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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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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선원수첩 외 50/ 윤유점

 

 

바다에서 자란 그대 사모아로 간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연어 떼

무법자 샤치를 밀쳐내며

바다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얼굴을 차갑게 덮치는 물결은 불안정하다

코파 높이만큼 치솟는 그물

참치 떼의 몸부림은 고물로 기울어진다

 

구름기둥이 몰려오는 스콜에서

해안을 덮치는 파고에 선체는 요동치고

만선을 꿈꾸는 선부의 생은 처절하다

폭풍으로 다가오는 넵투누스가 난폭해지고

힘겹게 버티는 난바다의 선부는 제 목줄을 감는다

갑판 위로 떨어지는 마지막 명령

가늘 수 없는 와이어의 긴장을 끊어 낸다

검은 대륙이 다가가면 수평선은 기울어지고

순간의 두 다리가 튀어 오른다

 

뭍으로 추방된 뱃사람의 끝없는 항진에

처녀항에서 들뜬 공포는 멈추지 않는다

그대 목발 짚은 바다는 두렵다

사멸의 시간은 긴 꼬리를 남기고 항해를 반납한다

불빛이 내려앉는 밤바다가 고른 숨을 쉬면

당신의 눈동자에는 진눈깨비가 흩날린다

 

 

 

 

 

 

사모아 해로 / 윤유점

 

 

바다는 창백한 숨을 몰아쉰다. 뱃전을 넘나드는 파고에 수부들은 생의 얼룩을 찍는다 물보라가 하얗게 일어서고 포식자는 재빠르게 입을 벌린다 스키프가 바다를 향해 튀어 오르면 날카로운 굉음이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어군을 향한 투망은 저항을 끌고 간다 천 킬로미터의 그물은 이백 미터 깊이로 내려앉는다 커다란 원을 따라 돌고 도는 어족들 쏜살같이 흩어지다가 모여든다 교란하는 방향타가 빠르게 수면을 밀면 흩어진 대오는 고기 떼를 수습한다 미로를 유희하는 어망 아래의 상어 떼 조타명령을 내리는 선장의 목소리가 거칠다 선원들의 눈빛이 초조해지는 사이 먹잇감들은 그물 밑에서 술렁인다

 

제풀에 지친 목줄이 표류하면 스쿨피시는 포위망을 찢는다 어디론가 사라진 멸치 떼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노을 속 항구는 배의 항적을 따라 포말을 추적한다

 

 

 

 

 

죽방렴 / 윤유점

 

 

들물 날물, 물 보러 간다

 

창선도와 남해도 사이 좁은 물길은

물살이 빠르다

 

지족해협에는 성질 급한 멸치들이 산다

 

물이 들면 멸치는 발통 활목 사이로 빨려들고

발통에 쳐 놓은 후리그물은 물살을 탄다

 

정치망 죽방렴은 한번 들어가면 나갈 수 없다

 

날물이다

발쟁이는 멸치를 건진다

비늘이 싱싱하다

멸치 삶는 막까지 거칠게 조류를 거슬러 간다

 

사리 떼가 되면

은백색 멸치가 유난히 반짝인다

 

물때를 모르고 느리게만 살던

당신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은발이다

 

 

 

 

[최우수상] 바다가 있는 풍경 외 119/ 서관호

 

[우수상] 북극의 신음 외 59/ 손은교

 

 

 

 

 

[우수상] 어물전 저울 외 53/ 박종익

 

 

한치 흔들림 없다

 

중력에 몸을 맞춘 그는

부둣가 차양 우산 아래 앉아

중력을 이고 생명의 눈금을 사고판다

저 평평한 피부, 주름살 한 줄 안 보인다

우주의 무게에 목숨이 얹어지면

눈금으로 화답하며

한 세상 각자도생, 너도 영이고 나도 영이다

어물전 앞에만 가면

우주의 무게를 더하려고

목이 아프게 타오르는 애간장

빈 바구니는 영에 가까웠지만

생명의 무게 앞에서 그녀는

우주의 주인이 분명하다

바구니를 대신해서

덤으로 따라가는

튼실한 날것 한 마리가

아줌마의 기분에 따라

우주 중심이 절로 왔다 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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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묘박지에서 외 50/ 조성범

 

[최우수상] 바다의 눈물 외 50/ 명인숙

 

[우수상] 바다, 생동을 게양하다 외 50/ 김찬식

 

[우수상] 남극의 눈물 외 49/ 강태승

 

