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유실수(有實樹) / 차원선

너의 눈 안에는 열매를 맺으려 하는 나무가 있다

너의 눈에 나무를 심은 사람이 저기 소각장에 앉아 있다

자신의 옷을 다 태우고도 헐벗은 너를 보고 있다

멀뚱히 있는 너와 떨어진 잎을 한데 덮는다

앙상해지도록

베고 누웠다

잔향 더미로 만든 모래시계

마른 낙엽을 주워 구덩이로 몰아넣었다

왜 내 얘기를 듣고 있어요?

낯선 사람인가 봐 쓸쓸하다고 하면 데려갈 텐데

그대로 있어요

반딧불이 무리지어 올리는 온도

올라가는 건물

빈 곳은 비어있었던 적이 없고

마지막으로 옮긴 불씨 조각이 다 자란 나무의 잎에 옮겨붙는다

오랫동안 그를 알았다

열매를 남긴 나무, 앨범에 적히고

눈 안에 마른 씨앗을 품던 자리가 바스러져 날아간다

몇은 땅으로 몇은 모를 곳으로

 

[당선소감] "내가 머물렀던 자리 돌아봐주변에 귀 기울일 것"

 

12월의 당선 소식은 그동안 내가 머물렀던 자리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내가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던 날이 있다. 그 사람에게 내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진심으로 떨리는 일이었다. 그 사람은 담담하게 내가 쓴 시를 읽어주었고 그때의 그 벅찬 순간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줬다.


어디에나 쓸쓸한 소식이 번지던 한 해가 지났다. 이겨내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시간은 흘러 새해가 밝았고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1년을 더 보낸 내가 조금 더 성장했음을 느낀다. 무언가를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삶의 순간들에 주목하는 시를 써나가고 싶다. 나와 함께하는 시간들을 담아나갈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기회를 준 한국경제신문과 내 시에서 가능성을 봐준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같은 자리에서 말없이 나를 헤아려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감사드린다. 혼란스러운 날에 그들이 있어 말하고 싶은 것들을 변함없이 써내려 갈 수 있었다.

 

 

 

 

이유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이미지가 눈에 생생기교와 비약 참신

 

본심에서는 네 분의 시를 다뤘다. ‘전래동화’ 외 네 편은 직설적인 언어로 기성세대와 맞서는 자세가 만만치 않았다. 다만 그것이 사회와 깊이 부대껴서 얻은 것은 아니어서 시야가 좁고 다소 막연해 보였다. ‘가장 내밀한 스펙트럼’ 외 네 편은 흡입력과 호소력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시에서 흐름을 끊는 직접 발화를 자주 사용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했다. ‘어둠’ 외 네 편은 과감한 생략과 거침없는 반복 등 난숙한 화법으로 이목을 끌었다. 다만 논리가 시를 압도하는 지점이 가끔 눈에 띄었고, 최근 시의 스타일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침윤된 것은 아닌가 하는 혐의도 받았다. ‘유실수’ 외 네 편은 각각의 시마다 이미지를 극적으로 쌓아가면서 심화시켜 가는 상상력이 돋보였다. 본 적 없는 기교와 비약이지만 우리는 이 상실에 맞닥뜨린 자의 눈에 비친 낯설고 속절없이 슬픈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유실수’ 외 네 편을 응모한 차원선 씨를 당선자로 정했다. 게임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면 아류가 되기 쉽다. 우리는 차씨가 익숙한 새로움을 되풀이하기보다 낯선 전환점을 만드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황인숙 시인, 손택수 시인·노작 홍사용 문학관 관장, 장이지 시인·제주대 국문과 교수

 

728x90

 

 

노이즈 캔슬링 / 윤혜지

 

 

우리는 한껏 미세해진 우리를 내려다보며 기내식을 먹었다 책을 뒤적거렸다 구식(舊式) 동물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그것은 동물들이 있다,로 시작된다

 

유기인지 실종인지 자연발생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구식의 동물들이 발견되었고

 

그들은 제각기 살고 있다

 

매일 똑같은 구절을 읽어줘도 너는 언제나 놀라워한다

 

연하게 와서 끊임없이 훼손되는 마음으로

 

침목(枕木)을 고른 적이 있다 비를 맞고 볕을 쪼이길 반복한 나무토막들 위로 뜨거운 기차가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달렸다 모든 것이 멈추면 아웃렛에 가서 새 셔츠를 사고 카페에 앉아 아주 뜨겁고 단맛이 나는 차를 마셔야지 하다가 자신이 데려올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영영 잊어버린 사례도 있었다 이것이 소음으로 소음을 지워내는 방식입니다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각자 잊어버린 것을 접어올리고 등받이를 세우고 얌전히 차례를 기다렸다

 

가팔라지는 날개

 

여러 개의 의자에 앉아야만 생각나는 것이 있다

 

이국의 빛과 온도
잎사귀와 해변의 선량한 사람들

 

규칙적인 것은 예상 가능해서 지울 수 있다 다만 어떤 통화 소리
바빠, 계속 바빠서 그래 배회하듯 하는 사과
그것은 틈입이다

 

나 좀 안아줘, 같은 말은 꼭 돌아누우면서 하는

 

어떤 나쁨은 너무 구체적이어서
꼭 대낮 같다

 

물결이 물결로
공들여 썩는 냄새를 맡았다

 

그것을 생각할 때
깨끗한 공기 속으로 무언가 빠르게 나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눈앞에서 파도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저마다의 계단처럼




 

[당선소감] 내 안팎 드나들며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글을 쓰면 종종 시적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시적이라는 게 뭔지 궁금해서 아예 시를 써봤는데 생각보다 잘 맞았다. 마음속에서 덜컥거리는 것, 어두운 것들을 꺼내 썼다. 흐릿하게 써도 되니까. 모호하게 써놓고 시라고 이름 붙이면 되는 줄 알던 때도 있었다.

 

가던 길의 방향을 틀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친구들과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 글쓰기스터디원들에게 감사하다. ‘지금-여기의 시 쓰기친구들이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면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가족에게도 고맙다. 동생들과 아빠, 그리고 엄마. 나는 자주 엄마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만삭의 몸으로 백일장에서 가을 강을 바라보며 글을 쓴 이야기. 상으로 받은 세계문학 전집을 들고 퇴근한 남편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듣고 있으면 그 어린 부부와 내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다가, 이내 참을 수 없을 만큼 좋아진다. 그러니까 이 상은 사랑하는 당신과 내가 함께 받는 두 번째 상이다.

 

삶은 계속 모호하겠지만, 정확한 시를 쓰고 싶다. 또 다른 시를 꿈꿀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린다. 이제 내 안팎을 유연하게 드나들면서 지치지 않고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준 사람들과 닮은 글을 쓰고 싶다.

 

마지막으로 허술하고 이상한 나를 견뎌준 동윤에게 많이, 깊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유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가능하면 오래, 더 가까이서 듣고 싶은 목소리

 

시가 고백의 장르라면 당연히 그 내용보다 방법이 중요할 것이다. 아무리 전언이 분명하고 어조가 강렬해도, 나와 당신 사이 징검돌을 하나하나 밟아오지 않는다면 금방 무용해지는 게 고백이니까. 이제 바위처럼 던져져 이 세계의 진의를 되묻는 식의 낯익은 새로움보다도, 무심하게 놓인 돌의 모양과 간격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존재를 확인한다. 물론 징검다리 이편과 저편에 있는 나와 당신세계와 언어또는 삶과 시로 바꾸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최종까지 함께 읽은 시는 그렇게 서로를 건네주는 것들이었다. 여한솔의 시가 시간을 견디는 슬픔을 연구실 불빛으로 켜놓는 저력을 보여줄 때도, 박다래의 시가 낯익은 순간의 낯섦을 비닐하우스의 물방울로 달아놓을 때도 그랬다. 전윤호가 사물과 세계를 빈틈없이 연결하고 정보영이 존재의 물질성을 생의 실감으로 드러낼 때, 우리는 이 시대의 고립을 단순히 고독의 심연을 헤매는 일로 소진하지 않고 세계의 이면을 파헤치는 힘으로 돌려놓는 데 놀라워했다.

 

윤혜지의 노이즈 캔슬링에는 기차 소리로 달려가는 지상의 시간이 있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공중의 시간이 있다. 날아가는 동안, 우리는 자신들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시는 부유와 진공이 꼭 공중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결처럼 규칙적으로 이어지던 관계가 대낮의 파도처럼 무너질 때, 일상의 비애를 지워내는 것 또한 일상이고 그것이 진짜 비극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흔한 구식(舊式)의 삶을 일깨우는 것이 유일한 미덕이었다면 이 시를 내려놓고 각자의 비애 속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우리를 붙든 것은 그 말의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실어나르는 목소리였다. 숨기지도, 대놓고 드러내지도 않으며 이어짐과 멈춤의 무심한 굴절을 만들어내는 매혹 앞에서 우리는 가까스로 구식(舊式) 동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면 어떨까. 가능하면 오래, 그리고 더 가까이서 이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 심사위원 김현, 김행숙, 신용목 시인

 

 

 

 

 

 

728x90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 / 신이인

 

 

오리너구리를 아십니까?

오리너구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아에게 아무렇게나 이름을 짓듯

강의 동쪽을 강동이라 부르고 누에 치던 방을 잠실이라 부르는 것처럼

 

나를 위하여 내가 하는 일은

밖과 안을 기우는 것, 몸을 실낱으로 풀어, 헤어지려는 세계를 엮어,

붙들고 있는 것

 

그러면 사람들은 나를 안팎이라고 부르고

어떻게 이름이 안팎일 수 있냐며 웃었는데요

 

손아귀에 쥔 것 그대로

보이는 대로

 

요괴는 그런 식으로 탄생하는 겁니다

부리가 있는데 날개가 없대

알을 낳지만 젖을 먹인대

반만 여자고 반은 남자래

 

강물 속에서도 밖에서도 쫓겨난 누군가

서울의 모든 불이 꺼질 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기슭에 떠내려오는 나방 유충을 주워 먹는 게 꽤 맛있다는 거

 

잊을 수 없다

모두가 내 무릎에 올려두었던 수많은 오리너구리

오리가 아니고 너구리도 아니나

진짜도 될 수 없었던 봉제 인형들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못한

실오라기

끊어낼 수 없는

주렁주렁

전구 없는 필라멘트들

 

불을 켜세요

외쳐보는 겁니다

, 이상해.

 

 

 

 

[당선소감] "너무 곱씹어 단물이 다 빠져버린 미래...빚을 다 갚은 기분입니다

 

나는 툭하면 이상한 애가 됐다. 초등학생 땐 이름보다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자주 불렸다. 중학교 담임 교사는 나 같은 애랑 잘 지내 주는 반 애들에게 선생으로서 고맙다는 말을 했었고. 고등학교에 올라가 자기소개를 하는데 누군가 이상해! 소리쳤다. 누구는 나한테 특이한 척하지 말라고 하고 누구는 내가 특이해서 좋다고 하고 누구는 남들처럼 지낼 수 없겠냐고 한숨을 쉬었다. 영문을 몰랐다.

 

어쨌든 나도 당신들처럼 살아 보이겠다고, 시 같은 거 다시는 안 쓴다고. , 나 평범하게 잘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지만.

 

나는 시인이 될 수 없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하나씩 있다고 생각했다. 될 것 같은데, 정말 될 것 같은데.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될 것 같은데 영원히 될 것 같기만 한 사람. 나는 그게 나라고 믿었다. 그걸 받아들였었다.

