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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나이테 / 최재영

 

잘려진 나무를 읽는다

분주했던 시절들을 기억하는지

선명한 경계사이

부풀어 오른 물관이 입술처럼, 붉다

남쪽으로 기울어진 동심원은

따뜻한 생각만으로도 잎을 틔우는 중이다

밤새 별들이 머물다 가는 자리

아침이면 신생의 이슬방울들 모여들어

온 우주를 가만히 불러 들였으리

밤낮없이 당신의 생을 접촉하느라

어느 지점 등고선이 급격히 휘어지고

거기 어디쯤 둥지를 틀었던

새들의 족적도 역력한데,

북으로 가는 길이었을까

다급한 무늬들의 간격으로 폭설이 휘날린다

변방으로 내달리는 서늘한 결의처럼

나무들의 행간이 촘촘해지고

다시, 뜨거운 한 생을 휘돌아나가는 나이테

나무는 죽어서도 생장을 멈추지 않는다

숲은 경건한 침묵으로 고요하다

 

 

 

 

 

[우수상] 나무의 자서전 / 서상규

 

나무로 뿌리내린 가계를 펼친다

나이테에 갈피를 접은 자서전으로

눈, 비, 구름, 바람의 자음을

햇빛의 모음으로 품은 글자들,

잎이 광합성에 쏟는 땀방울로

한 땀 한 자 새긴 문장을 읽는다

처마가 응달로 기운 살림에

첫 새벽을 깨는 새소리에 일어나

한 뙈기만한 허공을 일군다

힘줄로 가지를 뻗은 손아귀에

굳은살로 단단히 옹이가 박히는

생의 내력에서 열매를 읽는다

땡볕 속 혈맥을 달구는 문맥에

녹음 짙푸르게 가난을 일으켜

나뭇결로 겹겹이 페이지를 채운

큰 나무로 우둑 선 아버지

등 굽은 줄기를 곧고 바른 의지로

물관 속 굳센 뼈대를 세워

척박한 땅에서 결실의 때를 맞는다

단풍으로 따스한 지붕을 올리고

둥글고 충만하게 영근 과실로

마지막 책장을 등불인 양 밝힌다

순한 귀를 귀납법에 드리우고

밤하늘에 하얗게 센 별빛으로

우듬지 위에 끝말을 맺는다

아버지가 쓴 오자 없는 자서전을

새 길에 목판본처럼 탁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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