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환승換乘입니다  /  김주명


그날 저녁, 마트에서 조개들을 만났다 사각 비닐 팩에 꽁꽁 얼려져 있었다 내란 음모에 가담도 못해보고 잡힌 유민流民의 형틀 같았다 껍질이 없으니 나와 동족인지 알 수 없지만, 벗은 아픔일까 맨살에서 스며 나온 점액질에 나는 발 묶였다


우마牛馬의 수레를 타고 온 내게 버스는 6분후에 도착한다고 안내판이 일러 준다


바다로 가는 길은 졸음일까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열반에 든 석고 반죽처럼 꿈쩍도 없다 제법 익숙한 노래들을 안내방송이 연신 잘라 먹는다 점점이 어깨 벌어진 네온 간판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진다는 생각은 결코 녹아드는 졸음을 가두지 못했다


고개 떨어뜨릴 때 마다 마주보게 되는 얼굴, 환승입니다 환승입니다, 바다는 침잠 된 삶의 끝에서 푸르렀다 종점이라고 여기가? 등 떠밀리 듯 내려선 여기는 칼바위 갯골, 손 뻗어 몰려드는 밀물이 내 몸의 손잡이를 잡고 첫발을 딛고 있다

 

 

 

728x90

 

 

 물 한 모금 / 김영


해수욕장 폐장하는 날 비가 내렸다

내 모래 무덤에도 비가 내렸다

빗소리가 봉분을 찔러댔지만

뜨거운 모래 속의 알몸은 안전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메마른 대지에 퍼붓는 욕지거리

메우지 못한 웅덩이마다 욕창이 덧나고

푸른 상처가 너덜거리는 바다엔

발굴되어 허물어진 귀

또렷하게 젖어가는 증거물들

자정으로 가는 빗소리는 가파르고 촘촘했다

밤새 뒤척이며 뒤적였지만

빗소리가 지닌 혐의는 찾을 수 없었다

한 나절 태양이면

빗물이 충분히 증거를 말릴 수 있는 시간

문득 목이 말랐다

지독한 허기였다

 

 

 

728x90


그릇 / 이인주


  운문사 연화대에 그대 모시러 갔다가 이미 꽃으로 피어 있는 그대를 보았다 하늬바람 잔잔한 미소 하나가 정오를 가르며 환히 피어나고 있었다 실뿌리 아늘아늘 담아낼 그릇 하나 없는 빈 손바닥, 낡은 지문이 가문비나무처럼 흔들렸다 그 손안에 그대를 엮어두고자 하는 우매함이 雲門 밖 풍경소리로 떨어졌다


  그대가 나를 깨었는가 내가 그대를 깨었는가 허공에 부침하던 어떤 뜻이 죽비로 내리쳤다 아프다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멍울이 명치를 메어왔다 길이란 길은 죄다 등 돌리고 있었다 질문들의 참혹한 막다름이 마음의 모서리를 들이받았다


  부서진 종소리가 그대 손끝에서 다시 살아난다 틈과 틈이 거느린 하얗게 빛나는 가문비나무 몇 그루, 초두루미처럼 웅숭깊다 부서져 비로소 완성되는 나, 민무늬와 빗살무늬 사이 그대가 만지면 부스스 깨어나는, 바람과 햇빛 물과 불의 거처에 순연한 내가 누워 한 잔의 백련차로 우러나고 싶다 한나절, 갸륵갸륵 갸륵한 물새들을 본다 넓이를 모르는 연못을 건너는 연밥그릇이 아름답다

 

 

 

728x90


불혹의 집 / 전영관


늦도록 야근이라도 했을까 두런두런

손 씻는 버드나무 야윈 팔 사이로

고단한 새벽만 우련하다

해쓱하게 마른버짐 핀 얼굴로 산은

종아리까지 발 담근 채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갈대들의 연두 빛 걸음걸이를 헤아리는 중인데