 

너무 곱씹어 단물이 다 빠져버린 미래가 찾아왔다. 기쁘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글쓰기를 그만두고 돈을 벌면서부터 내 감정은 존재를 참는 방향으로 단련되어오고 있었다. 빚을 다 갚은 기분, 아니면 받아야 할 돈을 다 받은 기분. 조금 들떴고 홀가분했다.

 

한때 이 자리에 제일 먼저 적으려고 했던 이름을 생각하고 있다. 메모장에 줄줄이 저장해 놓고 누구 선생님, 선배님, 사랑하는 누구 친구, 한 명 한 명 부르려 했던 이름들이 많았다. 지금은 그중 하나도 기꺼이 부르기 어색하다. 그런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모두에게 전하겠다. 시인이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저의 젊은 날에 함께해주셔서 기뻤어요. 우리가 쓰고, 배우고, 마시고, 사랑한 시간을 잊지 않을 겁니다. 끝내 이 말을 전할 수 있게 저를 이쪽에 세워주신 김소연 선생님, 장석주 선생님, 서효인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그리고 한 번 더 고맙습니다.

 

최고로 웃기고 올바른 사람인 서우주에게. 여전히 내 편인 김성은에게. 인생의 위로가 되어주는 이대휘에게. 정신여자고등학교의 편견 없던 선생님들에게. 여름이라고 불러달라는 멋쟁이들에게. 점례를 아는 친구들에게. 사랑하는 김미향, 신명균 씨에게. 내게 아직 남은 운이 있다면 모두 주고픈 신예지에게. 당신들이 있어서 난 좀 이상한 채로도 잘 살아 있다. 이 한국 사회에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것이다.

 

 

 

 

[심사평] "완벽한 관리자와 특별한 난동꾼, 그 모두를 해내는 시"

 

개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개성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각자의 고유성을 얼마간은 지니고 있으며 생활과 사유 곳곳에서 그 고유함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숨기려 해도 얼핏 내비치는 사투리처럼, 감추려 해도 별안간 나타나는 표정처럼. 시는 나도 모르게 드러나는 개성을 서랍장 곳곳에 잘 수납하고 연과 행에 맞춰 잘 구획하는 관리자일지도 모른다. 혹은 반대로 가끔 얼굴을 비추는 고유성을 극대화해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는 난동꾼일 수도 있다.

 

심사에서는 완벽한 관리자와 특별한 난동꾼 중 하나라도 그 자리에서 나오길 바라게 된다. 관리자이면서 난동꾼이 될 수 있는 시인이 등장하길 차마 바랄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잘 없으니까. 그 어려운 일이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일어났다.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은 정돈되면서 어질러진 시였다. 익숙한 지명을 동원하고 친숙한 어투로 말을 건네어 귀를 붙잡아 두면서도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못한/ 실오라기같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리된 채 구성된 이미지 속에서도 곳곳에 돌출하는 의외성이 시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지금의 시만큼 앞으로의 시 또한 기대된다. 기대하는 자의 설렘을 담아,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함께 마지막까지 이야기한 작품은 ', 하고 열린 옷장', '언젠가 부하들은 반란의 내색을 비춘 적 있다', '한국어 감정' 등이다. ', 하고 열린 옷장'은 사소한 장면을 일시정지 상태로 만들어 더 이상 사소하지 않게 하는 미덕이 있었다. '언젠가 부하들은'은 유머러스하고 의의성 있는 진행이 돋보였다. '한국어 감정'은 언어와 언어가 부딪쳐 생기는 감각과 진폭을 그리는 주제 의식이 담백했다. 모두 당선되지 않을 이유보다 당선될 이유가 더 많았으나, 약간의 행운이 부족했던 것으로 오늘의 아쉬움을 갈음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당선자에게 다시 한번 축하의 말씀을 건넨다.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닌 세계 어딘가에서 역시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들을 껴안으며 써나가 주실 것이라 믿는다. 관리자가 될 것인가, 난동꾼이 될 것인가? 그런 생각할 겨를 없이 시는 당신을 끌고 어딘가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만나면 좋겠다.

 

심사위원 서효인 시인, 장석주 시인, 김소연 시인

 

728x90

 

첫사랑 / 최미영

 

이슬이 데려온 아침이 느리게 안개를 먹는다
밤새 졸참나무는 치장을 더 화려하게 하고
밑둥에 쏟아낸 도토리에 횡재한 다람쥐

두근두근 내 심장은 노란 국화꽃이다
내일 또 쏟아져 내릴 빛이건만 오늘은 폭설이다
그 옛날 함께 있어도 더 함께 있고 싶던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파란 물감을 품은 호수다

작년까지의 눈가 잔주름은
눈치 없이 양반다리 틀고 앉았고
오늘따라 근엄하게 폼 잡은 팔자주름이 밉상이다
반 백년을 담은 얼굴,
분으로 주름은 덮지 못해도
손만 잡고 보냈던 그 날밤 추억으로
양 볼이 자줏빛 국화꽃이다

저만치 그가 온다
볼 빨간 낙엽을 들고......


 

[당선소감] 따뜻한 여운이 남는 시 쓰고 싶다

 

지구 곳곳을 뒤덮은 재앙으로 모두 힘든 올해입니다.

 

떡갈나무 잎에 떨어지는 경쾌한 봄비 소리도 그저 멀리서 바라만 봐야했고, 나뭇잎을 흔들던 시원한 여름 바람도 바람이 잠든 후 조용히 혼자 느껴야 했고, 아파트 사이를 가로질러 치솟다가 살포시 하늘 가득 내리는 첫눈도 복면을 쓰고 혼자 감상하는 청승을 떨어야 했습니다.

 

덕분에 존경하는, 좋아하는 시인, 작가님들의 작품을 그 어느 해보다 많이 접할 수는 있었습니다.

 

내 생애 가장 큰 재앙으로 우울한 나날에 한 줄기 빛처럼 날아든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당선 소식은 신의 축복입니다.

 

왜 나만 괴롭고, 왜 나만 힘들고, 왜 나만 아파야하느냐고 삶을 내려놓고 싶을 때마다 일기장이 찢어지도록 힘을 주어 하소연을 했답니다.

 

이제 난 나와 같은 아픔을 겪거나 상처 입은 이들에게 부족하지만 나의 시를 통해 따뜻한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부족함 투성이의 덜 익은 저의 글을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진심의 감사 인사를 드리며, 이제부터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임을 가르쳐주시는 사랑의 채찍으로 겸손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날개를 펼 수 있는 등용문을 마련해 주신 동양일보 회장님과 모든 관계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에 걸맞는 문인이 되도록 치열하게 노력하겠으며, 독자들이 공감하며 따뜻한 여운이 오래 남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가을은 시들고 성난 황소같이 겨울이 왔지만, 다가올 봄이 있기에 또다시 힘을 냅니다.

 

 

 

 

 

11번가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절제된 언어로 형상력 신장

 

27회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들 중에서 선자에게 넘겨진 작품(367편)들을 숙독하고 볼 때 해를 더할수록 난해하거나 미숙한 작품들이 줄어들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관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난삽한 작품들이 발견되고 있다.

 

선자의 손에 남아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는 김태춘의 「빌딩 타는 거미」, 홍영수의 「대흥사 천년 숲길」, 김준태의 「바지랑대」, 최미영의 「첫사랑」이란 작품이다.

 

김태춘은 「빌딩 타는 거미」에서 옥상은 날기 좋은 곳, 죽기 좋은 곳이라 했다. 그만큼 운수와 의지의 삶이다. 바람에 흔들린다. 두드려도 허공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붉은 수건을 매면 전사가 되고 피켓을 들면 애국자가 되고 영웅이 된다며, 절벽은 발이 닿지 않는 남의 나라 죽음과 삶은 한 줄에 꼬여 대롱거린다고 한다.

 

홍영수는 「대흥사 천년 숲길」에서 새벽달은 두륜산 끝에 걸쳐있고 여울목엔 풋잠 깬 새들이 깃들고 길 위엔 동백이 주단을 깔고 절간의 목탁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 불경소리는 풍경 끝에 꽃을 피운다고, 초의 선사의 차향 내가 스칠 때 부도 밭 큰스님의 화두가 목덜미에 떨어진다며 침묵의 천년이 다가선다. 보듬어 내는 내 모습이 새롭게 거듭나게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김준태는 「바지랑대」란 작품에 한순간도 무릎을 꺽은 적 없다며 외로이 누군가를 떠받치기 위해 태어나지 않으리라 핏기없는 깡마른 다리로 식솔들의 생을 짊 지고 볕에 내어 말리는 영문 모를 원죄들 씻어 내린다.

 

허공을 관통하는 하얀 외줄을 부여잡고 깡마른 몸에 의지한 숨 가쁜 생을 하늘로 띄워 보내려는 소임, 운명처럼 짊어진 삶을 노래하고 있다. 좀 더 압축과 절제의 수법훈련이 요구된다.

 

최미영은 「첫사랑」이란 작품에서 아침이 느리게 안개를 먹는다. 밤새 졸참나무는 치장을 더 화려하게 하고 밑둥에 쏟아낸 도토리에 횡재한 다람쥐란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두근두근 내 심장은 노란 국화꽃이다.

 

그 옛날 함께 있어도 더 함께 있고 싶던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파란 물감을 품은 호수에 비견시키고 있다. 눈가의 잔주름 근엄하게 폼 잡은 팔자주름이 밉상이라면서도 반백년을 담은 얼굴, 분으로 주름은 덮지 못한다 해도, 손잡고 보냈던, 그날의 추억으로 양 볼이 자주빛 국화꽃이다. 서정적 화사花詞로 순결성을 내보인다.

 

저만치 그가 온다. 볼 빨간 낙엽을 들고...란 말들은 절제 압축의 미학이다. 사물과 사유를 시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최미영의 「첫사랑」을 당선작으로 내놓는다. 더욱 정진 대성하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정연덕 시인

728x90

 

 

[장원] DMZ, 흰 저 흰 목덜미 / 송병호
 
 이름 없는 봉분이 잊힌 사차의 결을 채록한다 비스듬히 기운 비목은

장식용이 아니다 돌아오지 않은 12만 3천여, 임들은 어디에 주소를 쓸까?

