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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몽유도원도 / 한교만

 

꽃잎 펄펄 흩날리는 어느 봄날이었나. 나른해진 강기슭에서 나는 꽃이 활짝 핀 복숭아나무

몇 그루를 수목담채로 화폭에 그리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작은 배 한 척 인기척도 없이 눈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손을 흔들어 안부를 물었으나 은자隱者는 느릿느릿 노를 저어 물안개 자욱한 상류 쪽으로 사라지고 채 마르지 않은 축축한 복사꽃들이 배가 지나간 흔적을 덮어주고 있었다.

 

조각배가 지나간 물이랑을 지우려 애써 낙화하는 붉은 꽃잎들.

 

나는 붓놀림도 잠시 잊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수시로 잃고 캄캄한 색조의 하류를 향해 떠내려갔다.

 

사흘 만에 내통한 바깥세상은 막 피기 시작한 봄꽃구경을 떠나는 함성으로 여전히 소란스럽고,

 

화폭을 두루마리로 펼치자 물감이 잘 마른 복사꽃들이 안견의 낙관만을 마지막으로 남겨놓고 있다.

 

저쪽은, 상춘이 다 끝났는지

창밖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더 이상 번짐이 없는 배접상태의 도원桃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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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다는 것에 대하여 / 류순자

 

어둑한 귀가 길

대문 가까이 왔을 때

친구같이 뚱뚱한 함박눈이 내게 온다

대문 안으로 나랑 같이 들어오는 함박눈은

나하고 잘 통하고 웃는 든든한 친구처럼 반갑다

항상 잠긴 현관문 열쇠를 열고 들어와

문을 딱 닫는데 혼자다

문이란 항상 사람이 나갈 수도 있고

들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생각하며

친구 맞이 찻자리를 마련하였다

사람 들어 올 시간이 걸려서 물은 다 끓었다

다관물소리를 맑게 들으며

세잔을 따랐다

한잔은 정적에게

한잔은 종일 비워둔 공간에게

한잔은 현관문으로 누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나에게

 

여수동백꽃이 붉은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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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를 단 의자 / 박주희

 

경남 아파트 뒷뜨락엔

사과나무 그 여자 살고 있다는데요

댓 그루 벚꽃이 팡파레 울리며 꽃비 흥건할 때쯤

발치마다 연푸른 눈 치켜뜨는 풀잎들도

이슬 받아 연두빛 척척 널어 놓는다는데요

비파나무 측백나무 동백나무들마다

누가 굴뚝을 푸르게 세워 놓았을까요

동그란 초록 굴뚝마다 회색직박구리 드나들구요

그 원시의 날개마다  웬 잿빛 투성이래요

아마도 남향으로 난 그대 체온을 나르나 봐요

꽃불 지피며 동박새도 한나절 신나게 드나들다가

하얀 박석들을 층층이 깔아 놓은 이 비탈진 이니스프리

철쭉 봉오리마다 바람꽃빨강 초인종을 달았는지

향기 한 줌 딩동딩동딩동

아기대나무 단풍나무도 바람 한 줌 종소리를 내는데요

사람들은 아기사과나무 그늘이 사는 법을 모르는 게 틀림없어요

햇살마저 그대 체온으로 포도에 번지네요

사과나무, 그늘을 쌔근쌔근 내려놓네요

밤새 칭얼거리던 가로등도 순한 눈빛인데요

가까이 다가서 보면

아기사과나무 그늘이라는 문패하나 달아놓은

어머, 저 해맑은 긴 의자 하나 보이네요

 

 

 

 

 

[심사평] 개성적 시의 세계

                                             

시는 시인의 독특한 체취와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상상적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 예심을 통과하여 선자에게 주어진 작품들은 모두 상당한 시적 성취를 이루고 수작들이었으며 저마다 나름의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특히, 입상한 세 분의 작품들은 그윽한 문학적 향기가 풍기며 단아한 형태를 갖춘 수작들이었다

 

(문패를 단 의자)는 화려한 환상적 세계가 선자의 눈길을 끌었다. 마치 샤갈의 그림을 보듯 다채로운 색채감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세상은 이 시인의 손에 걸려 새로운 세상으로 바뀌었으며 독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이시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일상적 사물에서의 경험을 이 시인은 매우 참신한 경험으로 이동시켜 놓음으로써 창조적 세계를 마련하고 있다.

