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고래의 혈통 / 태동철
고래좌에서 족보로 대물림 된 혈통이다 가훈을 거역하며 먼 거리를
맹목으로 연 항해, 성년이 된 지문으로 지느러미를 펼치고 윤슬 이는
부럭을 타넘으며 청색시대의 비린내를 파도에 풀어나간다 바다에선
용골을 엮은 등뼈를 낮춰 겸손한 가슴으로 물살을 품고 심장의 마력
에서 혈기로 피를 달궈 생을 탕진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망각한다 방
탕한 방황으로 점점 거칠어지는 파랑에 좌표를 잃는다 난바다에서
표류하는 세월이다 해류가 소용돌이치는 암초에 부딪쳐 이물이 파손
되고 고물로 유서를 쓰듯 물이랑을 뻗친다 심연 아래로 침몰하는 순
간 고래가 예인선으로 떠오른다 태풍에도 끊어지지 않는 수평선으로
힘줄을 풀어 구명줄을 단단히 묶는다 고래 힘줄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파도 끝에서 아득히 추락하는 아뜩한 공포에 속죄하는 마음을 감싸듯
품는다 사랑의 징표로 등에서 분수공을 활짝 열어 비산하는 물보라로
오색무지개를 띄워 올린다 온몸에 벅찬 용서의 울림을 퍼뜨린다 생명
선을 끌어당기는 거룩한 핏줄에 이끌려 닻별이 뜬 항구에 닿는다 아버
지가 심해 속 무덤으로 돌아간 자리에 오동도가 언약의 등대불빛을 밝
혀 심장 동맥에서 동백을 피운다
[우수상] 하화도 소묘 / 이연자
누가 벗어던져두고 갔나, 저 꽃신
날이 어두워지면서 동백은 불길을 피워낸다
꽃신에 번진 물기를 말리기 위한 까닭이다
얼마나 깊이 들어왔을까, 꽃나무들이
살길 놓치지 않으려고 물소리를 펼치고 접는다
뒤꿈치 긁다가 나도 꽃나무에 얽혀본다
꽃나무는 고향집 마당까지 나를 끌고 간다
금빛 초록이자 어미 냄새 잊어버린 지
너무 오래되었지만, 내 잠이 자꾸 시끄러원진다
꽃가루처럼 기침을 토해내는 어미, 나를 낳고
바다를 등에 지고 다니는 소라게가 되었다는데
나는 낙타도 아닌데 꿈길을 잘도 건너간다
아니 어미의 무덤을 끌어 올리는 밧줄이다
절벽 물무늬 모여 어미 눈썹 그리는 것이
아름다운 태몽이었다면
나는 몸부림치는 꽃신 가까이 어미가 있다는 것을 안다
물총새 날아갔다가 되돌아오는 저녁인데
꽃신은 별과 달이 엉키기 전에 나를 알은 체 한다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바람처럼
봄눈 이고 가는 봄빛처럼
어미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나는 꽃신에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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