솔가지 바늘로 귓속을 후비는 올빼미, 잣나무가지에 발톱을 세우

저녁 마실 나온 청설모에 레이저빔을 꽂는다 햇볕의 처방은 언제나

긴급수혈, 혈관의 입구가 좁은 항아리의 병목에서 얽히고설킨

너 따로 나따로, 이번에는 싶다가도 너무 먼 우리들의 이야기,

행낭을 풀기도 전에 한쪽 팔을 잃어버린 인형이 된다
 
   늘 그랬다 수국꽃빛깔 경계등이 지시하는 미로에 파란불을 켤 때마다

예측은 가정(假定)의 문턱에서 허리를 낮추지만, 백마 탄 어린 왕자를

흉내내 까부는 모노드라마의 광대와는 달리 시한이 설정되지 않아

그렇지 언제 터질지 모를 뇌관은 길들여지지 않은 들짐승 같아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이끗 다툼의 선긋기, 여전하다
 
   문득, 어둠의 진혼곡이 문설주를 배회하는 낯선 그림자
   유월절 동트기 전 선민(選民)의 마지막 선택은 자유였다
   하얀 거즈를 허리에 두른 히브리 노예와 리더십의 유순한 발현
   봉분의 묘혈을 밟고 건넜을 홍해의 푸른 깃발을 보아라
 
   봄꽃은 바람시린 통증에도 기어이 꽃을 피우고 마는 것처럼
   사로(射路)의 DMZ, 칭칭 감긴 저 검푸른 목덜미
   세모의 가늠키가 소용없을, 위계의 경계가 따로 없을 그 언제
   눈은 눈을 손은 손을 맞잡고 새로 쓸 통일선언문
 
   흰 저 흰 DMZ, 프리존의 봄이여

 

 

 

'국내 문학상 > DMZ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회 DMZ문학상 / 강신월  (0) 2022.06.16
728x90

 

 

[대상] 산벚나무를 읽는 저녁 / 최재영

 

물에 젖기 위해

백년을 걸어가는 나무가 있지요

퉁퉁 부르튼 맨발 사이로

세상의 저녁은 소리없이 스며들고

다가오는 천년을 가만 응시하느라

나는 바싹 가물어 있었지요

간절함은 어디에도 기록할 수 없어

한 획씩 혈관을 파고 들어갈 때마다

산벚의 흰 그늘까지 움찔거렸겠지요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제 근원의 몸부림으로 뜨거웠던 시간들

그대의 다급한 호흡은

어떤 이의 애달픈 기록이었을까요

산벚이 거느린 골짜기들이

일제히 먹빛의 힘으로 일어서는 저녁

경판에 서려있는 푸른 맥박소리

온 산 가득 울려 퍼지는데

먹물보다 진한 핏빛눈물 하얗게 쏟아지네요

오래 전 생의 바깥에 등불을 밝힌 이들은

지금도 구국의 화엄을 새기고 있을까요

봄이면 경판 속의 활자들 환하게 피고지고

짜디짠 소금기 허옇게 일어서는지

골짜기마다 산벚나무는 절뚝이며 피어나요

팔만의 꽃잎들이 봄의 한복판을 걷고 있어요

 

* 산벚나무 : 고려시대 몽골 침입 당시 조성된 팔만대장경의 경판으로 쓰였으며

벌채한 나무를 판자로 자른 후 소금물에 삶아서 그늘에 말린 후 옻칠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 대상수상소감 - 최재영 >

다시, 가을입니다. 맑은 하늘과 형형색색으로 가득 채워진 들녘과 자연은 많은 문학인들에게는 가슴 벅차게 도전하고픈 소재를 안겨주고도 남겠지요. 물룬 단순히 풍경을 노래하는 것이 “시”가 될 수는 없으므로 표면적 소재의 내재화를 위해서는 많은 밤시간을 할애하여야 할 것입니다.

김포문학상 응모를 하면서 망설이기를 여러 번, 몇 날을 뒤척이기도 했는데요. 등단 햇수도 십 수 해가 되어가니 스스로 부끄러웠는지도 모릅니다. “시”를 쓴다는 일이 어떤 문학적 성과를 담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 무언가를 도모하고 싶어지는 졸렬한 성정을 무엇에 비유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습니다만 최소한 시는 졸렬하거나 치졸하지 않으려 나름의 노력을 했다는 것에 자부심 내지는 박수를 보내려 합니다.

산벚나무를 글감의 소재로 쓰면서 오래 전 이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 벌어진 치욕과 살육에 몸서리치며 저항했을 우리의 조상을 떠올려 보는 일은 참으로 가슴 뻐근한 일이었습니다. 희미하게 꺼져가는 나라를 구하려는 그들은 얼마나 애닲은 심정이었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만 뼈를 깎는 고된 과정을 거쳐 만든 팔만대장경판은 고스란히 우리 민족의 절박한 심정, 그 자체였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하여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산벚은 해마다 가슴 한 켠으로 아프게 파고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껏 시를 써 온 날보다 앞으로 써야 할 날이 더 많이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니 그래야 하겠지요. 또한 그 사실에 한껏 안도하면서도 은근히 걱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문학상이라는 이름으로 주시는 상은 그에 상응하는 작품으로 보답해야 하는 것이기에 부단히 갈고 닦으라는 채찍이라 생각합니다. 염원하던 주택으로 이사를 하며 삶의 터전을 다시 일구느라 분주한 가운데 당선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몇 계절을 소비하면서 잠시 소홀했던 내 시를 돌아보고 어루만질 수 있도록 따뜻한 기회를 주신 것만 같아 기꺼운 마음입니다.

다시 뜨겁게 “시”를 품겠습니다. 그리하여 생의 어느 한 곳은 “시”로써 채워지기를, “시”의 한복판을 즐거이 고뇌하며 걸어갈 수 있기를, 그리하여 “시”로 인해 기뻐하고 분노함에 주저하지 않기를 겨울 쪽으로 기울어가는 숲과 바람을 마주하며 되뇌어 봅니다. 용기를 북돋워주신 김포문협과 관계자분들, 심사위원들께도 큰 절 올려 감사드립니다.

 

 

 

 

 

[우수상] 파키라 여인 / 이용호

 

사람을 멀리하던 그녀는 오늘도

화원 한구석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새벽에 길을 묻고 물어 걸어온 출근길

바오바브나무처럼 굵어진 팔뚝으로

화원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간밤에 아프지는 않았니

네 상처도 이제 곧 뿌리를 내리겠지

일일이 식물들과 눈을 맞추고 살피는 건

하늘이 부여해 준 그녀의 책무

말없이 앉아 공상하거나

가끔씩 물을 마시고

밖에 나가 하늘을 보고 볕을 쬐다 보면

어느새 발바닥이 간지러워

이제 뿌리가 돋는 것일까

각질이 뚝뚝 떨어지는 발부리에서

거친 황야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나도 식물처럼 이 지상에 정박하고 싶어

어머니, 이제 저를 이곳에 뿌리 내려 줘요

아마 너도 발부리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선

먼저 모든 걸 스스로 버려야 한단다

어머니의 지청구가 화원에 매일 가득차면

이제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바람 한점에 슬픔을 놓아 주고

적당하게 흔들리는 줄기와 가지를 지닌 채

말없는 파키라 한 채로 화원에 눕는다

 

 

< 우수상 수상소감 - 이용호 >

수상 소식을 전화로 받은 때는 공교롭게도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전화기 너머 건너온 반가운 목소리의 감흥을 뒤로 한 채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에서 가까운 불암산 봉우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저마다의 단풍으로 가을을 물들이고 있는 산의 모습이 처연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렇게 세상에 아름답게 물들어 갈 수 있는 시를 과연 나는 지금 쓰고 있는가하고 제 자신에게 되물어 보았습니다. 지금은 번잡한 일상의 시간을 마치고 저의 자리로 돌아와 앉아 이번에 제출했던 제 시를 다시 읽어 보는 밤입니다.

예년 같았으면 시월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하며 지인들과 약속을 잡거나 산을 찾아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일상의 삶은 단풍처럼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만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문학은, 시는, 나의 시는 과연 무슨 존재 의미가 있을까 고민해 보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자기의 일터에서, 가정에서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의 이웃들이 있습니다.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세상. 제 시는 바로 이런 분들께 바치는 마지막 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게 있어 시 쓰기는 세계와 인간의 진정성을 회복하려는, 지상의 포유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자기 구원의 행위였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기대고 자신의 영혼에 힘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세상을 아름답게 지켜내는 따스한 시를 쓰겠습니다. 언어 미학이라는 허울 아래 정작 시를 쓴 시인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 날선 이미지와 감각의 전위 등으로 포장해 소수의 사람들만 읽는 시가 아니라 인간의 진심과 이 세상을 아름답게 읽어 내는 시를 쓰는 시인이 되도록 밤을 새워 읽고 또 쓰겠습니다.


상을 주신 김포시의 여러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728x90

 

[대상] 돌문어라는 춤 / 김은순

 

저녁이 오는 방향으로 호미곶 등대는 서 있고요

파도는 저녁의 옆구리로 파고들고요

그때 큰 섬과 작은 섬 사이를 잇는

진달래꽃의 저녁이 부풀고 있지요

 

절벽 밑의 동굴 속으로

무릎팍 걸음으로 오는

붉은 빛 진달래꽃이 알을 낳으러 온대요

 

해조음이 모래 빛으로 흩어질 때

물밑에서도 꽃그늘이 오고

갯바람 언덕이 생기고 있지요

 

침묵으로 환하고 아름다운

눈이 부시는 저 진달래꽃을

호미곶 사람들은 돌문어라고 불렀대요

 

그런 봄 바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수경을 쑥으로 닦은 해녀들이

저 진달래꽃을 끄집어내어 말려두었대요

 

저 꽃잎 뻘판 하나가 물밖에서는

열두 달이라지요 진달래꽃은

호미곶의 얼굴이었지요 돌문어라는 춤이었지요

 

 

 

 

 

 

 

 

[최우수] 바다 제련소 / 김완수

 

 

 

 

 

 

 

 

[우수] 해돋이 언덕에서의 합창 / 허남기

 

찬란한 빛을 쬐는 야무진 당신

뭇 사람들 바닷길 헤침으로

어둡고 긴 허공의 껍질을 벗겨

빛의 초점으로 튼실한 빛을 쏟아낸다

 

아득히 머무는 빛의 줄기를 만든

눈부신 너울의 흐뭇한 물이랑 너머

등대 빛을 즐리고 있는 고깃배

마블링으로 덧칠한 낯익은 어부

해오름의 눈부심을 마음껏 읽어 내린다

 

첫걸음을 디딘 자욱한 물안개를 덧칠한

갈매기의 짜릿한 비바체의 울음소리

희망을 뿜어낸 귀신고래의 분수

해맞이 언덕엔 늘 공감의 노래를 합창한다

빛의 음성 비바체로 부르는 고깃배 열창

그렁그렁 그 빛을 탐하는 파랑에 흠뻑 젖어

한 줄기의 무한한 소원을 탄생시킨다

 

내가 있고 네가 있어 내일을 밝히어

뭇사람의 즐거움을 안기는 이유를 알았다

 

 

 

 

 

 

 

[우수] 신 다산별곡, 장기유배지에서 / 박한규

 

 

728x90

 

 

페이크 / 이진희

 

 

달콤한 말만 선물로 받을 거야

달콤하다면 뭐든 좋아

 

커다란 리본을 달아 줘

커다란 선물을 넣어 줘

커다란 상자에 넣어 줘

커다란 꽃다발과 함께

커다란 케이크를 만들어 줘

 

나는 부서지기 쉬운 불멸의 거울

소중한 보석으로 다뤄 줘

언제 무슨 일이 벌어졌든 나를 달래 줘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나를 받아 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노래를 불러 줘

꿈속에서도 반짝일 만큼 재생해 줘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믿음과 의심이 동시에 깊었다는 거

단 하나의 마음을 모두에게 무한수열처럼 나열했다는 거

 

나는 진실만을 말하지 물론

맹세할 수 있어 이까짓 거짓말

내 앞의 당신은 달콤해야 하니까

당신 앞에선 달콤한 말만 선물할 거니까

 

커다란 리본을 달아서

커다란 선물을 넣어서

커다란 상자에 넣어서

커다란 꽃다발과 함께

커다란 페이크를 만들어 줄 테야

 

줄게, 나를 달콤하게만 대해 준다면

당신을 최고라고 느끼게 해 줄게

쓰디쓴 것도 달콤하게 만들어 줄게

 

 

 

페이크

 

nefing.com

 

 

[심사평]

 

13회 오장환 문학상 본심 심사는 각 지역에서 신망 받는 작가들의 추천에 의해 13명 시인들의 시집들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본심 심사위원들은 일차 모임 후 그 시집들을 숙독한 후 다시 만나되 최종적으로 각기 두 권의 시집을 추천, 그 추천 시집을 대상으로 본심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 정기복의 나라꽃이 내게 이르기를, 김형수의 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황규관의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박경희의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이진희의 페이크5권의 시집들을 최종 심사의 논의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먼저 정기복의 경우, 한낱 기행이나 산행시가 아니라 자신과 정직하게 대결하는 체취體臭가 감동을 안겨줬다. 또 황규관의 경우 전망 부재의 시대 속에서 문명사적 대결의지가 돋보여쓰며, 김형수의 경우 지난 시대의 열망의 좌절과 개인사적 슬픔의 변주가 곡진하게 다가왔다. 특히 수상작과 최종까지 겨룬 박경희의 경우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의 슬픔과 아픔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솜씨가 일정한 경지에 이뤘다고 보았다. 수상자를 비롯한 모든 시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축하의 꽃다발을 전한다.