청태 자욱한 자갈밭에 드문드문

헤집어 놓은 자리들 뽀얗다 지느러미 뭉툭해지도록

거친 바닥을 밤 새 뒤척인 흔적이리니


세월이 잔잔하게 무두질한 강물도 속내는 그렇지 않아

우락부락 높낮이가 있고 마름과 줄풀의 허름한 자리도

예정되어 있으리니 철 이른 연밭

무진무진 찾아든 열사흘 달빛이 물 안개와

결 곱게 버무려지면서 불혹의 집을 세운다


유혹 아닌 것 없고 흔들리지 아니한 순간도 없더라만

봄이면 구멍 숭숭한 연근 속으로 환한 꽃빛이 들어차고

미물들도 알자리를 저리 뽀얗게 마련하는 것과 같이

물푸레 손잡이 닳아지도록 날품팔이 아버지

망치질로 노임 채우던 소리의 깊이를

날계란 하나와 밀가루 한 움큼 계란떡으로 어머니

올망졸망 오남매 두레상으로 부르던 소리의 넓이를

철들은 줄 알았던 불혹의 어린 아들은

부지런한 아침볕이 짚어주는 물가를 따라가며

성긴 눈으로 가늠해본다

지금껏 어떤 터를 헤집고 있었는지

그 자리 오롯이 우리 식구 모여앉아 있는지

 

 

 

728x90

 

 

그리운 동제 / 조명수

 

 

하동산, 정부미 한 말 씻어

가마솥에 동제 헛제삿 밥을 짓는다.

모락모락 구수한 밥 익는 냄새

활활 타는 장작 냄새 뒤석여

쌍계사 깊은 똥낭구 냄새

쌍계사 오릿길 벚꽃 냄새난다.

널널한 양푼이에 찬밥 한술 말아서

이른 아침 일찍 나온 햇살 아래

굵은 왕소금 같은 땀방울을 흘리며

한 알 한 알 속이 꽉찬 염주알처럼

가을 벼농사 잘 되었다고

첫 방아 찧어 공양 시주 올린다.

쌍계사 큰 스님은 죽비를 내려치며

한 해 내내 무슨 농사 지으셨나,

알알이 속이 차서 쏟아지는 설법은

섬진강 유장한 말씀보다 서늘하고,

농사 중에 가장 힘든 농사

쭉정이 하나 없는 자식 농사라고

아들 딸 자랑 대회 같은

동제의 풍악소리 평화롭다.

갓 시집 온 삼대독자 맏 며느리가

한 주걱 퍼서 고봉밥을 담은

헛제삿밥 얻어먹은 천왕봉 옆구리에서

백설기보다 하얀 달빛이 쏟아진다.

 

 

 

 

 

728x90

 

 

석양, 바닷가 / 장정

 

 

바라보면 온 몸에 물이 든다

 

넘치지 못하고

안에서만 오래 끓은 탓인가

품어안아 스며든 빛살조각들이

한계선 닿아 수런거리는

 

도지다 스러지고

도지다 스러지다

겹겹의 숨결 모래 속에 부려놓는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색깔을 점멸하는 작은 불씨들

어둠에 젖어

 

망망한 진공 속에서 깨어나고 있다

 

그렁그렁 걸어 둔

눈물 빛 속 철없는

나의 애드벌룬

 

바라보면 온 몸에 물이 든다

 

 

 

 

728x90

 

 

제4회(2004) 

소설부문 - 렌즈로 보기ㆍ조혜경
심사평(황현산) 

 

시부문 수상작 없음

 

 

 

 

 

 

728x90

 

 

이팝꽃 그늘 / 이해리

 

 

