나 역시 꿀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선 부족한 글에 눈 맞춰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생을 부여해주신 부모님과
인생의 동반자이면서 같은 문학의 길을 걷고 있는 남편,
예비 시인인 딸 혜미와 함께 당선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십년동안 변함없이 시창작을 지도해주신 배준석 선생님과
안양여성문학회 문우들에게 이 영광 돌리고 싶습니다
날카로운 지적 아끼지 않았던 박남희 선생님과 문학을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던 인사동 착시 모임도 꼭 기억하고 싶은
이름들입니다
날개가 있어서 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간절히 날기를 원하기
때문에 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인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신 대전일보사에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참된 미학을 지향하는 시쓰기로 보답 하겠습니다
[심사평] “완성도ㆍ날카로움 돋보여”
수천편의 응모작 가운데 함민복 이정록 시인의 엄격한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우이정의 ‘빈컵’외 정재영의 ‘밤톨, 다이아몬드’외 등 17분의 시 70여편이었다. 다시 심사위원 두 사람이 나누어 읽고 추려낸 것은 김영식의 ‘떠들썩한 식사’외, 김명희의 ‘노트북’외, 이지혜의 ‘곰달래길 사람들’외, 정재영의 ‘손이 쥔 손’외, 그리고 정용화의 ‘금이 간 거울’외 등이었다.
이 작품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최종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곰달래길 사람들’, ‘손이 쥔 손’, ‘금이 간 거울’등 3편이었다.
‘곰달래길 사람들’은 안정된 시 정신과 표현이 너무나 모범적인 것이어서 좋은 작품으로 판단되었으나 바로 그점이 동시에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또한 ‘손이 쥔 손’은 너무 작품성이 농익어 그만 터져버릴 것 같은 원숙함이 장점이었으나 동시에 그것이 신인다운 패기나 신선도에 있어 아쉬움으로 작용하였다. 오랜 고심과 논의 끝에 ‘금이 간 거울’을 당선작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당선작은 작품의 완성도도 높고 시적 사유의 깊이 또한 갖추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예리하고 신선한 감각이 신인으로서 앞으로의 가능성을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아픔 속에서 반짝임이 나온다/반짝이는 모든 것은/오랜 어둠을 견뎌온 것이다//금이 간다는 것은/또 다른 세상으로의 통로다’라는 구절등에서 볼 수 있듯이 틈의 틈을 날카롭고 섬세하게 들여다봄으로써 어둠 속에서 빛이, 무에서 존재가 생성되고 존재가 비로소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존재론적 사유를 보여주는 것도 장점과 가능성으로 부각되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면 좋은 시인으로 성장해갈 것을 믿고 우리는 이 작품과 시인을 당선작으로 선정할 것을 합의할 수 있었다. 당선자의 각고 정진과 선외 예비 시인들의 새로운 분발을 기대하고 희망한다.
심사위원 김재홍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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