 

 

 

실비아 수수께끼

 

nefing.com

 

 

보은군과 계간 '영화가 있는 문학의 오늘', 솔출판사, 오장환문학상 운영위원회가 공동주관한 '13회 오장환문학상', '9회 오장환신인문학상' 당선자가 선정됐다.

 

5일 군에 따르면 '13회 오장환문학상'에는 이진희(48) 시인의 시집 '페이크', '9회 오장환신인문학상'에는 정민식(30)씨의 '디아스포라'가 뽑혔다.

 

이번 오장환문학상의 심사는 임동확 시인, 오봉옥 시인, 이성혁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수상 시집인 '페이크'에 대해 "오장환의 시대정신과 세계 인식을 되살리는 역설적 인식을 통해 현실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깊은 움직임을 보여주는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진희 시인에 대해 "이진희 시인의 시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역설적 세계인식은 단지 수사적이고 장식적인 것이 아니며 미증유의 고통에 시달리는 인간과 세계의 역동적 실재를 포착하려는 고투를 포함한다"면서 "무엇보다도 그럼으로써 주관과 객관, 물질과 정신, 자기와 타자를 궁극적으로 화해시키고 조화시키려는 노력과 일치한다"고 평했다.

 

오장환 신인문학상의 심사는 권성우 문학평론가와 안현미 시인이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당선작 '디아스포라' 등의 시편들은 오장환의 문학 세계에 잘 부합하는 시세계를 보여준다. 오장환의 시대의식과 역사의식이 살아 있는 동시에 이를 세련된 문학적 언어 형식으로 풀어냈다""개성적인 다섯 시편이 모두 고른 수준을 지녀 시인으로서의 미래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예감하게 한다"고 평가했다.

 

오장환문학상 수상자인 이진희 시인은 1972년 제주 중문 출생으로 2006년 계간·문학수첩 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시집으로 '실비아 수수께끼', '페이크'가 있다.

 

신인문학상 수상자인 정민식 씨는 1990년 경기도 광명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대부분을 수원에서 보냈다.

 

한편 '오장환문학상'은 보은군 회인면에서 출생해 한국 아방가르드 시단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오장환(19181951) 시인을 기리기 위해 2008년 제정됐다.

 

728x90

 

 

올해 오장환문학상 수상자로 육근상(59) 시인이 선정됐다.

 

문학상 심사로는 처음 SNS 독자 참여가 이뤄져 화제가 됐던 오장환문학상의 제12회 수상자로 육 시인이 선정됐다고 9일 솔출판사가 발표했다. 수상 시집은 지난해 발간된 <우술 필담(雨述筆談)>이며 상금은 1천만 원이다.

 

심사위원단은 “<우술 필담>은 오장환의 시 정신을 환기하면서 시류에 편승하지 않은 독특한 시적 성취를 이룬 시집”이라며 “광포한 서치라이트에 섬세한 사물의 빛들이 죽어가는 난폭한 시대에 육근상의 시는 우리의 눈앞에 반딧불을 현시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로컬을 통하여 진정한 가치를 발굴하려는 시적 고고학은 폐허의 현대에서 미미하나마 밝아오는 생명의 푸른빛을 찾는 희망의 기획에 속한다”며 육 시인과 그의 시를 높이 평가했다.

 

육근상 시인은 여기에 대해 “남들처럼 보기 좋고 입에 혀 같은 소리 제쳐두고 어눌하고 느려터지고 의뭉스럽기만 한 충청도 방언으로 씌어져 저걸 어따 써먹어 고민이던 시집 <우술 필담>을 끝까지 읽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며 수상소감을 전했다.

 

제8회 오장환신인문학상(상금 500만 원) 수상자로는 이신율리(60, 본명 이병애) 시인이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은 “통통 튀는 감각으로 무장한 자유로운 상상력은 우리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며 “무엇보다 자신만의 리듬을 통해 그 상상력에 생기를 불어넣는 점은 그의 시가 지닌 큰 장점”이라고 신인문학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상식은 오장환문학제가 열리는 오는 18일 충북 보은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열린다.

 

 

 

 

우술 필담

 

nefing.com

 

 

 

[심사평]

 

시는 개별 발화이므로 단독자인 시인의 특이성을 발휘한다. 무엇보다 그에 상응하는 언어의 구체성이 관건이다. 최근의 시적 경향에서 경험이 줄어들고 조사(措辭)가 전면화하는 현상이 많아졌다. 새로움을 언어의 쇄신에 기대거나 관념을 언어 놀이로 풀어가는 시인들이 늘었다. 그만큼 시가 날로 추상화된 삶을 뒤따르고 있는 셈이다. 물론 경험적 사실에 그대로 매달리는 일로 시작의 과정을 대신할 수 없다. 그에 상응하는 시어와 리듬을 포획하는 일이 요긴하다.

 

12회 오장환문학상 후보로 추천된 시집들을 접하면서 무엇보다 삶과 사유의 구체적인 발현을 주목할 수 있었다. 경험적 진실과 의식의 진정성을 좇아가는 표정들이 뚜렷했다. 새로운 생각을 추구하면서 그에 적합한 언어를 얻으려는 몸짓이 선연했고 노동과 나날의 삶을 통하여 사람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이 감동을 주었다. 상처의 기억에 곡진하게 다가가면서 타자의 고통에 연대하는 숭고한 마음을 뜨겁게 만날 수 있었다. 타자와 장소와 삶이 어우러진 이야기들을 바로 이 시간으로 불러내거나 그에 생생한 리듬을 더하여 읽는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준 시편이 많았다. 그 우열을 가늠하기 어려운 다섯 권의 본심 대상 시집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행복한 고민을 거듭하였다. 물론 이 상이 자리한 터의 취지에 맞고 그 정신을 계승할 시인의 시집이면 좋겠다는 전제를 달았다. 더불어 이미 다른 자리에서 좋은 평가를 받거나 영예를 얻은 이들이 양해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누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세 권의 시집을 두고서 토론 끝에 심사위원들은 육근상의 우술필담을 제12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결정하였다.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하여 사는 고장의 장소에 담긴 내력과 삶의 애환을 노래하였다. 단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시인은 장소의 혼을 말하려 했다. 구체적인 삶의 언어를 발굴하였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진실한 표정을 그리려 했다. 상응하는 말을 얻어서 이야기와 리듬을 함께 어울리게 하였다. 멀리 백석과 가까이 고은 등이 보인 시적 전통을 쇄신하였다. 광포한 서치라이트에 섬세한 사물의 빛들이 죽어가는 난폭한 시대에 육근상의 시는 우리의 눈앞에 반딧불을 현시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로컬을 통하여 진정한 가치를 발굴하려는 시적 고고학은 폐허의 현대에서 미미하나 밝아 오는 생명의 푸른빛을 찾는 희망의 기획에 속한다. 현대시는 어떻게 현대를 말할 것인가의 문제보다 어떻게 현대를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에 더 열중해야 한다. 육근상은 스스로 애써 찾아낸 로컬리티를 이러한 시적 과업의 목록에 더하였다.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그가 발로써 걷고 손으로 받아 적은 몸의 시편들이 가진 의미를 우리는 높게 평가한다. 수상을 계기로 그의 돌올하고 특이한 개성이 지속하면서 더 큰 성취로 나타나길 기대하는 마음이다.

 

- 본심 심사위원: 이상국 구모룡 오봉옥

 

 

728x90

 

[대상] 강치야, 강치야 / 김석인

 

 

1

 

해 지면 달이 드고 꽃 지면 별 뜨는데

 

너 떠난 동해에 파도 소리 소복하고

 

독도는 내 삶의 부력 밀어 올린 꽃대다

 

 

2

 

강치야, 내 새끼 강치야 말해 줄래, 너 있는 곳

 

물그림자만 비쳐도 너인 줄만 여겼는데 너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느냐, 용모가 수려해서 한울님이 데려갔니, 몸매가 날렵해서 용왕님이 데려갔니, 아니야, 아니야 아무래도 그건 아냐, 이웃 나라 도적들이 느닷없이 나타나 화승총을 쏘아대며 그물을 던졌겠지, 비단 같은 네 살결에 눈알이 획 돌아서 이 넓은 바닷속을 샅샅이 뒤졌겠지...... 아! 네 흔적 찾으려고 기름진 배에 걸린 허리띠도 살펴보고 발에서 번쩍이는 구두까지 훏었는데

 

너 찾아 껌벅이는 눈 머물 곳이 없더라

 

 

3

 

아비는 종의 핏줄, 어미는 위안부 출신

 

바람을 막기에는 팔다리가 너무 짧아

 

바위에 납작 엎드려 해국만 피워댔지

 

 

4

 

강치야, 내 새끼 강치야 들어볼래, 엄마의 말

 

미안하다, 마안하다. 모든 게 내 탓이다 꼭꼭 숨어서 잡히지 않아야 했는데, 잡히더라도 끝까지 버텼어야 했는데, 버티지 못할 거면 차라리 꽃잎처럼 지고 말 것을.

...... 아니다, 아니다 내 탓이다 아니다 잡혀가지 않았다면 우리 집은 온전했을까, 무작정 버텼다면 성한 곳이 있었을까, 활짝 피지 못하고 꽃망울로 졌었다면 내 부모님 상심은 또 얼마나 컸을까.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삶 여기까지 끌고 왔다

 

 

 

5

 

울 없고

담이 없어

어디든 갈 수 있어도

 

가족으로 맺어진

네가 있고 내가 있어

 

다시금

퍼덕대고 싶다,

동해의 심장에서

 

 

6

 

강치야, 우리 강치야 파도 너머 하늘 보자

 

떠도는 저 구름도 돌아갈 집이 있고 손꼽아 기다리는 가족이 있을 테지, 더운 밥 묻어 놓은 구들장 아랫목엔 된장국 같은 얘기 보골보골 끓을 테지, 또렷한 눈빛들이 오손도손 앉은 자리 목이 긴 한숨들이 슬금슬금 빠져나가고 해말간 웃음소리 등불처럼 펴 오르면

 

멸문의 빗장을 열고 네가 들어설지 몰라

 

 

7

 

파도가 지운 이야기 파도로 다시 쓴다

 

해조음 불러 모아 너의 자취 물어보며

 

독도는 동해를 펼치고

 

서사시를 쓰고 있다.

