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시선집중 / 황은순
등대불빛이 바람에 구르다 물의 나이테에 엎질러진 순간 내 곁엔 당신뿐이야, 갯비린내 애돌던 동백꽃, 시선 집중으로 붉은 입술 내민다 철없이 나근대며 꽃잎 흔드는 뺨이 감미롭다 물너울에 훅 끼쳐온 등대의 해조음, 축복된 봄날의 술래라서 둘만의 유희가 저리 꽁냥꽁냥 하는 걸까 우우- 별들도 손잡는 푸른 밤이 3월을 뛰어넘는 섬 기슭,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짓궃게 휘파람 불어대는 바람의 오동도 마당을 기웃기웃, 후비는 파도에 등대허리 쑤셔도 진득한 자세로 어둠을 밝히는 것이 바로 너 때문이란 걸 아니? 멀리 두어도 언제나 꽃잠처럼 달려갈, 여보라는 듯 꽃잎을 부르는 여보!
* 꽃잠 : 신혼 첫날 밤의 잠
[우수상] 칼춤 / 길덕호
칼은 이곳 바다에도 있었다.
바다는 시퍼런 불씨를 하나 집어 들고
칼을 담글 때마다 하얀 거품을 울컥 토해낸다.
새털구름이 바다에 눈보라를 일으킨다.
둥둥 북소리가 울린다.
채낚기에서는 칼춤을 출 준비가 한창이다.
하늘은 바다와 쌍둥이의 얼굴을 하고
저 멀리 수평선에서부터 고개를 기웃
눈빛을 반짝이며 햇살에 눈살을 세운다.
선장은 하늘같은 바다 위에서 너른 마당을 차지하고
얼쑤 한바탕 장단으로 춤꾼들의 손길을 불러 모은다.
흥에 겨워 손재주를 넘는다.
한길 품속에도 모르는 것이 바다의 옷깃이다.
푸른 저고리 하이얀 치마를 갈아입은 바다
푸르게 부풀어 오른 하늘을 가져다가 물풍을 내려치고
벚꽃 치마로 해풍을 불러다가 채낚기를 채근한다.
바다의 품안에는 번뜩이는 칼들이 있고
칼은 춤꾼들의 목숨
목숨들 도열해서 태양을 사모하는 노래를 벼린다.
칼날은 속 물살 되어 일렁이고 눈부신 춤을 깊숙이 추고 있을 터.
선장이 시퍼런 속살에 하이얀 막걸리로 고수레를 하면
막걸리의 향내가 푸른 저고리를 타고 무지개처럼 부서지고
춤꾼들은 얼음 한 조각씩 입에 물고 새파란 미소를 흘린다.
초승달의 비릿한 미소가 바다를 가른다.
상모의 긴 낚싯줄을 돌리며 춤꾼들은
하나둘 별빛을 들었다.
칼들은 별무리를 따라 이리저리 군무를 추고
바다는 새하얀 치마 마구 흔들며
푸른 저고리에서 은빛 칼들을 시퍼렇게 꺼내 들었다.
별빛에 번쩍이는 칼들의 춤
바다의 옷고름도 하늘에 가 닿았다.
춤꾼들의 거친 이마에는 칼자국이 깊이 배었다.
춤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숨결은 칼이 되어 폐를 찌르고
두 손은 칼들을 쥐고 허공을 베고 있었다.
온몸이 환한 은비늘 칼들의 춤이 은하수처럼 쏟아지는 밤이었다.
둥-둥뱃고동 같은 북소리가 울린다.
채낚기에서는 칼들을 겸손하게 내려놓고
파아란 저고리를 가만히 바다 위에 올려놓았다.
잔잔해진 바다는 길 떠나는 관객의 모습으로
선미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태양은 불 꺼진 무대를 환하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뜨거운 땀방울로
깊게 베어진 이마를 꿰매던 춤꾼들은
만선의 어진 마음으로 저마다의
칼을 하늘보다 더 높이
치켜들었다.
[가작] 고진멸치 / 이성배
이리 잠 와보이다 뽀짝 댕겨안즈이다
이것 쬐깜 묵어보이다
지름이 솔차니 올라 노리끼리헌 거이 영 맛내요
으치요 짭짜름해도 겁나게 맛내지다
많이 잽히질 않은께
그물에서 살았을 때 바로 삶아
입 벌린 채 등이 오그라진 거이 진짜 멸치당께
어창에서 죽은 걸 삶으믄
빤듯빤듯허니 보기는 좋을랑가 몰라도
벨 맛태기는 없당께
여수 고진멸치하믄 최고로 알아주지다
요새도 장마당에 가믄 고진멸치라 속이서 포는디
영 맛이 다르당께
성 밖에서 나서 여숫머리로 시집 왔은께
평생 요 바다만 보고 살았지다
뭐라 해싸도 멸따구만한 게 없어라
볶아묵고 꼬치장에 찍어묵고
국수 삶거나 된장국 끼릴 때 육수로 제일이지다
심심헐 때 주전부리 삼아 묵으믄 더 좋코
큰 괴기 항개도 안 부럽당께
지 잘났다꼬 고개 빳빳이 쳐들고 거들먹거리는 놈
알고 보믄 다 허깨빈껜
꼬리 띠고 지느러미 짤라내고
억쎈 뻘다구 발라노믄 반도 없지다
대가리는 왜 띠고 똥은 또 왜 버리요
대가리하고 똥까지 묵어야 참맛을 알지
짭고 비리고 쓴 것 항꾼에 씹어야
나중에 달달허당께
사는 것도 똑 같애
쓴 맛 짠 맛 다 보고 마지막에 단맛이 나지다
작고 못났다고 세상 원망할 거 항개도 없당께
멸따구가 요 바다를 맛내게 허듯이
작고 못난 것들이 세상맛을 내게 항께
멸따구 맹키로 항꾼에 모여 부대끼며 사는 작고 못난 놈들이
서로를 따땃허게 보듬아주고
세상을 포근하게 안 헙디요
몇 년째 멸따구 보기 힘들더만 그나마 올해는 사정이 쬐깜 낫소
바다는 삼 년이란께
이 년 내리 허탕 쳐도 한 해만 잘 건지믄 살 수 있지다
물방에도 계속 그물을 던지믄 한 번은 만선을 허지라
맨날 만선 허믄 안 헐 놈 어디껏소
그물도 안 놔보고 괴기 없다는 놈 도둑놈 심보지
세상 바다도 마찬가지 아니겄소
고기 드는 디다가 부지런히 그물질 해야지다
샛바람이 터져부렀네
낚시 걷고 언릉 일어나이다
할아버지는 저 바람을 도깨비 씹허는 바람이라 하더만
밤 새 자도 않고 지랄용천 헌다고
긍께 금방 그칠 바람이 아니당께
사는 거이 바람 안고 물을 거슬러 가는 거랑께
심들다고 노 안 저스믄 밀릴 수밖에
포구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그러다 좌초되거나 침몰허는 거지다
에이다
이거 가꼬 가서 묵소
꼭꼭 씹어 묵으믄 바다의 참맛을 알꺼요
고진멸치 짠맛이 여수에 참맛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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