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싸리나무 / 김향숙


종아리에 싸리나무 흔적이 있었네

아버지의 꾸중이 다녀간 날이었네

천방지축의 나이

주먹을 쥐고 이를 앙다물 때

여린 싸리나무 회초리가 흔들리는 중심을 잡아주었네

눈물과 후회

원망이 묻어 잇는 그 기억을 만지면

참싸리꽃으로 환하게 피어나네

소쿠리와 채반이 되던 싸리나무가

몸에 스며들어 나를 일으켰네

쓰디쓴 그 맛

종아리에 새겨진 문신이

약초가 되기까지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가 나의 싸리나무였다는 걸 깨달아

내 여린 뼈가 단단히 여물어 갔네

여름이 지날 때쯤 뒷산에 피던 본홍꽃

사방에 널렸어도 지나치기만 했는데

회초리를 든 아버지가 보이네

낭창낭창 휘어져도 부러지지 말라던 말씀

늙어 회초리를 들 기운조차 없으셔서

내가 사릿대를 꺾었네

싸리꽃은 여전히 피어나고

밑줄을 긋던 말씀은

내 몸에 붉은 꽃으로 남아 있는데

아버지는 다시 피어나지 못하네

한 줌 싸릿대를 안고 산을 내려오는

내 가슴 깊은 곳에

싸리꽃 붉게 피어나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