    생각을 언어화하고 정리하여 질서있는 문장으로 만드는 솜씨도 뛰어나 읽는 이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것도 이 시인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선자는 이 시인의 작품을 대상으로 뽑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 문효치(시인) 계간 미네르바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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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풍경 / 권동지

 

당신의 풍경엔 바다가 그려져 있지 않았죠

지난밤 이 바다로 불청객 한 분이 찾아와서

누누이 말리는데도 한사코 마당 한가득

바람을 흩뿌려놓고 돌아가시지 않았겠어요

바다야 물론 말 없으신 분이시라 고분고분

그 바람 다 져나르고 군말 한마디 없으셨지만

벼랑엔 선혈 범벅 낭자하지 않았겠어요

새들 어떻게 그걸 알고 꺾인 홰 치고나와

온밤 끙끙 몸져 앓으시지 않았겠어요

때마침 검버섯의 구름들이 마른 몸을 흔들어

정한 눈물 마구잡이 내려놓지 않았겠어요

당신의 얼굴엔 바다가 그려져 있지 않았죠

동강난 물길마다 대성통곡 울음 한바다였죠

아픔이 영글어 질펀히 널려있었던 게죠

모난 말 함부로 지껄이는 게 아니라 했죠

그러니까 종종걸음 치고 달리는

바람이나 탱 탱 불어라

우린 괜스레 겁에 질려 넘어지곤 했습죠

푸른 잔등으로 해가 돋아 볍씨처럼 자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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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역 / 최일걸

 

오랜 기다림은 곰삭은 홍어 같은 것이어서

사무치는 그리움에 콧날이 시큰해지면

물기 그렁한 눈망울에 여수역이 맺힌다

한반도에 한 획으로 그어지는

철로를 따라 온갖 상념을 목록처럼 매달다 보면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신비를

고유한 필체로 서술하는

거대한 손을 떠올리게 된다

내 안의 지각 변동에 검푸른 바다를 불러들이고

몇 개의 섬을 빚어 올리는 권능의 손이 아니라면

한려수도의 오묘한 조화의 극치를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신생대 3기에 머물러 있던 의식을

기관차의 단속적인 진동에 맞추자

만성리 해안선이 급하게 곡선을 긋는다

여기가 끝이구나, 탄식하려 할 때

그제야 비로소 오롯이 모습을 드러내는 여수역,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종착역에서

시작을 꿈꾸는 것은

전생의 기억처럼 밀려드는 파도 때문일까

겨울 칼바람이 거세게 몰아치지만

뱃고동보다 더 거세게 박동하는 심장은

미리감치 오동도 동백나무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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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 김영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를 지금 여수에 데려다 주오

남도의 끝자락 오동도에 가

하루를 살겠네

오늘을 살겠네

삼만 육천오백 날 보다 더 아름다운

하루를 살겠네

남녘 둔덕마루 깎아지른 바위틈에

뿌리내리고 서서

푸르게 빛나는 우듬지에

시뻘겋게 불타는 가슴을 연다면

 

보아라,

만 리에서 달려 온 물결들이

하얗게 부복을 하는 바다

 

오늘을 사는 거다

오늘 하루를 사는 거다

하루만이라도 이렇게 붉은 가슴을 열고

꽃처럼 살다 가는 거다

살 에는 해풍에 맞서

파도를 껴안은 마음

이리 붉을 때

너에게 못다 한 말은

단 하루라도 우리

꽃답게 살 걸 그랬다

불같이 살 걸 그랬다

게으른 봄을 위하여

이 겨울을 다 태울 걸 그랬다

 

초록이 쫓겨 온 땅 끝

벽오동 지는 섬 둔덕에 서서

우리 이렇게 동백으로 핀다면야

생에 어찌 한 자락의 여한이 남으랴

하루가 천 날 같은

내 생의 마지막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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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나룻배 / 김정애

