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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역 / 최일걸

 

오랜 기다림은 곰삭은 홍어 같은 것이어서

사무치는 그리움에 콧날이 시큰해지면

물기 그렁한 눈망울에 여수역이 맺힌다

한반도에 한 획으로 그어지는

철로를 따라 온갖 상념을 목록처럼 매달다 보면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신비를

고유한 필체로 서술하는

거대한 손을 떠올리게 된다

내 안의 지각 변동에 검푸른 바다를 불러들이고

몇 개의 섬을 빚어 올리는 권능의 손이 아니라면

한려수도의 오묘한 조화의 극치를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신생대 3기에 머물러 있던 의식을

기관차의 단속적인 진동에 맞추자

만성리 해안선이 급하게 곡선을 긋는다

여기가 끝이구나, 탄식하려 할 때

그제야 비로소 오롯이 모습을 드러내는 여수역,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종착역에서

시작을 꿈꾸는 것은

전생의 기억처럼 밀려드는 파도 때문일까

겨울 칼바람이 거세게 몰아치지만

뱃고동보다 더 거세게 박동하는 심장은

미리감치 오동도 동백나무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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