[우수상] 호미곶 등대 외 49/ 차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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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사투기 외 57/ 박봉철

 

[장려상] 발해가 굽이쳐 오다 / 강대선

 

[장려상] 난파선을 만나다 외 59/ 유기환

 

[장려상] 산갈치와 어머니 외 50/ 유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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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윤슬의 푸른 수평선 외 50/ 배기환

 

 

 

 

[장려상] 섬의 소멸 외 50/ 고정국

 

 

노을 앞에 선다는 건 속울음을 삭히는 일

피 섞인 아우성으로, 분절 없는 아우성으로

수장을 치러낸 바다가 수평선을 닫을 때

 

겹겹이 둘러싸인 경계선을 다 지우고

먼저 간 술친구의 눈시울도 다 지우고

만종도 파장도 없이 섬이 혼자 저무네

 

당초 득음이란 제 목청을 버리는 것

눈 감아야 보인다는 개밥바라기 막내 별이

까맣게 타버린 수역에 글썽이고 있었네

 

 

 

 

[장려상] 독항선 항로를 찾아라 외 55/ 차달숙

 

[장려상] 할아버지 닮은 새우 외 50/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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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홍어 외 41/ 하종기(하린)

 

 

기억의 유속은 왜 이리 빠른가

끝까지 버티라고 참으라고 말한 사람까지 데려간다

그러니 새우깡에 소주를 마시며 밤새 과거를 더듬던

그는 한 마리의 홍어다

후일담을 위해 삭힐 대로 삭힌 분노의 맛

조절이 불가능한 어둠의 맛이 되어 취해간다

캄캄한 항아리 안에 날것의 기억 하나를 집어넣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그날의 심정, 한 줄기를 올려놓고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뚜껑을 닫고 지낸다

바깥은 내내 소란스러워도

어떤 기척도 쥐 죽은 듯한 시간 안쪽으로 흘러들지 못한다

 

잔인한 바다를 목격한 바람이 허청허청 지구를 떠돌다 돌아와

돌담집 마당에서 하룻밤을 묵어가려고 할 때

기억의 살점들이 들썩인 건 우연이 아니다

변질도 변절도 되지 않은 채 똬리를 틀고 있던 분노가

고개를 쳐드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럴 때 김빠진 소주는 맹물처럼 달다

녹아 없어진 줄 알았던 애간장에 피가 돌기 시작하면

삭힘은 썩음이 아니다 중독이 된다

 

남몰래 차려놓은 제삿밥을 먹으러 오는 자 누구인가

내장까지 통째로 넣고 끓인 톡 쏘는 맛 지닌

오욕이 둥둥 떠다니는 슬픔을 떠먹으려는 자 누구인가

바다와 대작하던 그의 눈빛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귀결점은 그믐을 닮은 한 사람 곁이지만

불콰하게 취한 시간과 시간이 만나

끝내 싱싱함을 잃지 않은 집착이 된다

숨죽였던 계절의 맨살은 다시 붉어지고

 

 

 

 

 

 

[우수상] 족보의 바다 외 62/ 태동철

 

 

바다의 본관으로 이어진 형통을 해서체로 새겨

족보를 묶었다

조상들 이름을 매듭 하나하나로

그물망 짠 가계도가 펼친다

태초에 가문을 이룬 신화 속,

시조로 유영하는 흰수염고래가

해저에 심장 고동을 퍼트린다

고요한 파문이 뼈대를 일으킨

푸른 연대기로 높아진 수심에서

물고기들이 가벼운 부력을 헤엄치며

부족의 언어로 부레를 팽창시킨다 어골문으로

기포를 피워 올려 은비늘 빛나는 물길을 닦는다

관상이 유전된 서로 닮은 초상화로

아가미들이 선한 표정을 짓는다

태풍에 끊어지지 않는 수평선으로

힘줄을 뻗친 유선형 몸이 실정맥 잔잔한 파도결을 일궈

거룩한 생명의 울림을 대물림한다

세세연년 형련이 도달한 수면에 수명으로

끈을 묶어 띄운 부표를 순수한 정신으로 건져 올린다

부모가 혈육에게 온 몸을 내주듯

그물망을 엮은 족보 갈피에서

활어들의 눈부신 서체를 읽는다

 

 

 

 

 

[장려상] 북항로 그 푸른 동강을 보다 외 40/ 김광자

 

[장려상] 귀로 외 39/ 김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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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동중국해의 눈물 외 60/ 박준열

 

