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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남한산성 심포니 / 이상우

 

겨울 남한산성, 떡갈나무 그늘 한 장에 주저앉아
저녁이 밀려드는 성벽 너머를 듣는다
둥치에 맞닿은 꼬리뼈부터 그늘이 부푸는 소리가 연주된다
십이월의 숲이란 마땅히 귀로 찾아들어야 하는 것
귓바퀴를 따라 둥글게 어둠이 말려들고
간명한 궤적의 가지들 사이로 맨살의 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저녁이 오지 않는 숲이란 없다
물기 어린 어둠이 중저음의 음계로 숲을 연주할 때
가지들이 어째서 잎을 버렸는지 비로소 알 것만 같다
사방팔방 펼쳐진 텅 빈 가지 사이엔
낱장으로 펄럭거리는 어둠들
나무를 기르는 건 빛의 힘만으로 안 되는 일이다
어둠을 들여다보는 상상력이 숲을 온전히 숲으로 자라게 한다

밤이란 어쩌면 나무와 숲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저물녘, 멍울진 해가 실밥 풀리는 소리를 내면
나무 둥치 밑 낙엽들이 소란해진다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것 같은 저 잎들 사이엔
무수히 많은 길목이 숨겨져 있다
부드럽고 따뜻한 응달의 물길이 그사이에 흐르고,
하늘이 아니라 지상에서 저녁이 먼저 시작된다

마침내 해가 저물면 숲을 둘러싼 배경은 사라지고
모든 가지는 수 만 줄의 궤적으로 다시 드러난다
가진 걸 다 내려놓은 자만이 연탄(連彈)할 수 있는 간소한 선과 자세
밝음은 물론 그러하지만,
어둠 또한 나무를 다르게 들을 수 있는 귀를 만들어준다

남한산성 심포니,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 너머
사시사철 불 밝힌 도시가 거기 있고, 나는 듣는다
언제나 환한 나머지, 어둠을 항시 죽이고 있는 도시
수 만 줄의 현이 저 도시를 모두 다르게 켜는걸

 

 

 

 

 

 

[우수상] 섶다리 / 이수진 

 

나무는 죽어서도
자신의 뼈를 빌려준다

어깨와 어깨를 걸어
폭우로 널뛰는 물의 마음 다잡아가며
봄꽃 만발한 산나물 바구니
사뿐히 걸을 수 있게

무명천 걸친
그렁그렁한 눈물 닦아주고
뼈 없는 슬픔 부축하며
밭을 건네주고 논을 건네준다

고봉밥 같은 길을 내며
거친 손등으로 눈보라 쓰윽 닦아낸
아버지의 저 듬직한 등처럼

꽁꽁 언 물속에서도 뿌리 내려
휘청거리는 어린것들의 걸음
주저앉지 않도록 모두 끌어안고 버틴다

나무는 오늘도 냇가에 서서
등이 휘도록 자신의 뼈를 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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