고소한 뜸 냄새를 풍기며 변함없는 밥솥이

더운 김 뿜는 아침

동구 밖 이팝꽃 흐벅지게 피었다

고봉으로 밥 먹은 사람 드문 시대 고봉으로 피었다

구름이 퍼먹고 바람이 퍼먹고 못자리가 퍼먹고 나도

하얀 쌀밥꽃 남아돈다, 남아도는 쌀밥꽃 길가에 수북 떨어졌다가

자동차에 뭉개지고 수챗구멍으로 날아 들어간다

팅팅 불은 밥풀들, 쌀이 남아돈다

쌀라면을 만들까 쌀로 된 햄버거를 만들까 나도 남아

고민중인데

주체할 수 없는 잉여는 차라리 슬픔인지

아프칸의 그 어린 것 아프게 떠오른다

제 위장보다 훌쭉한 자루를 들고 포탄이 핥고 간 들판에

풀을 캐러 다니던 네 살배기,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백만 명이 고스란히 굶어 죽는다는데

북한의 꽃제비들은 한 보시기 밥 때문에 오늘도 사선을 넘어온다

내 배부름으로 세상 어딘가에 배고파 야위는 슬픔이 즐비한데

새벽 별같이 하얀 쌀이

숭고하던 쌀밥이 길바닥에 고봉으로 넘쳐난다

두려운 무기처럼 온 마을에 그늘을 드리운다

 

 

 

728x90

 

 

이화梨花 / 조정인

 

 

도처에 금가는 소리 고쳐 베는 봄밤

 

! 지구 살 트는 틈새로 찬 물방울 듣는다

물방울 없다 마른 이마를 문지르며

내려선 마당

나무, 家系 소리 없이 밀리는 미닫이 사이

내보이는 버선발,

낯설도록 흰 저 빛은

전생이 반납한 서랍에서 꺼낸 빛

 

뿌리의 계보,

빙하시대로부터

둥두렷 떠오른 익사체 얼음 서걱 이는 무명옷,

 

저쪽 생이 제 모습 되 쏘여 보여주는 거울 앞에

이화와 마주 선 새벽

나무 아래는

밤 새워 누군가 마음 지피던 온기

 

 

 

 

이화梨花 / 조정인

 

도처에 금가는 소리 고쳐 베는 봄밤

 

뚝! 지구 살 트는 틈새로 찬 물방울 듣는다

물방울 없다 마른 이마를 문지르며

내려선 마당

나무, 한 家系 소리 없이 밀리는 미닫이 사이

내보이는 버선발,

낯설도록 흰 저 빛은

전생이 반납한 서랍에서 꺼낸 빛

 

뿌리의 계보,

빙하시대로부터

둥두렷 떠오른 익사체 얼음 서걱 이는 무명옷,

 

저쪽 생이 제 모습 되 쏘여 보여주는 거울 앞에

이화와 마주 선 새벽

나무 아래는

밤 새워 누군가 마음 지피던 온기

 

 

 

 

옹관을 보며 / 이영수

 

박물관에서 여기저기 깨어진 옹관을 보았다

허리가 잘록한 옹관 속에서 방금 새 한 마리

푸득푸득 알을 깨고 날아간 듯

새알 껍질 같은 흙 부스러기들이 너부러져 있었다

죽은 자의 육신과 함께 살점을 다 삭아 내린 빈 항아리

새처럼 날아가는 영혼의 소리들이

푸득푸득 옹관 속에서 날아올랐다

두 동간 난 허리를 간신히 이승에 잇대어 놓은 독무덤,

저 독 속에 아직도 빈 껍질 같은 몸속을

빠져 나오지 못한 영혼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리저리 금이 간 빗금 간 독무덤에 새겨진

희미한 쥐 한 마리 독 안에 갇힌 것처럼

주름진 무늬 사이에서 안쓰럽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독 안에 갇힌 내 길 하나도

내 몸에서 날개 짓을 하는지 꿈틀거렸다

 

 

 

 

728x90

 

 

제1회(2001)


소설부문 - 캣츠아이ㆍ정지형 
심사평(정을병ㆍ김병총ㆍ최유찬)


수필부문 - 우리 옷ㆍ윤자명
심사평(윤제천ㆍ유병근ㆍ정목일)

 

 

시부문 수상작 없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