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패를 단 의자 / 박주희
경남 아파트 뒷뜨락엔
사과나무 그 여자 살고 있다는데요
댓 그루 벚꽃이 팡파레 울리며 꽃비 흥건할 때쯤
발치마다 연푸른 눈 치켜뜨는 풀잎들도
이슬 받아 연두빛 척척 널어 놓는다는데요
비파나무 측백나무 동백나무들마다
누가 굴뚝을 푸르게 세워 놓았을까요
동그란 초록 굴뚝마다 회색직박구리 드나들구요
그 원시의 날개마다 웬 잿빛 투성이래요
아마도 남향으로 난 그대 체온을 나르나 봐요
꽃불 지피며 동박새도 한나절 신나게 드나들다가
하얀 박석들을 층층이 깔아 놓은 이 비탈진 이니스프리
철쭉 봉오리마다 바람꽃빨강 초인종을 달았는지
향기 한 줌 딩동딩동딩동
아기대나무 단풍나무도 바람 한 줌 종소리를 내는데요
사람들은 아기사과나무 그늘이 사는 법을 모르는 게 틀림없어요
햇살마저 그대 체온으로 포도에 번지네요
사과나무, 그늘을 쌔근쌔근 내려놓네요
밤새 칭얼거리던 가로등도 순한 눈빛인데요
가까이 다가서 보면
아기사과나무 그늘이라는 문패하나 달아놓은
어머, 저 해맑은 긴 의자 하나 보이네요
[심사평] 개성적 시의 세계
시는 시인의 독특한 체취와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상상적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 예심을 통과하여 선자에게 주어진 작품들은 모두 상당한 시적 성취를 이루고 수작들이었으며 저마다 나름의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특히, 입상한 세 분의 작품들은 그윽한 문학적 향기가 풍기며 단아한 형태를 갖춘 수작들이었다
(문패를 단 의자)는 화려한 환상적 세계가 선자의 눈길을 끌었다. 마치 샤갈의 그림을 보듯 다채로운 색채감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세상은 이 시인의 손에 걸려 새로운 세상으로 바뀌었으며 독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이시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일상적 사물에서의 경험을 이 시인은 매우 참신한 경험으로 이동시켜 놓음으로써 창조적 세계를 마련하고 있다.
생각을 언어화하고 정리하여 질서있는 문장으로 만드는 솜씨도 뛰어나 읽는 이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것도 이 시인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선자는 이 시인의 작품을 대상으로 뽑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 문효치(시인) 계간 미네르바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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