 

 

 

[당선소감] "독도 주인 강치의 눈빛 외면하지 않은 심사위원께 감사"

"여보, 우리 강치 어떻게 됐어?" "글쎄, 아직은…."

느닷없이 툭 던지는 아내의 말에 말끝을 흐렸다. 독도문예대전 응모작을 퇴고하는 과정을 지켜본 아내가 몹시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내의 입에서 '강치'라는 말이 이렇게 쉽게 나올 줄 몰랐다. 이쯤이면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사실 아내는 강치를 잘 몰랐다. 그냥 물고기의 일종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독도문예대전 때문에 강치에 대해 대강 알게 된 것이다.

바다사자의 일종인 강치는 독도를 무대로 수만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일본인의 무자비한 포획으로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을. 이 강치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속에서부터 살아서 꿈틀거려야 한다는 것을.

강치는 독도의 주인이었다. 주인이 떠난 그곳은 파도소리 소복하고, 멍만 퍼렇게 들고 있다. 독도는 위안부 문제와 함께 첨예한 한일관계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뒤틀려버린 한국의 근현대사는 다시 풀어야 할 숙제다. 우리 민족의 정형시인 시조를 통해서 그 실마리를 찾는 몸짓을 해본다. 파도가 지운 이야기 파도로 다시 쓰기 위해.

강치의 눈빛을 외면하지 않고 위안부의 하소연에 귀 기울여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독도문예대전 관계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애드픽 지식마켓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특선] 우데기 / 김현숙

 

나리분지를 갔을 때 당귀잎이 손바닥처럼 자라고 있었다

겨울에 내린 강설량으로 키워낸 토양의 힘은 당귀의 향을 힘껏 뿜어냈다

 

성인봉 아래 유일한 평지에 눈이 내리면

집의 기둥과 서까래와 대들보는 눈바람에 떤다

뼈대와 근육을 둘러싼 살은 갈대 풀이다

 

사람들은 겨울이 오면 꼼짝없이 갇히고 만다

그것이 울릉도에 사는 이유가 된다

 

길에는 사람 키보다 더 높은 눈이 쌓여있고

지붕 위엔 하얀 크레파스를 칠한 듯이 눈이 쌓인 방 안에선

온 가족이 오순도순 겨울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눈 내린 산으로 가서 노루도 몰고 덫을 놓아 토끼도 잡고 싸이나로 꿩을 잡고 산비둘기도 잡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우데기에 매달린 기다란 고드름이 햇살에 뚝뚝 녹아내린다

곧 해풍이 봄을 데리고 오려나 보다

 

 

 

<재>독도재단과 영남일보가 주최하고 한국예총 경북도연합회가 주관한 '제10회 대한민국 독도 문예대전'에서 일반부 시 부문에 응모한 김석인씨(김천)의 작품 '강치야, 강치야'가 대상으로 선정됐다. 일반부 서예 부문에서는 문재환씨(대구)의 작품 '을지문덕 장군시'가 대상으로 뽑혔다. 사진·동영상 부문 대상은 박용득씨(구미)의 '독도의 아침'이 차지했다.

청소년부에서는 문학 부문의 정세희양(세인고2), 미술 부문의 박준표군(인천 박문초등5)이 각각 대상을 받았다.

일반부 최우수상은 고미선씨(제주·문학), 한형학씨(의성·미술), 허미숙씨(포항·사진)에게 돌아갔다.

청소년부 최우수상은 미술 부문 이지홍(경북예고2)·김홍주(아양초6), 문학 부문 홍성준(천안북중3)·윤서윤(동지여고3)이 각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번 제10회 독도문예대전에는 총 3천199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이 중 일반부에서 대상 3명·최우수상 3명·우수상 4명·특별상 14명·특선 93명·입선 164명이 선정됐다. 청소년부에서는 대상 2명·최우수상 4명·우수상 6명·특별상 14명·특선 160명·입선 563명이다. 총 입상자는 1천30명(일반부 281명, 청소년부 749명)에 이른다. 시상식은 오는 9월17일 오후 5시 경북도청 1층 다목적 강당에서 열린다.

 

 

728x90

 

 

[장원] 지나가는 것 / 박다은

 

 

흰 양말을 신고

기차에 탄다

 

신발을 벗지 않을 예정이기에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을 것을 안다

 

사람들은 어디에도 꺼내놓지 않을 흰 마음과 흰 계란을 준비하여 의자에 앉는다

 

저 안에 노른자가 있을까

저 마음에도 노란 꽃 한 송이 있을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의자는 달음박질치는 풍경만 바라보는데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떤 아이가 한쪽 다리를 꼿꼿이 세운 백로들 사이로 달려가고 어떤 언니가 걸어가는 남자들 앞으로 달려가고 어떤 공룡이 가까워지는 소행성을 등지고 달려간다

 

마지막에 우린 어떻게 되지?

 

흰 양말을 벗지 않으면

흰 양말인 채로 죽게 되겠지

 

유리창은 굉음을 지르고 난동을 피우지만 무릎들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홀로 살아남은 아이와 언니와 공룡의 결말을 확인하지 못한 채로 기차는 멈추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세상에 도착한다

 

외투를 벗지 않을 예정이므로

흰 마음을 숨기고

 

지나간다 서로를

 

 

 

 

 

 

 

[우수상] 달리기 / 김현진

 

 

바람이 구멍 난 나뭇잎사귀 곁을 지날 때마다

잎맥을 갉아먹던 애벌레가

나뭇결 같은 갈색 주머니 안에서 흔들리며 꿈을 꾼다.

 

그 곁으로

사소한 발길질에도 구르는 돌멩이처럼

그녀의 구부린 등허리가

꺾어진 그늘을 이루며 언덕을 오르고

숨소리마저 햇살의 거미줄에 사로잡혀 소거되는 오후,

 

길 위를 지나는 분주하고 소란한 세상의 소리를 등지고

달팽이 같은 그녀가 손수레를 머리에 이고 느린 보폭으로 기어가고

그녀의 그림자가 달팽이 진액처럼 달라붙은 길에는 땅거미가 기어오른다.

 

가스비를 종이박스 무게로 물물교환하는 초인류가

멍이 든 뼈들을 따뜻하게 녹여 줄 하루 동안의 잠을 위하여 사족보행을 감행하는데

그녀의 구공탄 같은 날들이

나무공이 속에서 겨울채비를 시작한 애벌레의 고치들처럼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도 않는 꿈을 꾸었으면,

 

펴지지 않는 생의 분절들을

땔감으로 모으는 굽은 손등 위로

위로처럼 흔들며 지나는 바람을 향하여

 

어깨가 짓무르고 등허리가 내려앉은

그녀가

빈 수레로 돌아가는 하얀 길 위로

허기진 비둘기들이 눈알을 굴리며

그녀의 그림자를 쪼아댄다.

 

느리고 지루한 한 생애가

부리에 해체되어

날아오르듯 언덕 위를

바람처럼 달리며 굴러가고 있었다.

 

 

 

 

 

[장려상] 눈사람의 갈리기 / 김윤희

[장려상] 머리카락 / 이미순

[장려상] 머리카락 / 장정순

[입선] 머리카락의 사유 / 김미향

[입선] 달과 별의 이발소 / 김현주

[입선] 구멍 뚫린 자루 / 이성순

[입선] 섬이 두 발로 걸어온다면 물 한 잔 건네겠어요 / 이수연

[입선] 달리기 / 이초롱

 



728x90

 

네가 봄이런가 / 이찬영

 

안, 우리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나서

나는 지구에서 제일 따듯한 곳으로 떠나고 싶었어

 

세계지도를 장만했지

지도의 생김새는 각국마다 다르다는 걸 알았다

서로가 가운데 있었으니까

 

우리는 도시 외곽의 허름한 모텔에서 하루를 보낸 적 있다

그날이 이별여행이 될 줄도 모르고

 

안녕

안녕

 

*

 

아침부터 고속버스에 올랐지 각자 예매한 자리에 앉아 바깥을 보고 있었는데, 바라보면 무덤이 있었고, 그 무덤에는 누가 묻혀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무덤 위로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

잡초를 핥고 있는 뜨거운 햇살

우리는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선 이내 잠에 들었다

 

어떤 꿈을 꿨던 것 같은데

 

*

 

우치동물원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펠리컨 앞에 서 있었어 한과 연이는 내 뒤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 너와 펠리컨이 닮았어 누가 우리에 갇혀 있는지 모를 정도야 우리는 한참 웃었다 웃다 보면 노을이 가라앉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울려 퍼지는 새 울음소리

 

펠리컨을 곧잘 따라했지 날개를 일제히 펼치는 자세를 펠리컨의 울음소리를 우리에 갇혀 있는 펠리컨의 모습을

 

폐장할 때까지 우리는

거기에 있었다

 

*

 

그날 밤, 허름한 모텔 방을 잡았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자부해서 할 말이 없었는데, 창밖으로 들리는 개구리 울음소리 멀찍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우리 유년시절을 이야기하자. 각자 학대를 당했던 자신의 유년시절을 고백했다. 모두 자기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내 아빠는 죽었어. 우리 엄마는 집에서 도망갔어. 정말? 정말 바람피우는 걸 직접 보기도 했어

 

벽지를 뜯었지

뜯을수록 벗겨지는 속마음이 있으니깐

 

우리는 가정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걸까

가정의 가운데에서 멀어져

본 것들은

무덤, 우리에 갇힌 펠리컨, 서로의 얼굴들

 

유년시절을 무슨 자랑처럼 말하고 있었는데

 

안, 그래서 너는 유년시절을 봄으로 정의하자고 했잖아

 

웃으면서 말할 수 있으면 따듯한 거라고

우리의 유년시절은 너무나 비슷해서 서로가 될 수도 있는데

 

박수쳤어 울고 싶지 않아서 박수만 쳤어

 

내 유년시절을 따듯하다고

말할 수 있구나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안녕

안녕

 

먼지 낀 창가 위로 그믐이 가라앉고 있었다

따듯하게 살자는 말만 하염없이 하다가

우리는 헤어졌다

 

각자의 가정으로 흩어져

다시는 서로를 생각하지 않기로 해요

 

*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무덤이 연속적으로 보인다

 

눈 감으면

그날 꿨던 꿈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하고

*

 

페인트 통을 엎지르고 부르는 모순적인 봄

 

*

 

갈기갈기 찢은 세계지도가 흩어져 있다

 

방 안으로 반쪽짜리 햇빛이 든다

서늘하게

지구 가운데에 있는 그 5평짜리 허름한 모텔1)

 

우리가 함께 있던 그곳이 봄이런가,

 

 

 

728x90

 

 

봄밤 외 2/ 고순용

 

마당 한가운데 떡시루처럼 앉아 있는 연못

연못은 세상을 읽어내는 거울이다

 

바닥에 쌓인 세월을 딛고 선 무량수 한 그루

봄밤 같은 수면에 생가 지붕이 내려와 기지개를 켜고

처마끝 바람소리 하늘을 날아 오른다

 

마당 뒤편 생강나무가

연못으로 풍덩 - 뛰어 들면

바람이 수면 속 풍경화를 흔들어

별이 빛나는 밤*처럼 추상화를 만들기도 하지만

천년 세월 삼라만상을 해학으로 담아내는 그 익살, 그 천진

 

