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창백한 숨을 몰아쉰다. 뱃전을 넘나드는 파고에 수부들은 생의 얼룩을 찍는다 물보라가 하얗게 일어서고 포식자는 재빠르게 입을 벌린다 스키프가 바다를 향해 튀어 오르면 날카로운 굉음이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어군을 향한 투망은 저항을 끌고 간다 천 킬로미터의 그물은 이백 미터 깊이로 내려앉는다 커다란 원을 따라 돌고 도는 어족들 쏜살같이 흩어지다가 모여든다 교란하는 방향타가 빠르게 수면을 밀면 흩어진 대오는 고기 떼를 수습한다 미로를 유희하는 어망 아래의 상어 떼 조타명령을 내리는 선장의 목소리가 거칠다 선원들의 눈빛이 초조해지는 사이 먹잇감들은 그물 밑에서 술렁인다
제풀에 지친 목줄이 표류하면 스쿨피시는 포위망을 찢는다 어디론가 사라진 멸치 떼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노을 속 항구는 배의 항적을 따라 포말을 추적한다
나는 흑산도 근해에서 귀신고래를 잡으러 다녔다 작살을 잘 던지는 손가락을 갖기 위해 손가락 새를 찢었고 작살 촉에 베인 손등엔 그윽한 수풀로 새끼 낳으러 오는 귀신고래의 꿈을 넣고 다녔다
물가에 오래 살다보니, 아가미 가진 어족을 쉽게 잡았다 숨을 쫓아 더 깊은 숨을 불러들이듯 아직 건너가야 할 새벽 예리항을 지나가는 솟구치는 비와 함께 예鯢*를 생각한다 아물거리는 저 푸르스름한 짐승 흰빛에서 검은빛까지 보호색을 가졌다는데, 멀리서 몸을 적시면서 오는 저 파랑은 귀신고래
나는 피리로 고래 주파수를 끊어놓는 몰이꾼이면서 오늘 밤은 작살잡이, 고독과 패배 따위는 잊은 지 오래되었다
비 그치자 달이 잔물결로 귀신고래의 멱통을 비춘다 운이 좋았다 붉은 장미만 해안선까지 밀려왔다 밤새 두 눈을 감지 않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물 밖 세상에게 물었다
기껏 잡아놓은 것이 육체와 그림자 똑같은 귀신고래 출출함을 피로 달래고서야 눈알은 깨지지 않게 술잔으로 수염으로는 자와 나침반을, 척추는 절구와 공이로 깎았다 언제까지 나는 포경선을 파먹으며 삶을 영위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모두 헛된 일인데, 저것들의 말을 알아듣고 싶어 해안선을 친친 감는 밤 나는 저것들과 통하는 고래목目이 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 <고금주古今注>에 이르기를, 암컷을 예鯢라고 부르는데, 큰 것은 길이가 1천리이고, 눈은 밝은 구슬과 같다.
희준이 자기 행성으로 돌아간 뒤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일에서 문득문득 희준을 만납니다. 이렇게 아무데서나 희준이 보이니 이제 희준은 시공간을 자유롭게 다니는 몸을 가졌나 봅니다. 아득한 시간을 건너고 있는 제게 희준은 언제나 말합니다. 엄마,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그 말을 놓칠까 저는 자꾸 말에 기댑니다.
시 ?루루와 나나?를 발표하고 바로 떠났으니 희준은 지면에 실린 글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희준에게 좋은 기별이 되어 닿았을 겁니다. 수상 소식을 들은 희준은 어떠할까 생각합니다. 아마 많이 웃을 겁니다. 웃음이 많은 아이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겁니다.
선생님 시가 너무 좋아요. 매일 절절 생각해요. 제가 많이 사랑해요.
또 이렇게 말할 겁니다.
많이 모자란 제게 큰 상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잘. 하겠습니다. 라고요.
이른 나이에 자기 행성으로 떠난 아이를 깊이 품어주신 『시산맥』과 심사위원님께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김희준을 지구별에 오래 붙들어주신 모든 분께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시산맥작품상은 매호 시산맥시회 회원들이 추천한다. 2020년 여름호부터 2021년 봄호에 게재된 작품 중 제11회 시산맥작품상 후보에 오른 작품은 21편이었다. 그중 1차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16편, 2차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8편이었다. 본심을 맡은 강 수 시인과 김 륭 시인이 각각 2편의 작품을 최종심에 올렸으나 수상작을 선정하지 못해 시산맥작품상 기 수상자인 최정란 시인이 다시 작품을 추천, 다음의 3편을 최종 논의하였다.
