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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숨이 붉어지는 방 / 황종권

 

 

붉은 여우가 왔다 일출이 절벽을 딛고 오기 전에 왔다 목덜미 가진 것들을 파헤치고 왔는지 주둥이가 붉었다

 

마을에서는 볏이 붉은 것들 몇 마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지붕에 발자국이 찍힌 것으로 보아 수컷은 아니고 암컷이라고 했다 붉음과 어둠의 경계에 산다는 동백이라는 소문만 들렸다

 

여우는 향일암 염주를 물고 천년을 내딛고자 했다 그러나 물고기들 풍경 속에서 헤엄칠 때마다 짓뭉그러진 입술과 타다만 향기가 절벽을 키우고 있었다

 

 

세상의 그 어떤 해일에도 더렵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절벽의 힘으로 몸에 붉은 기운을 밀어 넣는 것들이 있다

 

 

제 배설물을 꽃잎으로 바꿔놓는 붉은 여우, 그늘에 들 듯 제 영혼을 동백으로 씻고 있다 저건 그냥 막막한 나무일뿐인데, 봄밤이 들어가는 문이다 들어가면 숨이 붉어지는 방이다.

 

 

 

 

 

 

[우수상] 여수의 사랑 / 이종섭

 

 

 

[가작] 금오도 / 박덕은

 

수천 년 철썩철썩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묵언 수행한 섬은

종교다

 

최초의 말씀이

뻘밭의 간기 머금은 등고선 사이로

촘촘히 박혀 있어

믿는 자들은 누구나

엄숙히 허리 굽혀

우비적우비적 캐야 한다

 

점자책 같은 자갈밭길 더듬거리며

교리를 이해하려는 추종자들이

뭍의 소란함 뒤로하고 이곳으로 모여든다

포교는

늘 일탈을 꿈꾸는 표정들로 퍼져 나간다

 

꼬박꼬박 하루에 두 번

살그랑 살그랑 붉어지는 물마루도

여기서는 특별한 경전이 된다

 

제멋대로 자라난 울음도

가벼이 잦아들 수 있다는 듯

너럭바위는

뜨겁고 차가운 발바닥을 위로 향하고

가부좌로 앉아 있다

 

갈바람통 전망대 앞바다에서

상괭이*들은 짐짓 설파하듯

살아서도 죽어서도 똑같다는 미소를 지으며

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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