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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 김참

 

사흘 내리 내린 눈이 모든 것을 덮었다. 구층 우리집도 눈 속에 파묻혔다. 냉기 도는 계단을 밟으며, 나는 일층으로 내려왔다. 현관을 박살내고 들이닥친 눈이 우편함 앞까지 밀려와 있었다. 오월도 끝나 가는데 무슨 눈이 이토록 퍼붓는단 말인가. 누군가 뚫어놓은 통로를 따라 막장 광부처럼 조심조심 걸었지만 눈 밖 세상으로 통하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언 손 비비며 천천히 걷다 발을 헛디뎌 다른 통로로 굴러 떨어졌다. 꽁꽁 얼어붙은 사람 몇이 차가운 눈 위에 쓰러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흔들어 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온기도 생기도 없었다. 어두운 통로를 휘감고 돌며 낮은 기타소리 들려왔다. 소리 나는 쪽으로 한참 걸었지만 통로는 막혀 있었다. 언 손 불어가며 길을 내는 동안 시간은 물처럼 흘렀다. 배고프고 춥고 졸음도 쏟아졌으나 잠들면 얼어 죽을 것 같아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갔다. 하루하루가 꿈처럼 지나갔다. 머리부터 발톱까지 꽁꽁 얼었지만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눈을 파헤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벽이 허물어지고 다른 통로가 나타났다. 멀리서 희미하게 불빛 하나 반짝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불 켜진 창이 보였다. 얼어붙은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여기 누가 있냐고, 아무도 없냐고, 아무도 안 계시냐고, 커다랗게 소리 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이중기, 윤의섭, 길상호 등저 <사이펀문학상 수상시집>(사이펀 현대시시인선 12)
 

사이펀문학상 수상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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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즐거운 마음으로 Jazz 연작을 마무리

어떤 말로 수상소감을 시작할지 한참 고민했지만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10월 어느 오후,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식이었습니다. 조만간 어느 문학상을 받을 예정이라, 제가 또 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소식을 알려온 배재경 선생님이 다른 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며, 사이펀 문학상 수상 소식을 알려왔기에, 상을 받아도 된다는 건 알았지만 사실은 통화하는 동안 상을 또 받아도 되나? 하는 행복한 고민을 했습니다.

집에 와서 사이펀에 발표했던 시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눈을 소재로 한 두 편의 시입니다. 저는 올해 들어와 Jazz 연작을 쓰기 시작했는데 사이펀에 발표했던 시도 Jazz 연작에 포함시킬까 고민하다가 따로 제목을 붙여 발표했습니다. 사실은, 며칠 전 어느 잡지에 두 편의 시를 넘기며, 시작 메모에 Jazz 연작을 마무리 한다고 적었습니다. 올해엔 신작시 청탁이 더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 한해 시 농사를 마무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수상을 하며, 두 편의 시를 더 쓰게 되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Jazz 연작을 마무리합니다. 시를 쓰는 시간은 늘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모두가 힘든 해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태어나 처음 마스크를 써 봤고, 발을 다쳐서 깁스도 했습니다. 병원에선 입원을 하라고 했지만, 입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집에서라도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했지만, 그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 아픈 발로 절뚝거리며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처럼 행복한 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한 해에 두 번의 상을 받게 되는 행운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사이펀 문학상은 더 특별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심사를 해주신 강은교 선생님, 김성춘 선생님께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 김참 시집 <초록 거미>(신생시선 58)
 

초록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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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을 통과해서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정익진의 「유리 바다」 외 1편, 최휘웅의 「코로나」, 한정원의 「조슈아 나무 아래의 감자」 외 1편, 최은묵의 「리플리 증후군」 외 1편, 김참의 「미궁」 외 1편이었다.

본심에 오른 다섯 분의 작품들은 모두 만만치 않은 시력과 뛰어난 시적 테크닉 그리고 개성적인 언어의 운용을 보여주고 있어 수상작 한 분을 선정하는데 고심이 많았다

시적 긴장을 잃지 않고 주제를 치열하게 밀고 가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성과, 사물에 대한 인식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대상 작품들은, 현재 한국시의 다양한 목소리와 그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사이펀 문학상의 높은 위상을 짐작 하게 했다.

그 가운데 수상작으로 선정된 김참 시인의 작품들은, 불확실한 미궁 같은 삶 앞에서,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면서 고통스런 현실의 삶을 큰 폭의 상상력으로 아름답게 전개 시키고 있어 높은 신뢰감을 주었다.

오월에도 눈이 내리는 이곳, 통로는 막혀 있고, 거리에는 얼어붙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암울한 도시, 그러나 어두운 통로 끝에서 들려오는 낮은 키타 소리가 있고, 멀리 불 켜진 창들이 아직도 보이는 도시, 시간이 물처럼 흘러가고, 하루하루가 꿈처럼 지나가는 이 곳, 우리 사는 곳, 음악과 눈송이, 꽃을 감각적으로 대비시킨 김참 시인의 환상적인 시편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수상자 김참 시인께 축하를 드리고, 본심에 오른 시인들께도 건강과 건필을 빈다.

- 심사위원 김성춘(시인. 전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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