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 이근화
오늘밤 한 권의 책이 나를 낳았다
피부와 머리카락이 없고
입술과 성기가 없는 어여쁜 사람
오늘밤 내가 태어나고 나는
한 권의 책을 네 옆구리에서 다시 찾아냈다
여러 개의 서랍 속에서
모두들 태어나고 싶은데
그게 나를 부르는 소리라니
안아줄 팔도 없이
달려갈 발도 없이
네가 나를 부른다
아무 냄새가 없는 꿈속에서
나는 괴로워한다
나의 탄생을
한권의 책을
그건 내가 너를 만나는 동안 만들어낸
길쭉한 귀 동그란 코 벌어진 입술
애써 얼굴을 지우며
한권의 책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게 너일까
한권의 책 속에서
정말 그렇게 살려고 내가 태어났다
네가 영원히 죽는다 해도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충북 보은문화원과 솔출판사가 주관하는 ‘제11회 오장환문학상’ 수상자와 ‘제7회 오장환 신인문학상’ 당선자가 발표됐다.
솔출판사는 ‘제11회 오장환문학상’ 수상자로 이근화(43) 시인을 선정했고 수상 시집은 지난 2016년 창비사에서 발간된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이다.
또 ‘제7회 오장환신인문학상’ 당선작으로 '파이프'를 쓴 신성률(49) 씨를 선정했다.
이번 오장환 문학상의 심사는 최정례 시인, 박수연 문학평론가, 유성호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수상 시집인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가 “오장환의 시 정신을 환기하면서 탁월한 시적 성취를 이룬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수상자인 이근화 시인은 “차분하면서도 이지적인 시선과 목소리로 삶의 낱낱 장면들, 시간들, 관계들, 풍경들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나직하게 표현한다"며 "잔잔한 일상 속에 잠긴 개별 존재자로서의 갈등과 사랑을 촘촘한 언어로 담아간다. 새로운 ‘일상시’의 개화”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오장환 신인문학상의 심사는 오봉옥·하재일·함순례 시인이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당선작 '파이프'등의 시편들은 구체적인 현실이 상상력과 만나 독특한 시적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생에 대한 관조의 경지까지 화자가 도달했으며, 그만큼 이 시가 환기할 수 있는 세계는 매우 암시적이며 이미지의 변주 또한 중층적이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오장환문학상 수상자인 이근화 시인은 1976년 서울 출생으로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단국대 국문과와 고려대 대학원 졸업했다. 시집으로 '칸트의 동물원'(2006), '우리들의 진화'(2009), '차가운 잠'(2012),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2016)가 있고 동시집으로 '안녕, 외계인'(2008), '콧속의 작은 동물원(2018)을 발표했다.
산문집으로는'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2015) 등이 있습니다.
이 시인은 윤동주상 젊은작가상(2009), 김준성문학상(2010), 시와세계 작품상(2011), 현대문학상(2013)을 수상한 바 있다.
신인문학상 수상자인 신성률 시인은 1970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오장환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창작기금 1000만 원, 오장환 신인문학상 당선자에게는 500만 원의 상금을 지급함며 시상식은 오장환문학제가 열리는 오는 19일 보은문화예술회관 앞 뱃들공원에서 열린다.
오장환 문학상은 보은군 회인면에서 출생해 한국 아방가르드 시단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오장환(1918∼1951) 시인을 기리기 위해 2008년 제정돼 최금진(1회)·백무산(2회)·최두석(3회)·김수열(4회)·최종천(5회)·윤재철(6회)·장이지(7회)·최정례(8회)·이덕규(9회)·박형권(10회)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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