천심이 피워내는 실레마을 이야기꽃

반야바라밀을 간직한 연못처럼

소리 없이 번지는 바람이 적막을 조율하듯

연못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없는 종소리에

봄밤이 큰 산을 흔들고 있다

 

* 晩年의 고흐가 요양원에서 그린 추상화 대표작

 

 

 

연기에 그을린 얼굴 하나

아궁이 앞에 앉아 거친 숨 몰아 쉰다

 

아궁이 위에서 제 몸 벌겋게 달아오를 때

아버지의 땀방울과 함께 알곡이 익어간다

 

숱한 낮과 밤

들판을 뜨겁게 달구던 햇볕과 비바람,

땅속에서 길어 올린 흙의 기억들,

아버지의 땀과 눈물이

쇠죽 끓이는 솥에서 한데 끓었다

 

솥단지 켜켜이 삭아 내리듯 깊게 패인 아버지의 주름살

골짜기 같은 주름이 지도록 아버지 땀방울 먹고 자란 나는

아직 생각이 어리다

 

지게의 세월에 어깨가 무너져 내리고

새우등으로 굽은 아버지의 등허리

천근 돌덩이가 되어 내 가슴에 박힌다

 

아버지 떠나신 빈 들판

가마솥 같은 얼굴 하나 붉은 노을로 타 오른다

 

 

 

5월의 산골작이

 

금병산 동백꽃잎 울컥 지던 날

뿔 잘린 사슴이 된 나는 긴 목울음 삼킨다

죽어서도 다시 만나는 전생의 그 얼굴

산 그림자로 길게 내려와 나를 반긴다

당신은 어둠의 골짜기마다 큰 별로 떠서

열 길 스무 길 산길은 아득한데

골 깊던 실레마을은 당신 이름으로 환하다

꿈결에서 산길에서 당신 얼굴 만나고 온 날

안개 같은 전설이 생강나무 꽃가지 사이로

내 가슴 알싸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이야기마을 실레마을이 당신 이름으로 출렁거리는 5월이면

나는 알싸하게 내가 아프다

 

 

 

[수상소감]

연일 찌는 듯한 폭염과 열대야로 가마솥 같은 여름이었습니다. 견디기 힘든 더위였지만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한가운데서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셨던 김유정 소설가의 시련에는 비할 바가 아니겠지요. 작품 속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우리말의 아름다운 표현들은 시작(詩作)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늦게 시작한 시 공부, 금병산 자락에 활짝 핀 동백꽃을 등대 삼아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힘찬 항해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졸시에 날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더 정진하라는 가르침으로 새기겠습니다. 이영춘 선생님과 한림대 평생교육원 시창작반 문우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심사평]

중등부=전래적인 이미지의 시제(詩題)가 적지 않음에도 그에 맞는 시상을 무리 없게 전개하고 가다듬는 노력들이 엿보인다. 시적 구성의 통일성, 사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좀 더 세심하게 기울이기 바란다.

고등부=시를 쓰면서 스스로 되돌아볼 점은 지나친 형상화나 상상의 비약을 조심해야 한다. 대상이 갖고 있는 그림자는 시를 쓰는 사람이 빛을 어떤 방향에서 조명하느냐에 달렸다.

대학·일반부=이번에 응모한 시의 대부분은 시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 시가 추구하는 예술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는 근본적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수상의 영예를 안은 작품들은 시로서의 기본적 요건을 갖추는 데 상당히 접근해 있다는 평을 전할 수 있다.

- 심사위원 최현순(중등부), 최계선(고등부), 박민수(대학·일반부)

 

 

창간 73주년을 맞은 강원일보와 ()김유정기념사업회(이사장:김금분)가 공동으로 주최한 `25회 김유정 기억하기 전국문예작품 공모'에서 고순용(춘천·운문), 김지수(서강대 산문)씨가 대학·일반부 대상 수상자에 선정됐다.

공모전 심사위원회는 지난 25일 김유정문학촌 낭만누리에서 열린 부문별 심사위원회를 통해 운문 중·고등부 대상에 권은하(안산 고잔고 3), 임동현(서울 개운중 이상 운문) 학생, 산문 중·고등부 대상에 최진아(유봉여고 3), 방성은(문산중 이상 산문) 학생을 선정하는 등 모두 30명의 입상자를 최종 결정했다.

이번 공모전에는 596명이 996(운문 684·산문 312)의 작품을 응모했다. 한편 시상식은 `2018 김유정문학제' 기간인 1014일 김유정문학촌 야외무대에서 열린다.

 

 

728x90

 

오월의 산골짜기 / 이선행


흐르는 계곡물소리에 뒤꿈치가 젖는다

손을 담글까
발을 담글까
물보라가 가슴에 인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물에도 손이 있다
돌을 만지는 손, 송사리를 만지는 손
물의 손이 내 손을 잡아준다


청어 가시 같은 물무늬도 한없이 부드럽다
가파른 물살에
모래알의 목소리는 가늘어지고
물살을 떠받치는 돌멩이는 둥글어진다.

저 손이
산골짜기 풀꽃의 맨발을 씻기고
허둥대는 바람의 손목을 잡아준다는 걸
송사리 떼 졸린 눈을 뜨게 하리란 걸

숲은 그늘을 이어 붙이고
물살의 맥박이 빨라진다
계곡물의 속도에
산 그림자도 게으른 몸을 일으킨다

 

 

(사)김유정기념사업회(이사장:전상국)와 강원일보사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24회 김유정 기억하기 전국문예작품 공모(이하 전국문예작품 공모)'에서 최성진(서울 용산구·산문)씨와 이선행(서울 동작구·운문)씨가 대학·일반부 대상 수상자에 선정됐다.

심사위원회는 지난 21일 춘천 김유정문학촌 낭만누리에서 부문별 심사회의를 열고 접수된 1,682편(989명 응모)의 작품 중 김서영(서울여중 3·산문), 김태연(경남여고 3·〃), 안준서(향남고 3·운문), 서유진(병점중 2·〃)의 응모작을 중·고등부 부문별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등 모두 30명의 입상자를 최종 결정했다.

시상식은 다음 달 19일 `2017 김유정문학제 봄·봄'이 열리는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문학촌 야외무대에서 열린다.

 

 

728x90

 

동백꽃 / 이현숙

 

저 꽁꽁 얼은 구들장을 누가 녹일 수 있을까요

 

동백나무엔 성냥들이 봄볕에 달궈지고 있나봐요

 

달의 귀퉁이가 개구리 울음에 깎이는 저녁

북풍을 입에 문 것들은

물이 새는 너와집에서 살 수 없다고 해요

 

까마득한 절벽 밑에서 동박새가 날고 있어요

연신 풀무를 돌리는 건,

동백꽃 피는 소리가 아닌 저 개구리울음이니까요

땅 속에서 봄볕이 훨훨 타 올랐지요

 

발광하는 건 아지랑이예요

그 아지랑이를 좇아 눈을 뜨는 물고기도 있어요

동백꽃 밑의 새벽을 딛고 오는 돌문어도 있어요

 

봄볕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요

그때 붉다 못해 까맣게 타서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낙조도 있어요

 

봄눈 잠깐씩 몰아쳤지만요

챙챙 성냥불 켜는 소리가 동백꽃 속에서 새어나왔어요

목숨 가진 것들 한 무더기가 쏟아지는 저녁이네요

 

 

[심사평] “진솔하게 시를 끌고 가는 솜씨 돋보여

중등부 대상(·) 작품은 할머니의 열 손가락 위에 피는 자식, 손주의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저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가느다란 손가락에 얹혀진 자식이라는 짐을 결코 무겁거나 고통스럽지 않게 승화시킨 손녀딸의 마음씨가 그대로 또 봄이다. 고등부는 김태의의 작품을 대상으로 뽑는다. 시를 끌고 가는 솜씨가 범상치 않다. 잔잔하고 진솔된 문체들이 그가 그동안 점해온 습작시간들을 느끼게 해준다.

대학·일반부 대상작 이현숙의 `동백꽃'은 언어의 참신함을 넘어서는 수작이다. “달의 귀퉁이가 개구리 울음에 깍이는 저녁이라거나 그 아지랑이를 좇아 눈을 뜨는 물고기도 있어요라는 표현을 보라. 수일(秀逸·빼어나게 우수하다)하다.

- 심사위원 김금분(중등부) 최계선(고등부) 박용하(대학·일반부)

 

 

728x90

 

야앵(夜櫻) / 조정완

 

어린 안구에만 상이 맺히는 벌레를 안다

나는 매일 밤마다 벌레를 잡으러 뛰어다녔고

엄마가 알지 못하는 건 모두 병이었다

매일 밤이 눈부시다는 걸 비밀로 했고

점점 방문을 닫아두기 시작했다

틈, 이 싹을 틔웠다

 

초콜릿 통에 넣어둔 알약

밤이면,

오래도록 녹여 먹었다

내 책상은 언제나 빛났고

사방에서 손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엄마

아픈 사람은 쉽게 죽는 거죠,

 

옥상 난간에 내 머리를 올려두고 혼자 제사를 지냈다

발끝을 세우고 팔을 휘저으면

가벼워진다

떨어져 나간 나는 자라고 자라

벌써 나무가 되어버렸다

나를 가둔 단단한 껍질은 누구인가

 

떨어지는 것은 모두 봄

또,

밤이다

 

 

 

728x90

 

슬픈 이야기 / 이승혜



우리는 늘 아득한 행성과 행성으로 만난다
접점 없는 궤도를 따라 어둠을 밟는다

아버지는 우리가 모두 숨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잠갔고
어머니는 내 옷의 단추를 모두 잠가주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


아버지들이 고요한 와지를 찾아 헤맬 때에도
어머니들은 밀어가 빼곡한 벽들을 달마다 허물어 내렸다
비밀에 대한 두려움이 비밀을 감춘다
허물지 못한 담장 아래서 왜 우리는 하나같이 악을 쓰며 울었을까

그래서 하루는 잠금쇠와 단추에 대해 물었다
너는 대답을 위해 입술을 누르는 인중을 견뎠다
침묵 사이로 아뜩하게 멀어질 때에야 말없는 속삭임을 들었다

 

우리는 행성과 행성이 만나는 순간을 충돌이라 부른다

728x90

 

솥 / 유영찬

 

어머니가 도토리묵을 쑤고 있다
시뻘건 불씨가 일 때마다
뜨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탁, 탁, 타다닥
시퍼런 멍이 들도록 자신을 태우고 있었다
제 몸에 맞는 색깔의
열기를 온몸으로 흡수하면서
휘몰이 장단의 가락이 지나는 자리마다
한 웅큼의 소금이 채워졌다
어머니의 불거진 힘줄이
쉼 없이 물레를 돌려
들끓는 울음을 잠재우면
도토리묵이 탱탱하게 익어갔다
간혹 응어리진 불씨로 이마를 짚으며
지난날을 되새김질하고
씹고 또 씹은 것을 입 안 가득 넣어준다
그럴 때마다 기울어진 주춧돌이 제 몸을 세우고
달빛 숨결이 수북하게 집 안으로 내려앉았다
담금질한 몸으로 배어든 곧은 천성이
대청마루에 스며들고
가족의 얼굴에서는 윤이 났다
그 뒤를 따라서 길이 조금씩 트이고 있다
아궁이에는 바람 한 점 없고
솥단지의 붉은 심장이 남아
찰져가는 제 새끼들을 보듬으며
연신 불꽃을 일으키고 있다.

