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불혹의 집 / 전영관


늦도록 야근이라도 했을까 두런두런

손 씻는 버드나무 야윈 팔 사이로

고단한 새벽만 우련하다

해쓱하게 마른버짐 핀 얼굴로 산은

종아리까지 발 담근 채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갈대들의 연두 빛 걸음걸이를 헤아리는 중인데

청태 자욱한 자갈밭에 드문드문

헤집어 놓은 자리들 뽀얗다 지느러미 뭉툭해지도록

거친 바닥을 밤 새 뒤척인 흔적이리니


세월이 잔잔하게 무두질한 강물도 속내는 그렇지 않아

우락부락 높낮이가 있고 마름과 줄풀의 허름한 자리도

예정되어 있으리니 철 이른 연밭

무진무진 찾아든 열사흘 달빛이 물 안개와

결 곱게 버무려지면서 불혹의 집을 세운다


유혹 아닌 것 없고 흔들리지 아니한 순간도 없더라만

봄이면 구멍 숭숭한 연근 속으로 환한 꽃빛이 들어차고

미물들도 알자리를 저리 뽀얗게 마련하는 것과 같이

물푸레 손잡이 닳아지도록 날품팔이 아버지

망치질로 노임 채우던 소리의 깊이를

날계란 하나와 밀가루 한 움큼 계란떡으로 어머니

올망졸망 오남매 두레상으로 부르던 소리의 넓이를

철들은 줄 알았던 불혹의 어린 아들은

부지런한 아침볕이 짚어주는 물가를 따라가며

성긴 눈으로 가늠해본다

지금껏 어떤 터를 헤집고 있었는지

그 자리 오롯이 우리 식구 모여앉아 있는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