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숲채비빔밥 / 이성엽
지나는 구름한점 푹 떠서 하얀 고두밥을 지어 놓는다.
참나무 등껍질 파란바람에 들들 볶아 식혀두고,
봉긋솟은 꽃나무순 쓸어모아
내리쏟는 소나기에 후드득 씻어
칡넝쿨 엮어만든 채반에 얹어 물기를 찌운다.
코끝내음 향나무 파릇이 숨을죽여
졸졸졸 계곡소리 흩어뿌려 조물조물 무치고
겨우내 묻어두었던 산나물뿌리
돌바위에 듬뿍올려 송송송 채썰어 가지런히 놓은후
산새소리 모로꺽어 퍼렇게 불을지펴 숲을 데운다.
새벽녘 산란한 시뻘건 태양 한알을 과감히 깨뜨려 고명으로 올리고
뒷곁에 맛나게 익은 노을고추장
한숟갈 푹 떠서 탁탁탁 털어넣어 숲을 비빈다.
이른아침 짜놓은 이슬기름 두어방울....
그렇게 쓱쓱쓱 숲을 비빈다.
오늘도 밥짓는 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른다.
[동상] 주산지(注山池)에서 / 오영록
스님들이 목욕탕에 왔다동안거를 끝냈을 뿐인데 누대 헤어졌다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등이라도 서로 밀어주는지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후드득 빗방울 떨어지니 어 시원타, 어 시원타노승의 몸에서 쏟아지는 경전소리직박구리만 화들짝 난다햇빛으로 덥힌 온탕산그늘로 식힌 냉탕을 오가는 저 승가(僧伽) 바람 불 때마다 서로 머리를 밀어주는 저 모습아침이면 잠시 서산으로 바람 탁발(托鉢) 갔다가저녁이면 다시 동산에 올라 설법으로 몸을 말리는 그림자들때가 없으니 영혼을 씻고 있다저 속살을 슬쩍 훔쳐 본 적 있는데얼마나 씻고 있었는지 백옥보다 더 흰 성체(性體)만지면 뽀드득 소름 돋을 것 같은저렇게 천 년을 씻었으니 어찌 아니겠는가!얼마나 더 씻고 씻어야 혼까지 깨끗하게 만들 수 있는지유피(楡皮)가 되는지비 오는 날은 그 비 다 맞으며평등의 수면을 바둑판 삼아 똑똑 돌을 놓고 있다꽁꽁 얼어붙어 돌을 놓을 수 없으면무릎 착 꿇고 동안거에 들어묵언 수행 하겠지
[장려] 숲으로의 동행 / 장은선
봉분옆에 나란히 앉은 산꿩 한쌍
수풀을 박차오르며 우렁차게 울부짖는다
서로 짝을 잃지 않으려고
팽팽한 공처럼 울음통에서 하늘로 튕겨올리는 소리다
장끼가 날렵한 날개짓으로 해독할 수 없는
상형문자를 빈하늘에 그리고 가면
까투리가 이미 읽었다는 듯이
오르락 내리락 날개죽지로 지우고 간다
하늘은 사방 팔방이 길이고 자유인데
마주보며 양날개짓하는 곡예비행은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숲길마져 지우는
아름다운 동행이다
한톨의 양식을 포착한 까투리가
지상으로 곤두박질치자
장끼는 파수병처럼 경계를 늦추지 않아
그들의 사랑은 유희를 초월한 참생명이다
그들의 내밀한 언어인 오색꽁지로
영혼이 무르익은 사랑법이 펼쳐지면
청정한 솔숲도 화음으로 붉게 달아오르고
가을 저녁 노부부 비틀거리고 부축하며
숲속으로 산책하는 뒷모습이
멀리서보니 산꿩 한쌍을 닮았다
[장려] 여름 숲 / 정준호
나무 둥치에 구멍을 뚫는 딱따구리
순한 뱃속으로 탁란을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생명이 나무로 옮겨간다
기생寄生의 소리가 여름 숲을 흔든다
품 넓은 나무는 파문을 안으로 새겨 넣고 있다
뼈를 키우는 소리에 골몰하는 동안
계절은 나무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날아가라 한다
커다란 구멍을 몸속에 품고
울렁거리는 구역질을 푸르게 토해내는
나도 저 나무에서 태어나 걸음마를 배우고 자랐다
수액을 먹고 나뭇가지 방향으로
솟구치는 법을 배우고 날갯짓을 습득했다
부력이 생겨나고 비행을 할 때 까지
도움닫기를 해주고 새 생명을 저 품에서 키워내고 있다
옹이가 생긴 나무는 푸른 잎을 흔들어 날려 보낸다
이따금씩 날아와 앉았다 가는 날개는
공중에 주소를 두고 있는데
아직도 소리를 쫒아 잔가지 뻗는 나무에선 젖 냄새가 난다
여름 숲은 새의 뼈가 자라는 계절
기생하기 좋은 계절엔 날아가는 것들도 많지만
탁란의 그림자가 남아있는 숲으로
낯익은 발걸음들이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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