728x90

 

봄밤 / 유은주

벚꽃 흐드러진 자리가 난무한 밥알 같다
잘 차려진 밥상을 뒤엎던
어떤 사내의 패기처럼
바람이 주섬주섬 어질러진 찬들을
갈무리하던 아낙같이 한 곳으로 모으고 있다
봄은 무엇에 성이 났던 것일까
한껏 잘 차려 향기롭게 뽑아 올리더니
와라락
한 달음에 쓸어 버린다
꽃잎은 대지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계절 속으로 사라진다
그때 그 아낙도 그랬을 것이다
깨진 사기 그릇에 베어나온 꽃잎같은 피가
제 아픔을 다 가져갈 것이라고
눈물을 훔쳐 세월 속에 묻어 두면서
아낙은 또 밥을 지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내게로 오려니…
기다림의 밥이 아랫목에서
이불을 덮고 밤을 지새듯
봄밤은 깊어 떨어진 꽃잎자리 내내 뜨겁다.

 

 

 

 

 

 

 

728x90

 

가을 / 준용

 

툭툭툭, 탁탁탁탁, 도르르탁 도르르탁,
가을걷이에 쿵덕거리는 실레마을 심장 소리다
해거름에 매를 맞는 바싹 마른 들깨
그 깨알들이 태어나는 울음소리다
여기저기 아낙네들의 쉴 새 없는 몽둥이질
온 동네가 들썩거리고
땅을 쿵쿵 울리며 누군가를 불러내고 있다
시커멓게 멍들은 들깨 향
유정의 혼을 부르며 그들을 깨운다
춘호처를, 아내를 팔아먹은 복만이를, 저의 솥을 훔쳐간 근식이를,
응칠이와 응오를, 그리고 점순이와 `나'를.
그들이 어스름에 스믈스믈 깨어나기 시작하자
폐비닐 거두는 농부의 손끝이
괜스레 후들거린다
벌레들이 넘나드는 뽕잎 구멍 사이로
저녁 햇살이 잠시 수작질하는 사이
농부의 눈맞춤 먹고 통통히 살 오른 배추
그 곁에 잔뜩 움츠린 조막만 한 애호박
벌거벗고 덤불 사이에 누운 앙상한 폐건물까지
늦가을 이 저녁 실레마을은
밀레의 명작으로 채색되고 있다
저녁 해를 삼켜 버린 농부와 아낙의 웃음소리에
유정과 그 군단들, 일제히 눈을 뜬다
뚜벅뚜벅 이야기 길 따라
코다리 주막으로 가는 군상들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나는 그를 유혹한다
휘청거리던 그 영혼 가만히 나의 팔짱을 끼고
금병산 보름달
빙그레, 주막 창문으로 들어서고 있다

오늘밤, 나는 그의 녹주다.

 


[수상소감]

나는 이 가을 잠시, 김유정의 연인 녹주다

작년 늦가을 실레 마을 들판은 들깨를 두들겨 터느라 온통 들썩거렸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저녁 노을빛 들판이 김유정을 깨우는 것 같았다. 나는 구석구석 깨어나는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초고를 잡았다. 그리고 계속 퇴고를 하면서 김유정 작품 공모전에 꼭 내고 싶은 작품이구나 생각했다. 뽑아준 심사위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기쁨을 김유정 작가에게 바치고 싶다. 이 가을 잠시, 그의 진한 연인이 된 나는 정말 행복하다.

 
 

김유정기억하기 제18회 전국 문예작품공모에서 박정순(경기도 부천시·산문)씨와 준용(춘천시 동내면·)씨가 대학·일반부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강원일보사와 ()김유정기념사업회는 지난 7일 김유정문학촌에서 심사위원회를 열고 김혜수(서울 창문여고) 여희주(서울 장평중·이상 산문) 유병현(안양예고) 전현우(서울 장위중·이상 시) 등 부문별 대상자를 비롯해 모두 49명의 입상자를 발표했다.

시상식은 오는 22일 오후 4`2011 김유정 소설을 테마로 하는 삶의 체험' 행사가 열리는 김유정문학촌 행사장에서 개최된다.

대학·일반부

대 상 = 준용(춘천시 동내면)

우수상 = 박민례(대전광역시 중구)

장려상 = 신성자(춘천시 교동) 장서영(서울시 관악구) 김은혜(인천광역시 남동구) 신윤라(춘천시 후평3) 김영미(춘천시 퇴계동) 이광호(춘천시 우두동) 정성수(전주시 덕진구) 엄가현 (춘천시 후평3)

 
728x90

 

[대상] 봄봄 / 금시아

 

다행스럽다
벚꽃은 그녀를 기다려 주기나 한 듯
꽃잎을 날리며 반긴다

하회마을에 한 번 가보고 싶구나 하시던 어머니
한여름이서 안 되고
한겨울이어서 안 된다고 한 게 언제인지

참 좋구나.
벚꽃 길 꽃눈 맞으며 휠체어에 앉은 그녀
눈에 매달린 마음이 지친 몸속에서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린다.
고목에도 고가에도 그녀의 숨결이 날아가 앉는다.

턱 높은 정지의 무쇠솥에 묻은 꿈을 만지작거리고
담장 아래 새싹 따라 그녀의 설렘도 연둣빛으로 피어난다.
아버지 따라 시작하던 아득한 신혼길
팔대 독자 남편의 사랑과 시집살이의 한
그녀의 입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

부채 살처럼 퍼지는 햇살 아래
하회탈처럼
그녀가 웃고 있다.

 

 

[수상소감] 는 시간의 상처들

삶의 한순간을 툭 잘라내듯 여러 밤낮을 지새운 울음의 흔적을 툭 던져 놓고는 ` 대학생 해양영토 대장정' 1314일을 떠났다. 50세의 젊은 대학생으로. 14일 동안 두절된 통신망, 몇 번이나 휴대폰의 귓전을 두드리다 되돌아갔을 당선 소식, 많이 놀랐다. 시를 배운지, 2년여, 무엇이 나를 이토록 미치게 만드는가! 거기엔 내 잃어버린 시간과 준비해야 할 시간의 아픔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가 보다. 그 어떤 상처든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조금은 익숙해졌지만 아직은 조심스러울 뿐이다. 늦게라도 꿈을 꾸는 일이 생겼다는 것, 그 꿈을 위해 방송대 국문과 새내기가 된 것, 모든 것이 행운이고 행복이다.

 

[최우수상] 산골 나그네 / 김완수

 

 

키 재듯 산봉(山峯)마다 하늘까지 뻗디디고

외진 길 샘 부리며 굽이굽이 앙탈인 곳

점점이 앉은 인가(人家)만 나그네를 반기누나

 

차오르는 오르막길 풍진(風塵)이 붙들어도

나그네 굳은 심지 눈길 한 번 안 주는데

어디서 인정(人情)을 닮은 풍경(風磬) 소리 아련해라

 

지친 해도 집에 들어 빈 달만 새우는 밤

인가(人家)가 눈짓해도 나그네 맘 정갈하니

소쩍새 촉촉한 울음 산중 가득 스며드네

 

 

[심사평]

기교보다 진솔한 표현 높게 평가

시 중등부= 김유정 작품의 제목으로 공모한 이번 대회는 그 의미가 더욱 살아났다고 보인다.

동명의 작품이 탄생되는 과정에서 미래의 문학인과 김유정 작가의 후예가 예비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응모된 작품을 읽어가면서 작품의 선정 기준을 관념과 기교보다는 진솔한 표현과 정직한 사물 인식에 두었다. 대상을 받은 엄정현의 `'은 천연덕스러운 말투로 꾸밈없이 쓴 점을 높이 보았다. 그 점이 본인의 장점이며 개성이기도 하다.

현대사회의 다양한 심상 잘 표현

시 고등부= 진부하거나 고답적일 수 있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의 다양한 심상을 표현하고 있어 작품 공모의 뜻을 한층 밝게 해주었다. 특히 원성은의 `소낙비'는 전자기기 속에 갇혀 사는 현대인의 삶을 소나기에 견주어 잘 노래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응모작이 비슷한 생각의 범주를 다루고 있는데 창작의 기본을 생각하며 글쓰기에 정진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상상력 발휘 형상화하는 능력 탁월

■ 시 대학·일반부= 김유정 작가가 쓴 작품의 제목을 시의 제목으로 삼으면서도 원작품에 얽매이지 않고 독창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형상화하는 능력들이 뛰어났다. 대상은 상상력과 묘사력이 모두 뛰어났으며 최우수상 역시 시조로서 표현력과 묘사력, 서정성이 뛰어났다.

김유정 문학세계·정신에 닿아 있어

산문 대학·일반부= 김유정의 작품들의 제목을 취한다는 것 외에는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글쓰기가 허용되었다. 따라서 글의 내용이 김유정 문학세계나 문학성과 깊은 관련이 없는 점도 흥미로웠다. 쓰는 사람이 김유정 소설에 대한 관심과 접근성이 얼마만큼 이루어지고 있었는가 알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셈이다. 독후감이나 문학기행류의 글들은 배제하였다. 대상작이나 최우수작, 우수작으로 뽑힌 글들은 짧은 분량 안에 감칠맛 나는 문장과 가슴 찡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김유정 문학세계와 문학정신에 닿아 있다고 보았다.

- 심사위원 박민수 시인, 윤용선 시인, 김금분 시인

 

 

728x90

 

 

 

 

 

하단 링크를 누르시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애드픽 광고)

 

모란꽃 무늬 이불 속

 

nefing.com

 

728x90

 

 

 

 

 

하단 링크를 누르시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애드픽 광고)

 

단풍 콩잎 가족

 

nefing.com

 

728x90

 

디아스포라 / 정민식

- 헤로니모를 기억하며

 

희망도 한때는 가난했다

대궁 잘라낸 자리마다 흰 꿈이 배였다. 애니깽

선인장에 찔리고 긁히던 나의 살던 고향

 

돌아가야 할 곳에 몸 대신 쌀 한 숟갈 묻는다

밥그릇 속 똘똘 뭉친 한인의 밥심이

멕시코 만灣을 떠나왔지 낯선 난류가 익숙해지도록

 

다시 떠날 수 없었던 건

유목도 난민도 아니었기 때문이야

 

성공한 혁명 뒤에서 이민자였다가 슬픔이 되었다가

결국엔 장롱 속 오래된 사진첩 이름 석 자가 되었다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처럼 훗날을 재생할지라도

그래, 그건 우리의 뿌리에 관한 이야기

 

어쩌면 시대는 정신의 식민지일지도 모른다

고국이라는 고백만으로도 왈칵 쌀뜨물이 스민다

 

그러니 흩어진 쌀을 다시 한 톨 한 톨 모아

명부를 만들고 학교를 세우고 따끈한 밥을 짓는 거야

온 마을이 밥 짓는 냄새로 가득 찰 때까지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람이었어*

 

먼 나라 쿠바에서 꼬레아노 4세가 부르는 노래

지금은 반으로 접힌 나의 살던 고향, 숙연도 무색해질 만큼

 

돌아보지 말아 후회하지 말아

떠날 필요가 없었던 거야

 

* 노사연의 노래 <만남>은 쿠바의 한인 사회에서 세대를 거듭하여 불리고 있다.

 

 

 

 

[심사평]

 

올해로 아홉 번째 수상자를 배출하는 오장환 신인문학상 심사위원은 다음과 같은 심사기준을 적용하면서 심사에 임했다. 우선 언어의 밀도와 형식, 메시지의 설득력 등 전반적인 시적 완성도를 고려했다. 아울러 전위적인 미적 형식을 통해 현실 참여를 일구었던 오장환의 시적 성과에 부합되는 시편을 고르기 위해 노력했다.