이인주 「여우를 위로함」
진혜진 「빗방울 랩소디」
김희준 「루루와 나나」
이번 최종 예심에 오른 시들은 두 개의 전혀 다른 축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하나는 은유의 축을 기반에 둔 시들이고, 다른 하나는 환유의 축에 토대를 둔 시들이다. 은유의 축에 가까운 시들은 의미(메시지) 전달이 중심이 되고, 화자의 정서와 주제 의식이 비교적 명료하게 전달된다. 반면에 환유의 축에 가까운 시들은 시인의 무의식이나 자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파편화된 이미지와 초현실주의적 사유의 경향을 보여준다. 그동안 현대시의 흐름은 <은유적인 축>에서 벗어나 <환유적인 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인의 정신적 삶의 세계를 반영하기에는 <환유적 이미지>가 더 적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로움>이라는 미학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유적인 시>는 조금 낡고 고루한 느낌이 들고, <환유적인 시>는 그 표현상의 특징으로 인해 더 새롭고 참신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시의 본령이 ‘낯설게 하기’를 통한 인식의 새로움을 환기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이번에 최종 본심에 오른 시인들은 자신들만의 개성적인 방법으로 그러한 미학적 오체투지를 하고 있으며, 나름대로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최종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빗방울 랩소디> <루루와 나나> <여우를 위로함>이다. 이 중에서 환유적 축에 가까운 시들은 <빗방울 랩소디> <루루와 나나>이고 반면에 이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은유적 축에 가까운 시는 <여우를 위로함>이다.
<여우를 위로함>은 ‘여우’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상상력의 변주를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비교적 선명하게 잘 드러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우’라는 기호의 ‘의미’를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이러한 변주를 상상력의 차원으로 확장하여, 화자의 삶에 대한 고뇌와 트라우마를 이미지화함으로써 독자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 시의 미덕은 각각의 이미지들이 매끄럽게 연결되고 이어지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여우’로 표상되는 ‘여성성’에 대한 문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는 점에 있다.
<빗방울 랩소디> <루루와 나나> 두 작품은 시어들이 기호화되어 있고, 이미지들이 파편화되어 있다. 시어와 시어 사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의미 간극을 최대로 벌려 놓았기 때문에, 독자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 시들은 파편화된 이미지들을 통하여 독자를 화자의 내면 속으로 이끈다. 거기서 우리는 시인이 현재 처해 있는 실존적 문제에 대해 <낯선 깨달음>을 얻고, 우리들 자신의 실존적 문제로 확산시키며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
<빗방울 랩소디>는 “소나기 속의 소나기 나만 흠뻑 젖는다”와 같이 독자의 감성을 끌어들이는 흡입력 있는 이미지들이 매력적인 시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 ‘소나기’는 우리가 아는 소나기가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나기’ 속에 감춰져 있는 낯선 ‘소나기’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시 속에 형상화되고 있는 ‘빗방울’도 낯선 ‘빗방울’이다. 시인은 그것의 시니피에(기의)를 ‘죄의식’으로 전환시킨다. 그 결과 화자를 적시고, 밤을 적시는 비는 ‘죄’를 환기시키고, ‘죄의식’을 강화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아울러 온 세상은 ‘죄’로 젖어 버린다. ‘우산’ 하나로 어찌 그 죄를 피할 수 있으며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죄의식에 침윤된 화자는 스스로 죄수가 되고, 그 순간 세상은 감옥이 된다. 화자가 입은 옷은 죄수복이 되고, 화자가 치장한 액세서리는 수갑이 된다. 죄인으로서의 삶. 이러한 실존의식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해 준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소나기’와 ‘빗방울’이라는 이미지를 끈기 있게 천착해나가는 시정신과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루루와 나나>에 제시되는 이미지와 시어들은 ‘죽음과 공포’라는 시인의 ‘무의식/자의식’을 구체화하는 데 집중한다. ‘루루’와 ‘나나’는 화자의 분열된 자아로 읽히며, 그것의 통합을 추구하는 시인의 욕망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원적/대립적인 상상력을 통해 방황하는 시인의 내적/무의식적 갈등을 드러내면서, 끝까지 갈망하지만 성취하지 못하는 ‘자아의 합일’로 인한 고통을 처절하게 형상화해 내고 있다. 마지막 부분의 “나가자 나나, 돌아와 루루”는 그러한 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다.
‘나나’와 ‘루루’는 엇박자로 움직이고 있으며, 영원히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없는 실존의 간극을 형상화해주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영원히 ‘완성된 자아’로 합일할 수 없는 현대인의 실존적 고통을 잘 그려내고 있는 수작이다.