[우수상] 바다를 집필하다 외 39/ 김경숙

 

[우수상] 붉은 해, 동쪽에 살고 있네 외 41/ 김미순

 

[장려상] 난바다1 41/ 서석조

 

[장려상] 해남일기 외 40/ 윤유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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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섬을 키우는 바다 외 51/ 김연우(김연옥)

 

[우수상] 203 부광호-어복(魚福) 42/ 박미정

 

[장려상] 양망 외 41/ 김태수

 

[장려상] 구멍삿갓조개 외 54/ 박옥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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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장성 일발 40/ 이석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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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고래목 외 42/ 이병일

 

 

 

고래목 수채 / 이병일


나는 흑산도 근해에서 귀신고래를 잡으러 다녔다
작살을 잘 던지는 손가락을 갖기 위해
손가락 새를 찢었고 작살 촉에 베인 손등엔
그윽한 수풀로 새끼 낳으러 오는 귀신고래의 꿈을 넣고 다녔다

물가에 오래 살다보니, 아가미 가진 어족을 쉽게 잡았다
숨을 쫓아 더 깊은 숨을 불러들이듯
아직 건너가야 할 새벽
예리항을 지나가는 솟구치는 비와 함께 예鯢*를 생각한다
아물거리는 저 푸르스름한 짐승
흰빛에서 검은빛까지 보호색을 가졌다는데,
멀리서 몸을 적시면서 오는 저 파랑은 귀신고래

나는 피리로 고래 주파수를 끊어놓는 몰이꾼이면서
오늘 밤은 작살잡이, 고독과 패배 따위는 잊은 지 오래되었다

비 그치자 달이 잔물결로 귀신고래의 멱통을 비춘다
운이 좋았다 붉은 장미만 해안선까지 밀려왔다
밤새 두 눈을 감지 않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물 밖 세상에게 물었다

기껏 잡아놓은 것이 육체와 그림자 똑같은 귀신고래
출출함을 피로 달래고서야 눈알은 깨지지 않게 술잔으로
수염으로는 자와 나침반을, 척추는 절구와 공이로 깎았다
언제까지 나는 포경선을 파먹으며 삶을 영위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모두 헛된 일인데,
저것들의 말을 알아듣고 싶어 해안선을 친친 감는 밤
나는 저것들과 통하는 고래목目이 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 <고금주古今注>에 이르기를, 암컷을 예鯢라고 부르는데, 큰 것은 길이가 1천리이고, 눈은 밝은 구슬과 같다.

 

 

 

 

 

 

 

 

[장려상] 임종간호 그 영생의 길 외 45/ 조영희

 

[장려상] 백파의 숲을 헤치며 외 40/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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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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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풍경에 기대다 / 송금례

 

 

나무가 제 몸에 색을 바르는 중이다

새소리 더해져서 풍경이 태어나는 불당 골에

마애불이 홀로 서서 기억을 지우고 있다

두려움을 모시겠다는 진언을 접하고 나서

말을 많이 한 죄로 사람의 입을 가둔 날부터

돌덩이 같은 질문이 몸이 되는 저 마애불

처음엔 가슴속 희망부터 버리기 시작했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생의 온기

그 곳에 다다르기 위해 이목구비 다 지우고

가끔씩 바람에 어깨를 쓸어내린다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는 계절은 혼자 돌고

당신이 버린 입술만 새가 되어 날아간다

입 없는 사람들의 몸 안에서 들끓는 소리를

하늘이 오독하는 사이

나무가 손을 터는 비탈길에서

노랑망태버섯이 성긴 마스크를 쓰고 시간을 염한다

몸에서 태어났지만 허공이 집인 슬픔

그 걸음이 잔잔하지만 발자국은 무겁다

발자국 찍힌 가슴을 열면 눈물이 돋아나고 있다

꿈처럼 멀어 지루해지는 지상의 시간

돌로 살기 위해 부처의 허물을 버리는 마애불

그 풍경에 기대면 눈물도 조금은 가벼워지고

뒤돌아 바라본 마을엔 얼굴 아닌 얼굴들이 떠다닌다

, 도처에 마애불이다

원시로부터 초대가 시작되었다

 

 

 

 

 

[최우수상] 바지랑대 / 박봉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긴 시선 팽팽한 빨랫줄의 현은 고용했네

칼날처럼

아슬아슬한 벼랑 사이로

거죽 같은 생, 무게 얹히고 탱탱 당겨진 올 울음, 죄다 당기던 외줄의 길

 

