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기분 / 정혜정
믿음을 가지면 리듬을 가질 수 있다
조그만 세계에 후두두 덜어져 내리는
빗방울 조율할 수 있다
크고 나쁜 소식이
작고 좋은 소식과
섞일 수 있도록
달린다
잽싸게 혹은 느리게
정곡을 찌르는 속력으로
바다에 가까이 산다는 것은
바다에 가까이 산다는 기분과 사는 것
이따금 바다로 향하는 버스가
앞을 스쳐
지나간다
일정한 속력으로
없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과
있는 것에 대한 기분을 가지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오후가 있다
얼굴이 필요해 애인의 얼굴을 가지는 것과
아름다움 없어서 아름다움으로 채우는 것에 대해
골몰하는 거울이 있다
거울의 파편에 비치는 것
지나가고 있다
여름 아니고
가을 아니고
계절만의 속력으로
올해로 25회째인 1500만원 고료 '진주가을문예' 당선자가 가려졌다. 시는 <믿음과 기분> 외 4편을 낸 정혜정 시인(39, 강릉), 소설은 단편 <칼>과 <쓸데없이 싸우는>을 낸 장수주 소설가(40, 화성)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남성(南星)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는 15일 공모?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0월 31일 공모 마감 결과, 시는 173명 1182편, 소설은 114명 179편(중·단편)이 응모했다.
심사는 예심 없이 본심 2명이 맡았다. 소설은 전성태 소설가 (장편 <여자 이발사> 등)와 최진영 소설가(장편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등), 시는 이정록 시인(시집 <동심언어사전> 등)과 김민정 시인(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등)이 했다.
시 심사위원들은 당선작 "믿음과 기분"에 대해 "읽고 있는 지금 이 행보다 읽어나갈 다음 행이 더 기대되는 마음으로 우리를 집중하게 했다. 사유가 뒤에서 밀어주기에 말이 되는 언어유희였다. 즐거웠다"고 평했다.
심사위원들은 "좋은 시는 두어 행 치닫으면 제 숨결을 가다듬으며 초원을 뛰어간다. 언어의 근육이 불뚝거린다. 읽는 이의 눈과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 눈빛이 있다. 시인은 문장에 눈을 심어놓은 사람이다. 눈빛이 또렷하고, 근육이 세밀한 시인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언어를 오래 다룬 사람만이 갖는 용기와 스스로 리듬을 만들어가는 명랑성이 심사자들의 마음까지 즐겁게 이끌었다"고 했다.
정혜정 시당선자는 소감에서 "내 앞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것은 나무의 모든 나날이 내 앞에 있다는 뜻이다. 바람과 햇빛과 빗물과 흙에 소실된 나날까지 합쳐 지금 내 앞에 있다는 뜻이다. 나무 한 그루는 나무의 모든 나날이다. 시의 나날이 되겠다"며 "필드와 함성에서 멀찍이 떨어진 외야석에 앉아 있다 영문 모를 홈런볼을 움켜쥔 기분"이라고 밝혔다.
김장하 이사장은 "진주가을문예를 운영한 지 올해로 25회째다. 올해도 공모와 심사 과정을 거쳐, 참신하고 의욕이 넘치며 기운 팔팔한 새 시인과 소설가를 내놓는다"며 "그동안 많은 관심에다 응모를 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고 했다.
'진주가을문예'는 남성문화재단이 1995년 기금을 마련해 옛 <진주신문>에서 운영하다 지금은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가 전국에 걸쳐 신인 공모를 벌여 운영해오고 있다. 당선자에게는 시 500만원, 소설 1000만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시상식은 오는 30일 오후 4시 진주 '현장아트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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