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침대 / 오병훈
그의 침대에는 한 마리의 악어가 산다
한 번 물리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보일 만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불은 검은 늪 위에 떠있는 아름다운 분홍 수련이다. 이불 밑에는 거대한
앨리게이터가 눈을 희번득거리며 천천히 유영을 하고 있다
악어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영원한 포로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는 악어를 숭배한다 매일 밤 그는 악어에게 자신의 먹음직스런 살점과 하얀 뼈를
제물로 바친다 악어가 그의 살점을 뜯을수록 의식은 점점 혼미해진다
그가 불면증에서 벗어난 것도 악어의 덕분이다 지난 장마 폭풍우가 몰아치던
여름밤 꿈에서 그는 처음으로 악어를 만났다
5년 간의 실직이 그를 한 병 반의 소주 없이는 잠들 수 없게 만들었고 그런 그에게
악어는 구세주 같은 존재이다
악어는 조금씩 조금씩 그의 살점을 뜯어먹는다 하지만 고통은 잠시뿐
피를 흘리면 흘릴수록 그의 정신은 혼미해지고 그는 이내 아득하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언젠가 악어는 그의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탐할지 모른다
비내리는 검은 밤 그는 지금도 악어를 만나기 위해 검은 늪 위에 몸을 누인 채
분홍 수련 이불을 덮고 있다
[당선소감]
인간은 태초에 선한 존재였을까? 악한 존재였을까?
한때 이 명제에 대해 한참동안 생각한 적이 있었다. 대학에서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공격적이고 대인관계를 가벼이 생각하였다. 힘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하나의 가설을 만들게 되었다. 태초에 사람이라는 유인원은 악한 짐승이었다. 헌데 짐승들의 무리중 한 마리가 절름발이였다. 다른 동료들은 그가 약하고 빨리 걷지 못하니까 그를 장난삼아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그는 동료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며 하나의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걸까?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그 절름발이가 인간이 선해지는 사고를 하게된 첫 번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힘든 사회생활로 내가 탈진했을 무렵 도시개발공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곳은 놀랍게도 멋진 남자들의 집단이었다. 그것이 대학 졸업 후 시를 다시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다시 사람이라는 단어에 대해 희망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게 된 것이었다.
대전일보는 나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한 신문사이다. 나는 동산중학교에 입학할 시 용두동에 살았었는데 학교는 문화동에 위치했다. 수업이 끝나고 문화동에서 용두동까지 걸으면서 항시 나는 대전일보사 앞에서 한시간 정도를 서 있곤했다. 당시 대전일보사 사옥 앞에는 큰 신문 열람판이 있었는데 중학교 1학년의 소년에게 그것은 새로운 세상, 어른들의 세상에 눈을 뜨게 하였다. 아직도 빙그레 이글스의 한희민 고원부 강정길 이정훈의 활약상에 대한 기사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내 시의 토양인 충남대 시목문학동인회와 지도 교수님인 신용협교수님 그리고 신춘문예를 도전하도록 힘을 준 혜원이 또한 내 글의 열렬한 팬이자 지지자인 여동생 연희에게 고맙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시를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 드린다.
[심사평]
1천 5백편이 넘는 응모작을 한 자리에서 보아낸다는 것, 그 가운데에서 단 한편만을 골라낸다는 것, 두 가지가 모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날로 살기는 어렵다는데 시인의 꿈을 접지 못하는 예비시인들이 이토록 많다는 데에 놀라운 마음을 가지면서 밭을 가는 마음으로 시를 읽었다.
거르고 걸러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김인옥의 「아버지의 모자」, 임수련의 「포도를 먹다가」, 오병훈의 「그의 침대」, 조혜영의 「모서리 사진관」, 김화순의 「그네」 등 다섯 편이었다. 제일 처음 떠오른 작품은 「아버지의 모자」였다. 시에 삶과 사색의 무늬가 곱게 들어가 있어 우선적으로 호감이 갔다. 허나, 함께 응모한 작품이 뒤를 받쳐주지 못했고 감상적인 표현이 지적되어 뒤로 밀렸다. 그 다음으로 떠오른 작품이 「모서리 사진관」과 「포도를 먹다가」였으나 전자는 깔끔하게 다듬어졌기는 하지만 소품이란 점에서 후자는 상상력이 뛰어나고 섬세한 표현에 마음이 갔지만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또한 많이 주저스러웠다.
마지막으로 남은 「그네」는 현대문명을 소재로 다루면서 사물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세계를 직관에 의해 찾아내는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어서 끝내 놓기가 아쉬웠다. 그러나 신춘문예란 제도가 스타탄생을 말하고 폭풍 그 자체이고 제왕 뽑기란 점에서 끝내 <그의 침대>로 落點되고 말았다. 이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결과인데 안전제일주의보다는 조금은 모험주의를 따른 것이고 엇비슷한 풀보다는 지상에 없는 異種의 풀을 심사위원들이 원했던 까닭이다. 또한 함께 응모한 작품의 수준이 대체로 고르고 「거미」와 같은 작품이 이 시인의 실력을 증명해주었음도 添記하고 싶다. 이 시인의 시엔 기발한 着想, 사물을 객관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나고 새롭다. 그러나 산만한 표현이 있고 獵奇性이 강해 사물을 따스하게 끌어안는 마음의 능력을 앞으로 길러야 할 과제를 갖고 있다. 그렇다 해도 새로움과 도발성과 그만의 唯美主義는 커다란 자산이요 힘이다. 기성시단의 눈치를 보지 말고 부디 駿馬로 자라 멀리 멀리 달려가 그만의 광활한 풀밭을 발견해주기 바란다.
심사위원 문정희(시인·동국대교수) 나태주(공주 상서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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