구불구불 길을 헤치며 곧추선 아버지,골다공증으로 숱한 역경과 좌절을 무릅쓰고 구멍구멍 벅찬 날숨과 들숨으로 부풀어 올랐다, 절벽인가 둥지인가 변신하는 공중의 깃발로 홀로 가지가 되고 횃대가 되어 수평을 켰을 때 펄럭이며 솟구친다 헛발을 물리치고 질긴 관절, 꽉 다잡은 약력은 삐걱대는 목숨 줄이었지만 기울지 않는 홰를 껴안고 머무를, 저리 단단한 우듬지가 되었을까

 

등 굽은 능선을 곧추세워

둥글어진 윤슬 투명하게 툭툭 현 소리로 울부집네

젖어 그늘진 세월

다 말리는, 반추의 한낮

질긴 숨줄은 기울어진 어깨너머

수평의 대를 쳐 받쳤네,쭉 펼 자리 뻗어 고단한 주름 물고 가며

저 땡볕에 시퍼런 힘줄에 노출되는

관절 마디마디 살타는 공명만 울릴 뿐 허술한 틈새를 가르고

한 치의 어긋나지 않았던 궤도

쨍쟁, 고스란히 굳어가는

비스듬한 혈기 한나절 찌르네.

 

 

 

 

[우수상] 물결 / 장정순

 

[장려상] 씀빠귀 / 이희경

[장려상] 외발수레 / 김미향

[장려상] 벵골만의 일몰 / 김태춘

[장려상] 붉은무늬 푸른나방 / 이혜정

[장려상] 파꽃 / 김연화

 

[특별상] 성에꽃까치둥지 /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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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루와 나나 / 김희준 

 

 

 

 

 

가위를 쥐어봐요
                                                        우리는 유전자가 편집된 채 태어난 최초의 쌍둥이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 미래형 맞춤 아기예요
                                                        말랑한 유리를 만지는 모순된 인류 미래의 심장입니다
                                                        크리스퍼 베이비(Crisper Baby)
                                                        바코드를 파란 엉덩이에 붙여도 좋겠습니다

 

 

어쩌다가 만들어졌어 루루는 득을 따지지만 나나는 우연이라 하지 8월은 어쩌다가 포도에게 빚을

져서는,여름을 담보한 과일이 속절없이 투명해져 가

 
루루, 무례한 씨를 가졌구나 당도 높은 태양이 바구니에서 후숙되는 중이야 다음 생은 입 없는 하

루살이가 좋겠어 평생 말을 연습하다가 끝내 소리할 수 없는 계절을 삼키다가 당신 이름이 유언이

되는 비루한 알몸이면 좋겠어

 
나나, 과일을 조심해야 해 파란 혈맥을 가진 여름을 함부로 만지는 건 위험해 태양이 파과하고 있어

바구니에 죽은 열기

가 번지고,

 
이리 와, 퍼즐을 맞추자
비어버린 부분을 맞춘 조각을 쏟아버렸지 이건 누가 잘라둔 장마일까

 
루루, 어쩌다가 태어났더라? 네가 죽는 걸 봐야겠어
여름이 오려둔 절기가 내리고 있어 바구니가 멍이 들고 우리는 금방 슬퍼지겠지
물컹한 태양을 만지다 보면 캄캄해지는 한쪽을 어떻게 해야 할까
포도 넝쿨에 매달린 우리는 알맹이만큼 다양한 안색이야

 
나나, 사랑스러운 말을 연습하자 우리가 우리라는 걸 알게 된 건 언제였더라 아파본 적 없는 루루가

아픔을 배우게 된 건 또 언제였지

 
넝쿨이 서걱거리는 저녁

 
정교한 탯줄을 빨아들이는 우리의 다음 생

 
나가자 나나, 돌아와 루루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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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희준이 자기 행성으로 돌아간 뒤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일에서 문득문득 희준을 만납니다. 이렇게 아무데서나 희준이 보이니 이제 희준은 시공간을 자유롭게 다니는 몸을 가졌나 봅니다. 아득한 시간을 건너고 있는 제게 희준은 언제나 말합니다. 엄마,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그 말을 놓칠까 저는 자꾸 말에 기댑니다.

 

?루루와 나나?를 발표하고 바로 떠났으니 희준은 지면에 실린 글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희준에게 좋은 기별이 되어 닿았을 겁니다. 수상 소식을 들은 희준은 어떠할까 생각합니다. 아마 많이 웃을 겁니다. 웃음이 많은 아이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겁니다.

