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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 이인주
운문사 연화대에 그대 모시러 갔다가 이미 꽃으로 피어 있는 그대를 보았다 하늬바람 잔잔한 미소 하나가 정오를 가르며 환히 피어나고 있었다 실뿌리 아늘아늘 담아낼 그릇 하나 없는 빈 손바닥, 낡은 지문이 가문비나무처럼 흔들렸다 그 손안에 그대를 엮어두고자 하는 우매함이 雲門 밖 풍경소리로 떨어졌다
그대가 나를 깨었는가 내가 그대를 깨었는가 허공에 부침하던 어떤 뜻이 죽비로 내리쳤다 아프다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멍울이 명치를 메어왔다 길이란 길은 죄다 등 돌리고 있었다 질문들의 참혹한 막다름이 마음의 모서리를 들이받았다
부서진 종소리가 그대 손끝에서 다시 살아난다 틈과 틈이 거느린 하얗게 빛나는 가문비나무 몇 그루, 초두루미처럼 웅숭깊다 부서져 비로소 완성되는 나, 민무늬와 빗살무늬 사이 그대가 만지면 부스스 깨어나는, 바람과 햇빛 물과 불의 거처에 순연한 내가 누워 한 잔의 백련차로 우러나고 싶다 한나절, 갸륵갸륵 갸륵한 물새들을 본다 넓이를 모르는 연못을 건너는 연밥그릇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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