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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때 / 신재희
느리게 다가오는 물의 걸음
물의 속도가 멈춘 자리 계곡의 바닥이 미끈거린다
거세게 흐르지 못하는 물길은 이 자리에서
얼마나 머뭇거렸을까
물의 엉덩이가 닿았던 자리마다 물때가 끼었다
구불구불 휘돌아온 물소리를 먹고 자라는 돌들
줄어든 계곡물에 뒤척일 기력이 없어 안색이 누렇다
길쭉하거나
납작하거나
둥글거나
계곡의 슬하에서 뒹굴며 자란 물의 피붙이들
수면 아래 제 몸피만큼 걸쳐 입은 물때는
정체된 속도에 주저앉은 습생의 뿌리들이다
물의 허리를 잡다 발목이 휘청거린다
물의 지느러미도 낮은 곳을 따라 구부러질 뿐
찌든 물때는 쉬 벗겨지지 않는다
돌멩이 하나 집어
허물조차 껴안고 살던 숨결을 물에 씻는다
말간 얼굴을 드러내며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살아난다
계곡의 물소리가 줄어들어도
고요히 파닥거리며, 뒤척이며
물의 때를 기다리는 돌멩이들
물때를 벗은 싱싱한 맥박이 손바닥을 타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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