 

투고작들은 전반적으로 전통적 서정시를 답습한 시편들이 많았으며 코로나19라는 시대 현실을 형상화한 시편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간혹 전위적이며 실험적인 응모작들도 발견되었으나, 꼼꼼한 검토를 통해, 결국 하태희의 시편 ( 건너편에서 나는 산책을 한다외 네 편)과 정민식의 시편 ( 디아스포라-헤로니모를 기억하며외 네 편)을 수상작 최종 후보로 놓고 고심한 심사위원들은 '오장환 신인문학상'이 단지 이 땅의 수많은 문학상 중의 하나가 아니라, 오장환 시인의 귀한 문학적 성과를 성공적으로 계승하는 뜻깊은 문학상이라는 점을 엄중한 마음으로 고려하면서, 정민식 씨를 수상자로 선정하기로 흔쾌한 마음으로 합의하였다.

 

수상자 정민식 씨가 그의 표현대로 쉽게 "번역될 수 없는 말들"에 부합되는 창의적인 시를 많이 써서, 한국시를 이끌어가는 시인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울러 아쉽게 오장환 신인문학상에 선정되지 못한 하태희 씨의 시편을 다른 기회를 통해 조만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728x90

 

결 / 송용탁

빈 도시락 통이 다리를 퉁퉁 칠 때면 무릎 근처에서 달그락 물결이 일었다. 학교 마른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길은 흐르고 나는 고인다. 이름 모를 꽃들이 내 이야기를 엿듣곤 했다.

결이란 말은 혼자서도 혼자가 아닌 마음

늘 골목 끝에 서 있던 엄마가 없다. 세상의 숨결이 겉잎을 버리는 시간. 혼자라는 속잎이 있다. 시시한 놀이가 거친 숨결을 달랜다. 견뎌야 하는 목록이 늘어날수록 숨은 여러 결로 쌓였고 숨을 내쉬기 힘든 무게가 있었다.

소실된 곳에 가면 세상은

나를 설득하고 싶은 모양이다

떠난 마음들이 사는 도래지가 있다고,

노을의 손을 잡고 뛰었다. 엄마의 살에서도 물결이 인다. 살의 결이 말을 걸어 올 때 길은 생이 아닌 다른 힘으로 걷게 된다. 엄마와 살이 닿으면 다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알았다. 나는 혼자가 아닌 것 같아 응결된 마음이 눈물처럼 흘렀다. 세상의 길이 붉게 일렁거렸다.

빈 도시락 통이 달그락달그락 계속 흘러갔다.

 

 

 

 

 

쿠팡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양장의 자세

 

 

과묵한 표지로 걷고 있었다

계절은 돌보지 않았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지구 한구석 풍화가 일어났다

바람만 이를 가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가을의 슬픈 버릇이었다

 

자전은 지구가 나를 읽는 방식

한동안 정독이었던 적도 있었다

견고한 발음으로 낮과 밤이 지나갔다

나를 닮은 표정들이 모였다

마른 책상 위에 쌍혀가고 있었다

외롭지 않다고 묵독을 해야 했다

 

- 초토의 흙은 검거나 붉거나

난독의 영역일거라

남의 꼬리털을 비명처럼 세우고

나의 이름을 적는다

경건한 필체가 나를 저장해 주기도 할 거라

잠시 우주도 심심해지는 순간

해는 점점 짧아져서

내 키도 줄어드는 가을이라고

끄덕끄덕 낯선 글자들이 방문을 했다

 

발췌의 기술로 상심한 속지를 더듬어 본다

아름다운 문장들은 허기진 페이지로 흘러갔다

나는 오늘도 부호로 끝난 몸짓이었다

 

흔들리는 자전의 공식들

산책을 떠난 나의 낱장들

 

결국 가을이었다

 

 

 

 

아무도 진화하지 않았다

 

 

나무속 아궁이에 불을 놓는다

 

굳은살로 굳은살을 씻던 손의 끝

 

눈이 모인다

물이 고인다

 

싹이 나던 자리에 물을 붓는다

꺼지지 않는 불이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나무의 씨앗들이 흘러내렸다

소매가 찰랑거리면 저녁도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아궁이는 무섭게 웅크리고 있었다

뜨거운 밥이 저녁을 데워주고 있었다

몇 술 뜨지도 못하고 누워야 했다

 

그의 이름을 발음하던 혀를 잡는다

이름은 그을음보다 멀리 있었다

 

단단하다는 것은 아프다는 것이다

매운 옹이에 불이 붙는다

 

불은 느 ㄹ그리운 방향으로 돈다

타버린 나무속에 산의 높이가 숨는다

 

춤사위가 끝나고

단단한 멈춤이 왔다

 

잠시 조용하기로 했다

 

 

 

 

 

당신의 분절성

 

 

사라진 것들을 깁기 위해 하류로 간다. 당신은 상류의 서식지만으로도 충분했다. 꽃은 피우는 것보다 떨어뜨리는 일에 집중한다. 중독은 표백의 또 다른 자세. 당신의 결백을 건사하는 일이 무겁다. 그래서 나는 자꾸 하류로 간다.

 

남은 꽃들 아래에 가서 하늘을 본다

당신의 등은 군데군데 푸르다

가끔 지나가는 벌들이 눈물이다

바람도 없이 어깨가 흔들린다

뱀처럼 내민 작은 잎이 내 얼굴의 얼룩을 핥는다

큰 죄가 빳빳해졌다

나는 휘어진 뱀이 된다

당신을 휘감는 단단한 뱀

 

내 몸의 넘치는 부분이 탄로 났다. 만약을 위해 다시 하류를 훑는다. 어떤 눈은 볼 수 없어 무심했고 어떤 입은 여울에서 맴돌았다. 이미 헐린 혀,

 

이끼가 자란다

슬픔은 녹색이다

 

혀도 없이 당신은 내 이름을 정확히 발음했다. 이름은 나를 가리키려 하고 우리는 책일질 시간을 배운다. 다리가 하류에 녹는다. 당신은 잎을 피우다 다시 떨어뜨리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나는 다시 하류를 생각한다. 전력을 다해 나를 녹일

 

 

 

 

 

완벽한 생산자

 

 

수척해진 피복은 눈의 자락을 허용하지 않았다. 도착할 곳이 있는 사람의 어깨엔 눈이 쌓이지 않는다고 동행하던 활엽이 속삭인다. 이름이 적힌 화분은 전신주의 긴한 높이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전선의 끝에 비행의 굉음이 뒤따른다. 활엽 또한 도착할 곳이 있었다. 현대는 제이름 하나로 추위를 견디기 쉽지 않다. 소비된 모두가 알고 있었다. 겨울이 끝난 사람에게 활엽은 사치일 뿐이다.

 

화분이 놓인 영안실은 따뜻했으면 좋겠다.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 속 바쁜 어깨 대신 흰 배가 둥실 떠오르면 둥근 생을 요약하는 목도가 있다. 한 자세로 마지막을 지킨 피곤한 의자들도 다리를 펴는 시간. 검은 동자를 먹어 치우기 전에 흰 얼룩을 붙잡는다. 먹다 남은 싱싱한 생각은 도마 위에서 토막 나고, 아무렇게나 검은 봉지에 담겨 또 도착할 곳을 찾을 것이다. 활엽이 고개를 돌리면 나는 홍적기의 고가리처럼 외롭다 속삭인다. 애인의 예쁜 배꼽에 정액이 또르르 구른다. 시야가 몇 번 접힌다. 팽륭은 무너진 행인의 자세에서 온다.

 

노을도 가쁜 숨을 톺았다.

 

 

 

 

 

 

흘레

 

 

 

혼자 먹지 마세요

각자 입구를 열고 식사합시다

 

매끈한 접시 위 쏟아지는 흰 색

식기는 바깥에서 안쪽 순으로 사용합니다

악수부터 속살까지, 과정은 비슷하죠

접시 테두리를 모두 닫아도 될까요

 

손에 쥔 금속성이 반짝 부끄럽습니다

그림을 그리듯 얼굴을 붉힙니다

 

속옷 안의 일은 아무도 몰라요

나는 우아하게 숨 쉬는 방법을 압니다

금속의 가랑이를 벌립니다

식사할 준비가 됐다는 뜻이죠

 

혀는 입보다 먼저 마중 나갈 거예요

후패한 숲의 입구에 줄을 서는데

겨울 내내 키운 자작도 다 세우지 못했는데

식사는 시작됐다는 뜻이죠

 

요리의 맨몸을 만질 때마다

장면이 바뀌고 화폭이 줄어듭니다

 

천장 위 거울의 맨몸도 먹는 일의 하나라서

입안 가득,

입구의 최댓값을 감상합니다

 

나이프와 포크를 교차해야죠

다음 음식을 주세요

모든 몸이 달콤합니다

 

다리를 꼬고 있는 건 접시를 치우지 말란 뜻입니다

 

다행히 양말은 신은 채로,

예의 같은 게 있으니까요

날개를 터는 붓이 있습니다

 

붓의 깊은 뿌리가 먼 곳의 혀가 될지도 모릅니다

여섯 개의 입을 가진 주사위를 꿈꾸죠

 

때론 접시의 입구를 열고

접시가 돌아가는 상상을 해요

 

무례하다 말할까요

모던하다 부를 까요

 

맛있게 먹는 데도 순서가 필요하대요

 

-흩어진 흰색을 치우다 식탁을 지웠다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건 개라고 부를까

허기를 채워도 네 발은 어렵다

목을 감싼 수건이 무릎으로 떨어질 때

그리다 만 그림을 생각했다

접시와 난 비밀이 생겼다

 

쥔 손을 펴면

나는 

이미 젖은 그림이죠

 

다리를 일자로 만듭니다

식사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바가모요*

 

 

심장을 놓고 가는 사람의 장소에는 삽 한자루의 높이만 있다

 

노동의 뼈대로 세워 올린 당신의 계단 위에 흰 꽃을 놓는다. 친애하는 건축물 앞에서 해명을 요구하는 사람들, 울음을 먹고 산 자들이 입주를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말랑말랑한 살들이 안긴다. 저녁의 위로는 짧다. 한 삽 한 삽 게워낸 당신의 연한 마음. 종일 모래에 섞고도 남았나요. 당신의 앉은 자리에 버무리다 만 선사의 가루가 떨어진다. 저 단단한 건축의 살에서도 당신 살냄새가 날까. 어저면 처음부터 화석이었던 당신. 고단한 모래가 씹힌다. 근사한 노래 같다.

 

나는 당신의 언어를 상속받지 않을래

 

연단 위 확성기를 든 자의 목소리는 차라리 먼 나라의 아리랑. 옥상 위에 올라 꽃비를 맞는다. 고복은 하늘이 내린 자의 습관이라는데 당신과 나는 족보가 없다. 울음이 반올림되면 고장 난 심장도 구호를 외칠, 

 

나는 팔을 조금 내려도 될까요

 

당신의 장소에 꽃힌 삽 한 자루. 유실물은 노래다. 이마가 두 번 놓아둔 심장에 닿는다. 술잔이 넘친다. 여전히 나의 혁명은 어설프다.

 

 

* 탄자니아의 프와니에 있는 도시. '심장을 두고 간다'는 뜻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