이런 각자의 특성을 가진 3편의 작품을 가지고 심사자들은 오랫동안 고심을 하였다. 3편 다 수상작으로 충분하였으나, 이번 수상작으로는 환유적인 의미망을 잘 표출한 <빗방울 랩소디>와 <루루와 나나>를 공동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수상자에게는 축하의 말을 아쉽게 탈락한 분께는 다음을 기약해 본다.
며칠 전에 집에서 가까운 산으로 단풍 구경하러 갔습니다. 그 너머로는 이름난 속리산도 있지만, 그날 갔던 산은 그리 높지 않고 혼자서도 걷기에 좋은 고적함이 있었습니다. 이왕 산에 들었으니 정상까지 올라가려고 했지요. 그런데 정상에 가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작년부터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왼쪽 무릎이 욱신거리며 오를수록 통증이 더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무리하면 무릎 관절염이 더 심해지겠다는 생각에 그만 포기했습니다. 그러고 8부 능선쯤의 바위에 앉아 가져간 물과 빵을 먹으며 한참 쉬었습니다.
산꼭대기가 아니더라도, 거기서도 겹겹의 산줄기들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멀리 제가 사는 동네도 보이고 그 앞 국도로 성냥갑만한 차들이 바삐 오가는 것도 보였습니다. 문득 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문학의 높이라면, 제 시쓰기의 자리는 어디쯤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가리키는 봉우리는 꼭 문학적 성취나 성공의 높이를 이르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는 쓰고자 하는 글의 목록이나 쓰는 글의 내적 열망의 크기를 가리키는데 더 가까운 말입니다. 요즘 제가 원고지앞에 옛 습작 시절의 추억과 열정을 자꾸 소환하는 것도 그 이유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제 위치는 지금 산 날망이 아니라, 오르는 비탈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처럼 무릎이 아프면 쉬엄쉬엄 올라야 하거나 아예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나이에 따른 퇴행을 넘어 무릎의 건강을 바라는 심정과 같이, 저의 ‘문학에의 등정’을 포기하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할 뿐입니다.
지난 몇 년간 시에 대한 고민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앞으로 제가 쓰는 시가 새롭지 않으리란걸 압니다. 그래도 계속 시를 쓸 것입니다. 그렇게 쓴 시가 평이하게 비쳐도 수긍하겠습니다. 제17회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저를 호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에 상을 주시는 것도, 비록 평이한 시가 나올지라도 거기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치열한 갱신의 정신으로 다가가라는 격려와 채찍의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심사해주신 선생님들께 시에 대한 더욱 부지런함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우리 인간의 세상에서 말처럼 굳세고 목질이 좋고, 말처럼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지닌 것은 없다. 말은 상냥하고 심지가 곧고, 언제, 어느 때나 정의로운 길로 인도하며,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 부모형제, 단군, 하나님, 도덕, 종교, 사상, 이념, 가정, 군대, 학교, 경찰, 회사, 국회, 정부, 진리, 허위, 선악, 남녀 등―, 이 모든 것은 말의 꽃이자 열매라고 할 수가 있다. 말보다 키가 크고, 말보다 힘이 세고, 말보다 빠르고, 말보다 높이 나는 것은 이 세계에 없다.
말은 명령하고, 말의 명령으로 우주가 탄생하고, 말은 모든 것들의 영원을 원하고, 이 생명의 숲을 가꾼다.
2019년은 『애지』 창간 20주년이며, 어느덧 제17회 애지문학상을 시상하게 되었다. 2018년 겨울호부터 2019년 가을호까지 발표한 작품들 중에 10편의 시를 후보작으로 선정했고, 그 결과 송찬호 시인의 「악어의 수프」와 이영식 시인의 「꽃의 정치」를 공동수상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박분필의 시인의 「자작나무 自敍傳」, 천양희 시인의 「어느 미혼모의 질문」, 이병률 시인의 「그 배를 타기는 했을까」, 고재종 시인의 「길에 대하여」, 김병호 시인의 「누가 괜찮아, 했을까」, 송승언 시인의 「나 아닌 모든」, 서효인의 「종각에서의 대치」, 김기택의 「발바닥」 등은 모두가 탁월한 시들이고, 대단히 안타깝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송찬호 시인의 「악어의 수프」는 사회적 천민들의 ‘눈물의 수프’이며, 그 ‘수난의 역사’를 우화적으로 노래한 명시라고 할 수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제국주의와 똑같고, 소수의 귀족들(자본가들)이 생산과 소비의 과정을 다 움켜쥐고, 소비자의 구매의사결정능력까지도 다 빼앗아 버린 사회라고 할 수가 있다. 그토록 사납고 포악한 악어는 육체노동을 하는 농민들이고, 이 농민들은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최고급의 농산물을 생산해내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고작 피곤하고 지친 육체와 가난과 병과, 심지어는 농약을 먹고 자살하는 것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 과정은 송찬호 시인이 역설한 대로 악어가 악어사냥꾼들을 위해 그토록 처절하게 수프를 끓이고, 끝끝내는 자기 자신의 육체마저도 먹잇감으로 바치는 것과도 똑같다. 하나도 희생정신이고, 둘도 희생정신이고, 이 악어들의 희생정신이 도시의 자본가들, 또는 도시의 고급문화인들의 삶의 토대가 된다.