 

어디 갔을까

한 배 타고 다녔던 파도 소리, 천지간에

해가 솟고 갈매기 날고 다시 잠기는데

개펄에서 늙고 있는 신발 한 척

뻘구멍에서 게가 기어 나오고

실 눈 뜨듯 계절이 열린다

귓바퀴 묶고 있는 밧줄 없다

섬사람 뭍사람

갯일 갈 때 마실 갈 때

층층이 신고 다닌 신발 이였다

짠 내 나는 신발

졸고 있는 갯벌 위에서

놓았던 물소리 다시 쥐고

제 속을 헤 집는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뭍을 향할 때나 섬을 향할 때나

그리움 앞세우고도

늘 그리움 남기고 건넜다는 걸

뭍 도 섬 도 아닌 그가

섬을 건네주고 뭍을 건네주는

길이 되고 싶어 했다는 걸

지느러미 뭉툭해지도록

길이 되고 있었다는 걸

 

 

 

 

 

 

[당선소감]

 

 

산에 오름니다.

아침에 오르고 저녁에 오르고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앞 선이의 땀방울이 보이고 휙 지나가는 서러움도 보입니다.

나무들의 그늘이며 그늘이 슬어 놓은 입김이며

미처 헤아리지 못한 흐느낌까지 보입니다.

그렇게 오르고 오르다 보면

구릉이 나오고 평지가 나오고 내리막이 나오고

약수 물 소리도 들립니다.

 

 

거짓말 같은 당선 소식을 듣고

또 산에 오름니다.

더 높이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급한 마음에 미처 다독이지 못한 시의 안자락을

꼭 안아주기 위함입니다.

 

 

산이 좋았습니다.

시가 좋았습니다.

무작정 올랐고 무작정 썻습니다.

내일도 오르고 내일도 쓸 것입니다.

시 속에서 길을 잃고 길을 찾고 길을 만들 것입니다.

틈틈이 종포 해안 도로, 돌산 대교, 향일암 종소리,

두루두루 살필 것입니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너무 많습니다.

침묵으로 때론 호령하듯 시의 중심을 잡아 주신 신병은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화요일을 꼭 붙들고 싶을 만큼 똘똘 뭉친 화요 문학회 회원들과

전남대 여수 평생 교육원 원우들과 기쁨을 함께 하겠습니다

아직 나약하기만 한 제 시의 발목을 잡아 주신 심사 위원께 감사드립니다.

 

 

 

 

 

김정애

- 1966년 여수 출생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전남 대학교 여수 평생 교육원 문예 창작 과정 수료

- 제12회 여수 시민 백일장 장원

- 제15회 광주, 전남 여성 백일장 대상

- 2009년 토지문학제 하동 소재(素材)문학상 시 부문 당선

- 여수 화요 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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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돔 / 배기환

 

비늘과 비늘 사이 파도가 번쩍이는 감성돔 한 마리 오동도 갯바위로 싱싱하게 뛰어 오른다.

 

단칼에 쓱싹 배를 갈라 치더니 창자를 까뒤집고 내장 속 깊이 감춰둔 바다를 철썩 꺼내 보인다.

 

쩍-쩍 벌리는 아가미 사이로 일몰에 삼켜둔 주홍빛 노을이 질질 흘러내리고 살 속 깊이 뿌리박고 자란 뼈들이 삐걱삐걱 걸어 나와 도마 위에 주저앉는다.

