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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여수해양문학상 수상자 명단

 

구분

성명

입상작

주소

대상

이상윤

한려수도를 지나며외 9편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용산동서 우방타운103/1603

우수

이민아

감성돔이 돌아왔다 외 5편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 금곡리 산183-6

가작

정영희

거문만, 그 상실의 바다에서 외 12편

여수시 안산동 우미린 @ 304/1205

 

 

해독(解讀) / 이상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찾아갔을 때
그는 마치 아주 오랫동안 날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온 몸을 자작나무 잎사귀처럼 반짝이며
나를 반겨 주었다
그러면서 제 이마에 박혀 있던 루비처럼 반짝이는
말 하나를 뽑아 나를 향해 쏘아 보냈다
그 말은 마치 꼬리가 붉은 미사일처럼 순식간에
내 가슴 한복판으로 날아들었다
나의 가슴은 한동안 불에 덴 듯 화끈거렸으나
도시의 막장 같은 그늘 속에서만 살아온 나의 귀는
괭이 끝처럼 무딜 대로 무디어져서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날 바다는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였을까
나는 바다가 준 그 둥글고 빛나는 푸른 말을 날마다
구슬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딸그락 딸그락,
산에 꽃이 피는 날도 들에 눈이 내리는 날도
나의 발은 언제나 해초처럼 파도에 젖어 있었다
하늘에도 바다가 있고 별에도 바다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그것이 구슬이 내는 울음으로만 알았다
그러다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더 이상 구슬을 넣을 주머니가 없어진 나는
그 말을 다시 컴퓨터 폴더 안에 집어넣었다
아직도 부화하지 못한 새의 알처럼
견고한 폴더 속에 갇혀 있는 바다의 말
오늘 밤에도 내 컴퓨터는 그를 해독하기 위해
암호병처럼 긴 불면의 밤을 보낼 것이다

 

 

 

감성돔이 돌아왔다 / 이민아

 

 

어류에게 제철, 이라는 말은

어탁을 뜨고 비늘을 친다는 뜻

너무도 이기적인 논평이다

바다의 계절을 사는 비늘 진 것 중

수컷으로 1년 살다 암수 한 몸

한 5년 억척스레 가계를 일구고

가장 나중 대부분 암컷으로

성전환을 한다는 어족, 감성돔

 

 

어머니는 필경 전생에

그 감성돔이 아니었을까, 그중

가장 실한 대물이 아니었을까

다시 태어나면 이제는

편안한 아내로 살고 싶다는

여린 지느러미 한 장으로 남아 이 겨울

삶의 거웃으로 유영을 시작한다

다시, 1년생 감성돔이 잠영해온다

 

 

무술목 안개 걷히고

금오도 바다가 아가미를 열 때

바야흐로 제철, 이라는 말은

비바람 맵찬 날 감성돔이

물밑 도사리는 세상여 헤치고

삽시간을 온전히 살아낸다는

바로 그 뜻, 멀리 백도 파도가

푸른 지느러미 세우며 달려온다

 

 

 

 

거문만, 그 상실의 바다에서 / 정영희

 

시름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는 밤이었다

탁상시계를 베게삼아 선잠이 든 어머니는

꿈속에서도 발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바다 밑 어딘가 묻혀 있을

아버지의 먹빛 신반 한 짝이 보였던 것이다

통발을 뜯어버린 문어 다리의 빨판도 훌렁거렸던 것 같은데

대처로 나간 큰 아들의 사타구니에 찰싹 들어붙을 것만 같아

짝 다리를 휘휘 꼬며 놓아라, 놓아라 소리를 치더니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생시였다는 듯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나갔다

먹빛 신반 한 짝 건져 올리는 일을 여생을 두고 해야 할 판인데

그믐밤에 떨어지는 별들은

왜 이리 어둡고 서러운지 모를 일이었다

오늘 밤, 어머니의 물질은 짧은 호흡 때문에

아무래도 헛손질이었을 성 싶었다

갯가 돌담 모퉁이로 사라지는 뒷모습이

손금처럼 뚜렷해지는가 싶게 곧 흐릿해졌다

 

별 하나가 서방바위 언저리에서 사라졌다고

마을 당산 팽나무에 매미처럼

붙어 있는 확성기가 맴맴거렸다

문어 농사는 손이 모자라 작파했노라고

아버지는 갈비뼈에 낫만 한 삼치 낚시를 매달고

이른 새벽을 데리고 나섰던 것이다

손등 사마귀 같은 몇 개의 여를 돌고 돌아

낯익은 무인등대 옆구리를 빠져 나오는데

어릴 적, 화장기 없는 둥근 소반 위에 토막 난 채

눈을 부라리던 고등어 눈알을 파먹던 때가 생각났다

눈을 질끈 내리 감으며 닻을 던져 놓았다

집 나간 지어미의 얼룩을 눈물로 닦아내고

풀 무덤에 버려 놓은 어린 흑염소의

분뇨를 땅에 묻었던 것처럼

죽어서도 이곳에 묻히겠노라고 속울음 꿀꺽하는 사이

속 쑤시던 동네 김씨의 비아냥거림이

언제 눅눅한 갯바람에 묻어 왔는지

두 다리가 뙤약볕에 얼음조각처럼 녹아내렸다

그래, 죽어서는 뭍으로 걸어가는 등대가 되는 거야라며

어금니로 삼치 대가리를 물어뜯는 사이

당신의 발목이 썩을 놈의 쇠줄에 둘둘 감겨

자꾸 바다의 끝으로 끌려 나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온 산에 매미가 흰 천을 풀어내고 있었다

마을의 솟대에는 바람이 드나드는

소쿠리가 낮달처럼 걸려 있었고

무게를 가득 줄인 생선 몇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고양이의 눈빛과 마주치는

저 공중 그네를 느릿느릿 따라 가다보면

어머니의 찔끔거리는 깊고 푸른 눈물이 보였는데

노을 속으로 자맥질하는 갈매기의 비상이 심상찮았다

질길 줄 알았던 무성한 칡넝쿨도 마른 바람이 되어 나갔다

무디어져 가는 물살에도

어머니의 의식은 조금씩 무청처럼 썰려 나갔고

그 자리에는 먹빛 신발 한 짝이 씽긋 웃고 있었다

 

달을 들고 나간 동네 사람들이

오징어 닮은 먹빛 신반 한 켤레를 찾았다고 아우성이었다

영문도 모르는 선창에는 뽀글거리는

홍합이며, 해삼이며, 전복이며,

문어 같은 것들이 어머니의 눈처럼 크게 뜨고 있었다

건져 놓은 먹빛 신발 속으로

별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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