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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수 무덤 / 이중기

 

기룡산 아래, 낙락장송으로 병풍을 친 곳

어느 문중 산소 아흔아홉 풍광 압권은 따로 있다

일찍이 내가 노래하다말고 악보를 찢어버렸던

그 시총詩塚* 아래

노비,

억수 무덤 있다

홍진에 죽은 아이 애장 터 만한 거기

굳이 '충노억수지묘忠奴億壽之墓'라고 새긴 빗돌이 좀 생뚱맞다

한심한 임금 몽진할 때 영천성 탈환하고

경주성 되찾으로 간 의병장 아들 몸종으로 갔다가

전사자 명단에는 오르지 못한 노비

시신, 애써 거두어 왔다는 사실

압권이다

시신 아예 찾을 길 없는 의병장 아들은

그가 입던 옷 들고 가 훠이, 훠어이 초혼을 하고

여기저기 유림에 시문을 받아

그 문장 태운 재로 만든 시총 아래

억수 무덤,

400년 지나 조악한 빗돌 하나 세웠다

억수는 그 선비 후손들 술잔에 큰절도 받을까?

무엇보다 그거 억수 무덤 맞아?


* 임진왜란 때 영천성을 수복하고 경주전투에 나간 의병장 정세아(鄭世雅) 아들 정의번(鄭宜藩) 시신을 못 찾아 선비들의 시문을 받아 묻은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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