 

물고 물리는 심해의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 그래도 네가 이제까지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천적이라도 나타나면 사정없이 콱 물고 씹어 버리는 너의 날카로운 이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네가 깊은 바다 속을 마음껏 유영하며 무사히 한 생애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거친 풍랑과 암초더미를 잘 다독거려준 너의 날쌘 꼬리와 예민한 지느러미 덕분이리라

 

섬뜩한 칼날도 그의 사정을 아는 듯 좀처럼 숨이 끊어지지 않고 꿈틀꿈틀하는 꼬리와 지느러미는 싹둑 잘라 다시 바닷물 속으로 휙 집어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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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여수해양문학상 수상자 명단

 

구분

성명

입상작

주소

대상

이상윤

한려수도를 지나며외 9편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용산동서 우방타운103/1603

우수

이민아

감성돔이 돌아왔다 외 5편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 금곡리 산183-6

가작

정영희

거문만, 그 상실의 바다에서 외 12편

여수시 안산동 우미린 @ 304/1205

 

 

해독(解讀) / 이상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찾아갔을 때
그는 마치 아주 오랫동안 날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온 몸을 자작나무 잎사귀처럼 반짝이며
나를 반겨 주었다
그러면서 제 이마에 박혀 있던 루비처럼 반짝이는
말 하나를 뽑아 나를 향해 쏘아 보냈다
그 말은 마치 꼬리가 붉은 미사일처럼 순식간에
내 가슴 한복판으로 날아들었다
나의 가슴은 한동안 불에 덴 듯 화끈거렸으나
도시의 막장 같은 그늘 속에서만 살아온 나의 귀는
괭이 끝처럼 무딜 대로 무디어져서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날 바다는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였을까
나는 바다가 준 그 둥글고 빛나는 푸른 말을 날마다
구슬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딸그락 딸그락,
산에 꽃이 피는 날도 들에 눈이 내리는 날도
나의 발은 언제나 해초처럼 파도에 젖어 있었다
하늘에도 바다가 있고 별에도 바다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그것이 구슬이 내는 울음으로만 알았다
그러다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더 이상 구슬을 넣을 주머니가 없어진 나는
그 말을 다시 컴퓨터 폴더 안에 집어넣었다
아직도 부화하지 못한 새의 알처럼
견고한 폴더 속에 갇혀 있는 바다의 말
오늘 밤에도 내 컴퓨터는 그를 해독하기 위해
암호병처럼 긴 불면의 밤을 보낼 것이다

 

 

 

감성돔이 돌아왔다 / 이민아

 

 

어류에게 제철, 이라는 말은

어탁을 뜨고 비늘을 친다는 뜻

너무도 이기적인 논평이다

바다의 계절을 사는 비늘 진 것 중

수컷으로 1년 살다 암수 한 몸

한 5년 억척스레 가계를 일구고

가장 나중 대부분 암컷으로

성전환을 한다는 어족, 감성돔

 

 

어머니는 필경 전생에

그 감성돔이 아니었을까, 그중

가장 실한 대물이 아니었을까

다시 태어나면 이제는

편안한 아내로 살고 싶다는

여린 지느러미 한 장으로 남아 이 겨울

삶의 거웃으로 유영을 시작한다

다시, 1년생 감성돔이 잠영해온다

 

 

무술목 안개 걷히고

금오도 바다가 아가미를 열 때

바야흐로 제철, 이라는 말은

비바람 맵찬 날 감성돔이

물밑 도사리는 세상여 헤치고

삽시간을 온전히 살아낸다는

바로 그 뜻, 멀리 백도 파도가

푸른 지느러미 세우며 달려온다

 

 

 

 

거문만, 그 상실의 바다에서 / 정영희

 

시름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는 밤이었다

탁상시계를 베게삼아 선잠이 든 어머니는

꿈속에서도 발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바다 밑 어딘가 묻혀 있을

아버지의 먹빛 신반 한 짝이 보였던 것이다

통발을 뜯어버린 문어 다리의 빨판도 훌렁거렸던 것 같은데

대처로 나간 큰 아들의 사타구니에 찰싹 들어붙을 것만 같아

짝 다리를 휘휘 꼬며 놓아라, 놓아라 소리를 치더니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생시였다는 듯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나갔다

먹빛 신반 한 짝 건져 올리는 일을 여생을 두고 해야 할 판인데

그믐밤에 떨어지는 별들은

왜 이리 어둡고 서러운지 모를 일이었다

오늘 밤, 어머니의 물질은 짧은 호흡 때문에

아무래도 헛손질이었을 성 싶었다

갯가 돌담 모퉁이로 사라지는 뒷모습이

손금처럼 뚜렷해지는가 싶게 곧 흐릿해졌다

 

