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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바닥분수 / 김백형

 

광화문 광장 한복판 혹등고래 한 마리가 누워 있다

대리석 따개비를 붙이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폭염에 숨어 있던 시민들 고래를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저것 봐봐 오대양 물을 잔뜩 채우고 있나봐

타들어가는 허공에 죽쭉 물줄기를 쏘고 있잖아

신이 난 아이들은 고래 등을 뛰어다니고

철퍽철퍽 물장구를 칠 동안

16차선 도로는 굽이치며 흘러간다

펄펄 끓는 태양 벗지 못한 갑옷 속에서

 세상 굽어보던 이순신 장군은

살 것 같다 살 것 같다 숨통을 트고

바다로 떠나지 못한 광화문 통째로 실어

출항을 준비한다

컨테이너 빌딩들 선적할 동안

티셔츠 젖은 연인들 포옹을 하고

넥타이 푼 아빠들은 구두를 벗어놓고

애엄마 웃음 따라 물 만난 고기들을 쫓는데

허공도 무지개를 걸어놓고 발라당 누워

어스름 땅거미를 기다린다

산호초 같은 남산 위로 물밀어올리는 밤바다

교차로 횡단보도를 정어리 떼처럼 건너는 회사원들

광화문은 그제야 물고기를 말려놓고

와이파이 데이터를 켜 세상 얘기에 귀 기울인다

정말? 눈 번쩍 뜨일 때마다 해파리 섬광처럼 별이 뜨고

쯧쯧 어떡하니, 머리가 한 짐 될 때 가로등이 부표처럼 둥둥 뜨고

그 사이 혹등고래 한 마리

지난한 오늘 하루를 유유히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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