모든 고급문화는 「악어의 수프」의 역사이며, 이 땅의 이름없는 사회적 천민들의 희생의 역사라고 할 수가 있다.
2019년부터는 애지문학상 문학비평부문을 다시 부활하여 시상하고자 했지만, 그러나 최종심에 올라온 후보작들을 보고 그만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비평가는 사상가이며, 그 모든 것을 주재하는 심판관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한국문학비평의 후퇴는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제17회 애지문학상 공동수상자인 송찬호 시인과 이영식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부디 더욱더 좋은 시 많이 쓰시고, 우리 한국어와 우리 한국인들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시기를 바란다.
오후 여섯 시가 유리창에 사선으로 걸린다 정면으로 응시했던 눈동자가 교신을 통해 바람개비를 접는 순간이다 귀로에 연착륙한 사람들은 여의주를 내어주고 고치로 들어간다 양력이 부족한 나는 네온이 범람하는 강 동쪽으로 바람을 쫓는다 어둠에 기댄 동체가 모자란 하루를 채우려는 것이다 마주치는 시선마다 뿔뿔이 흩어지고 분주한 걸음에도 호출에 닿지 못한 손가락은 전쟁 같은 공습에 하나둘씩 꺾인다 취한 유리 조각에 베어진 날개에서 바람이 새고 욕이 눌어붙은 가슴으로 구멍이 지나간다 시간을 속여 몇 장의 지폐와 바꾸려는 아우성에도 날개는 졸음에 겹다 발기되는 아침은 숙면의 또 다른 이름, 나의 숙면은 호출이 쉬고 있는 동안만 허락될 것이다 호출부호가 멈춰 설 때면 아랫목이 그리워져 귀로에 올라선다 먼동으로부터 삶을 복기하는 곳, 들숨을 벗고 옥탑방 거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외등이 날숨을 토해놓으면 도시의 일출과 함께 수많은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나의 일몰이 시작된다
오른손이 아프고 부터 왼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오른손 왼손을 평등하게 가지고 태어났으나 태어나면서 나는 오른손에 힘을 주며 세상을 잡았다 나는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잡았고 오른손으로 연필을 쥐고 공책에 글을 썼다 오른손으로 악수를 하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걸어 사랑을 맹세했다 우주의 무게 중심이 오른쪽이라 믿었으니, 全知者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라 가르쳤으니 왼손은 오른손에서 제일 먼 곳에서 잊혀져 있었다 오른손이 아프고 부터 왼손으로 세상을 잡는다 왼손으로는 지푸라기 하나 쉽게 잡히지 않는다 자꾸만 놓치고 마는 왼손의 未熟 앞에 오른손의 편애로 살아온 온몸이 끙끙거린다 오른손잡이도 왼손잡이도 折半을 잃고 산다 손은 하나다 두 손을 모아야 기도가 되듯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계간 ‘시와 시학’이 주관하는 제2회 영랑시문학상에 고 김남주(1946-1994)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평론가 염무웅이 올해 엮어 펴낸 시선집 ‘꽃 속에 피가 흐른다’이다.
고 김남주 시인은 혁명가라는 이름 못지않게 1970~1980년대를 풍미한 민중 계열의 대표적 시인이다. 그의 시는 민중운동의 뿌리였고 힘의 원천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시 세계를 일목할 수 있는 시전집이 없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아쉬워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0년이 지났어도 말이다. 물론 그는 생전에 여러 권의 시집과 선집-전집을 출간했다. 한 권의 유고 시집도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 옥중에서 밀반출된 시편들이고 그의 초기 시에서부터 죽을 때까지를 아우르는 전집은 아니었다. 유고 시집도 초기작 몇 편을 기존 시집에 가미했을 뿐 그의 문학을 파악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때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자 문학평론가인 염무웅 교수(영남대 독문과)가 김남주 시전집 "꽃속에 피가 흐른다"를 펴냈다. 염무웅 교수는 김남주가 등단할 당시 [창작과비평사] 편집자였다. 등단 무렵 김남주의 문학적 속내를 들여다보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김남주 문학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이유다. 초기시의 소박하고 우렁찬 목소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도 그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