별 하나가 서방바위 언저리에서 사라졌다고

마을 당산 팽나무에 매미처럼

붙어 있는 확성기가 맴맴거렸다

문어 농사는 손이 모자라 작파했노라고

아버지는 갈비뼈에 낫만 한 삼치 낚시를 매달고

이른 새벽을 데리고 나섰던 것이다

손등 사마귀 같은 몇 개의 여를 돌고 돌아

낯익은 무인등대 옆구리를 빠져 나오는데

어릴 적, 화장기 없는 둥근 소반 위에 토막 난 채

눈을 부라리던 고등어 눈알을 파먹던 때가 생각났다

눈을 질끈 내리 감으며 닻을 던져 놓았다

집 나간 지어미의 얼룩을 눈물로 닦아내고

풀 무덤에 버려 놓은 어린 흑염소의

분뇨를 땅에 묻었던 것처럼

죽어서도 이곳에 묻히겠노라고 속울음 꿀꺽하는 사이

속 쑤시던 동네 김씨의 비아냥거림이

언제 눅눅한 갯바람에 묻어 왔는지

두 다리가 뙤약볕에 얼음조각처럼 녹아내렸다

그래, 죽어서는 뭍으로 걸어가는 등대가 되는 거야라며

어금니로 삼치 대가리를 물어뜯는 사이

당신의 발목이 썩을 놈의 쇠줄에 둘둘 감겨

자꾸 바다의 끝으로 끌려 나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온 산에 매미가 흰 천을 풀어내고 있었다

마을의 솟대에는 바람이 드나드는

소쿠리가 낮달처럼 걸려 있었고

무게를 가득 줄인 생선 몇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고양이의 눈빛과 마주치는

저 공중 그네를 느릿느릿 따라 가다보면

어머니의 찔끔거리는 깊고 푸른 눈물이 보였는데

노을 속으로 자맥질하는 갈매기의 비상이 심상찮았다

질길 줄 알았던 무성한 칡넝쿨도 마른 바람이 되어 나갔다

무디어져 가는 물살에도

어머니의 의식은 조금씩 무청처럼 썰려 나갔고

그 자리에는 먹빛 신발 한 짝이 씽긋 웃고 있었다

 

달을 들고 나간 동네 사람들이

오징어 닮은 먹빛 신반 한 켤레를 찾았다고 아우성이었다

영문도 모르는 선창에는 뽀글거리는

홍합이며, 해삼이며, 전복이며,

문어 같은 것들이 어머니의 눈처럼 크게 뜨고 있었다

건져 놓은 먹빛 신발 속으로

별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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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대상

- 문성해 ‘오동도에서’

 

우수작

- 김한결 ‘붉은 바다거북’

 

가작

- 김정애 ‘겨울 향일암 뒷산’

 

 

겨울, 향일암 뒷산 / 김정애

 

향일암 뒷산에 눈이 내릴 거라는 예보를 듣고

먼저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이미 내린 눈은 눈이 아니어서

땅에 떨어져 죽은 눈은 눈이 아니어서

동백 숲 뒤로 하고,

살아있는 눈 보기 위해

내 앞을 가로막는 일주문, 단숨에 뛰어 넘었다

갈매기 줄지어 떨어지는 향일암

오늘만은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산정에 오르기 전에 눈이 내리면 어쩌나

조급한 마음에 무엇이 밟히는지

내가 길을 만드는지 지우는지 마음 두지 않았다

 

언제 내렸을까

뒤쪽으로 하얀 눈이 앞서온 발자국을 지우고

소복이 쌓여있다

앞만 보고 온 나를 피해 뒤쪽으로 왔을까

눈은 수시로 방향 바꿔 내린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뒤돌아본 후에야

땅에 떨어진 눈도 살아있다는 걸 알았다

동백꽃 눈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고

갈매기 떨어져 내리다 말고 향일암 종소리에 맞춰

낭떠러지를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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