 

선생님 시가 너무 좋아요. 매일 절절 생각해요. 제가 많이 사랑해요.

 

또 이렇게 말할 겁니다.

많이 모자란 제게 큰 상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 하겠습니다. 라고요.

 

이른 나이에 자기 행성으로 떠난 아이를 깊이 품어주신 시산맥과 심사위원님께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김희준을 지구별에 오래 붙들어주신 모든 분께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 김희준 엄마 강재남 두손

 

 

 

 

 

 

   빗방울 랩소디 / 진혜진

 

 

   우산이 감옥이 될 때

 

  예고도 없이 소나기가 쏟아진다 손잡이는 피하거나 피하지 못할 것에

잡혀있다

  비를 펼치면 우산이 되지만 우산을 펼치면 감옥

 

  귀고리 목걸이 발찌 팔찌에 수감된 몸, 쇠창살 소리가 난다

  소나기 속의 소나기 나만 흠뻑 젖는다

 

  보도블록 위에서 이질감이 된 빗방울, 절반은 나의 울음 나머진 땅의 심

장에 커다란 구멍을 낼 것이다

 

  버스정류장 앞 넘치는 웅덩이가 막차를 기다리는 새벽 2시의 속수무책

과 만나 서로의 발목을 확인한다

 

  빗방울 여러분!

  심장이 없고 웃기만 하는 물의 가면을 벗기시겠습니까

  젖어서 만신창이가 된 표정을 바라만 보아도 되겠습니까

 

  어떤 상실은 끝보다 시작이 더 아프다

  누가 누구를 용서해야 끝이 날까

 

  검은 우산과 정차하지 않는 버스 바퀴와 폭우가 만들어 내는 피날레

 

  밑줄을 긋듯 질주하는 차가 나를 후경에 밀치고 사라질 때

 

  젖어서 죄가 되는 빗방울

  용서가 잠겨있는 빗방울

 

  우산은 비를 따라 용서 바깥으로 떠난다

 

 

 

 

포도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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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산맥작품상은 매호 시산맥시회 회원들이 추천한다. 2020년 여름호부터 2021년 봄호에 게재된 작품 중 제11회 시산맥작품상 후보에 오른 작품은 21편이었다. 그중 1차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16, 2차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8편이었다. 본심을 맡은 강 수 시인과 김 륭 시인이 각각 2편의 작품을 최종심에 올렸으나 수상작을 선정하지 못해 시산맥작품상 기 수상자인 최정란 시인이 다시 작품을 추천, 다음의 3편을 최종 논의하였다.

 

이인주 여우를 위로함

진혜진 빗방울 랩소디

김희준 루루와 나나

 

이번 최종 예심에 오른 시들은 두 개의 전혀 다른 축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하나는 은유의 축을 기반에 둔 시들이고, 다른 하나는 환유의 축에 토대를 둔 시들이다. 은유의 축에 가까운 시들은 의미(메시지) 전달이 중심이 되고, 화자의 정서와 주제 의식이 비교적 명료하게 전달된다. 반면에 환유의 축에 가까운 시들은 시인의 무의식이나 자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파편화된 이미지와 초현실주의적 사유의 경향을 보여준다. 그동안 현대시의 흐름은 <은유적인 축>에서 벗어나 <환유적인 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인의 정신적 삶의 세계를 반영하기에는 <환유적 이미지>가 더 적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로움>이라는 미학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유적인 시>는 조금 낡고 고루한 느낌이 들고, <환유적인 시>는 그 표현상의 특징으로 인해 더 새롭고 참신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시의 본령이 낯설게 하기를 통한 인식의 새로움을 환기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이번에 최종 본심에 오른 시인들은 자신들만의 개성적인 방법으로 그러한 미학적 오체투지를 하고 있으며, 나름대로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최종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빗방울 랩소디> <루루와 나나> <여우를 위로함>이다. 이 중에서 환유적 축에 가까운 시들은 <빗방울 랩소디> <루루와 나나>이고 반면에 이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은유적 축에 가까운 시는 <여우를 위로함>이다.

 

<여우를 위로함>여우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상상력의 변주를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비교적 선명하게 잘 드러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우라는 기호의 의미를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이러한 변주를 상상력의 차원으로 확장하여, 화자의 삶에 대한 고뇌와 트라우마를 이미지화함으로써 독자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 시의 미덕은 각각의 이미지들이 매끄럽게 연결되고 이어지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여우로 표상되는 여성성에 대한 문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는 점에 있다.

