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나는 겨울 자작나무 숲으로 간다 / 강성재
허공의 뜰에 눈이 내리는 날이면 나는
겨울 자작나무 숲으로 간다
지상엔 눈부신 눈밭
올곧은 기도가 하늘에 가 닿는 산 아래
숲을 이룬 나무들은 왜
흰 살결인가를 생각한다
상처 없는 나무는 없다
한 생을 나도 상처 입은 나무처럼 살았다
아니 제 상처를 핥는 짐승처럼 살았다
이 곳에 와서 나는 다친 몸을 끌고
어디론가 흔적 없이 사라지던
눈표범을 생각한다
시베리아 바이칼호, 티베트 고원의
눈 쌓인 설원을 생각한다
귓불을 잡아당기며 산정을 넘는 칼바람 소리
지난가을 천 개의 씨앗을 가슴에 품은
자작나무 열매는 씨방의 문을 열고
바람이 불 때마다 하나, 둘
새를, 나비를 멀리 날려 보냈다
흰 피부에 검은 상처를 안고 있는 나무들
때론 나무의 상처가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지상으로 꺾인 나무는 불 속에 몸을 던져
자작자작 말을 건네 오고
휴일, 나비매듭을 엮은 사랑은 화촉*을 밝힌다
다시 청보랏빛 하늘을 뒤덮는 눈보라의 군무
가지마다 점묘화로 피어나는 눈꽃송이들
겨울 숲에서 얼마나 손발이 시려야
그대의 따뜻한 가슴에 닿을 수 있는 것인지
산등성이에서 나는 한 그루 자작나무가 되어
오래도록 당신을 기다리며* 서 있다
*화촉: 자작나무 껍질을 태워 불을 밝힌 데서 유래
*당신을 기다리며: 자작나무 꽃말
[우수상] 고사리 / 이희경
지리산 중턱에 걸어놓은 오선지에 별들이 모여들고 있어요
달궁 마을에 음악회가 열리려나 봐요
유난히 흥이 많은 물푸레나무가 비파를 키기 시작하네요
뿌리까지 귀가 달린 듯 두근거리는 내 울림통
편백나무 숲길로 들어가면 전직이 미용사였다는 수수꽃다리 아줌마가 보여요
가끔은 웃자란 풀들의 머리를 잘라주곤 하는데
어제는 참꽃마리가 향기에 취해 조는 바람에 귀에 상처를 낼 뻔 했다네요
그렇지만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건 꽃향기가 아니라 가위 소리였어요
내 안에 현으로 된 힘줄이 있는게 분명해요
내가 엄마의 주머니 안에 있을 때 귀를 대면 하프소리가 들렸으니깐요
작고 아담한 땅속 어디든 뿌리를 내리고
태양이 지나가는 자리에 16분음표를 터뜨리죠
그럴 때면 사제비나비 한 쌍이 첫눈으로 착각하고 가슴을 쓸어내릴 때도 있대요
땅속까지 들려오는 울림을 따라 다람쥐 할아비가 살고 있는 나무를 찾아갈래요
그곳에 가면 엄마의 무덤을 볼 수 있으니깐요
산고개 너머에선 눈치 빠른 바람이 한 걸음에 달려와 자고 있는 무덤을 톡톡 건드리네요
뒤따라온 갈퀴나물이 손을 입에 대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요
앗! 겨드랑이가 간지러워요 주머니가 부풀어 오르고 있나 봐요
비가 와도 삭지 않는 주머니가 허공 속에 숨는 건 주변을 맴도는 엄마의 입김 때문이래요
이제 포자를 떠나보낼 때가 됐네요
머리부터 뿌리까지 빨갛게 변하지만
녹슬지 않고 새로 태어나는 거래요
부끄러운 듯 구부리는 손가락에 꽃반지 하나 끼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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