 

<빗방울 랩소디> <루루와 나나> 두 작품은 시어들이 기호화되어 있고, 이미지들이 파편화되어 있다. 시어와 시어 사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의미 간극을 최대로 벌려 놓았기 때문에, 독자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 시들은 파편화된 이미지들을 통하여 독자를 화자의 내면 속으로 이끈다. 거기서 우리는 시인이 현재 처해 있는 실존적 문제에 대해 <낯선 깨달음>을 얻고, 우리들 자신의 실존적 문제로 확산시키며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

 

<빗방울 랩소디>소나기 속의 소나기 나만 흠뻑 젖는다와 같이 독자의 감성을 끌어들이는 흡입력 있는 이미지들이 매력적인 시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 소나기는 우리가 아는 소나기가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나기속에 감춰져 있는 낯선 소나기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시 속에 형상화되고 있는 빗방울도 낯선 빗방울이다. 시인은 그것의 시니피에(기의)죄의식으로 전환시킨다. 그 결과 화자를 적시고, 밤을 적시는 비는 를 환기시키고, ‘죄의식을 강화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아울러 온 세상은 로 젖어 버린다. ‘우산하나로 어찌 그 죄를 피할 수 있으며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죄의식에 침윤된 화자는 스스로 죄수가 되고, 그 순간 세상은 감옥이 된다. 화자가 입은 옷은 죄수복이 되고, 화자가 치장한 액세서리는 수갑이 된다. 죄인으로서의 삶. 이러한 실존의식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해 준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소나기빗방울이라는 이미지를 끈기 있게 천착해나가는 시정신과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루루와 나나>에 제시되는 이미지와 시어들은 죽음과 공포라는 시인의 무의식/자의식을 구체화하는 데 집중한다. ‘루루나나는 화자의 분열된 자아로 읽히며, 그것의 통합을 추구하는 시인의 욕망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원적/대립적인 상상력을 통해 방황하는 시인의 내적/무의식적 갈등을 드러내면서, 끝까지 갈망하지만 성취하지 못하는 자아의 합일로 인한 고통을 처절하게 형상화해 내고 있다. 마지막 부분의 나가자 나나, 돌아와 루루는 그러한 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다.

 

나나루루는 엇박자로 움직이고 있으며, 영원히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없는 실존의 간극을 형상화해주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영원히 완성된 자아로 합일할 수 없는 현대인의 실존적 고통을 잘 그려내고 있는 수작이다.

 

이런 각자의 특성을 가진 3편의 작품을 가지고 심사자들은 오랫동안 고심을 하였다. 3편 다 수상작으로 충분하였으나, 이번 수상작으로는 환유적인 의미망을 잘 표출한 <빗방울 랩소디><루루와 나나>를 공동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수상자에게는 축하의 말을 아쉽게 탈락한 분께는 다음을 기약해 본다.

 

심사위원 강수(시인. ), 김륭(시인), 최정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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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 : 정은주

 

- 부산출생

- 2020년 <멀구슬> 창간 동인지로 작품활동 시작

- 제6회 하동 국제 디카시 공모전 수상

- 제1회 이병주 소설 낭독대회 대상

- 전자시집 <꽃보다 꿈> 출간

- 현재 시 낭송가 및 심리상담사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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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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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스프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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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의 수프 / 송찬호

 

 

인구 3만의 도시 남쪽에 있는
늪에 악어가 살고 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늪은
도시가 팔을 쭉 뻗어
대지에 끓이는 프라이팬 같다

도시는 자주 악어사냥꾼들을 늪에 보낸다
그때마다 악어는
수프를 끓여야 한다
사냥꾼들에게 먹일 수프를 끓여야 한다

악어는 온몸으로 수프를 휘젓는다
머리로
네 다리로
치명적인 억센 꼬리로
사냥꾼들이 도착하면 수프도 완성된다

사냥꾼들은 늪을 샅샅히 뒤진다
총알 구멍 난 늪의 침대를 누군가 가리킨다
놈이 여기 누워있다 도망친 게 틀림없군
사냥꾼들은 웃는다 소리친다 퍼먹는다 맛있는 늪의 수프를!

사투 끝에 악어 한 마리가 늪 밖으로 끌어 올려진다
눈이 가려지고
주둥이가 묶이고
악어의 머리에 무거운 돌이 놓여진다
그대로 악어는 끌려간다
악어를 짓누른 그 돌이 도시의 기초가 되었으니…

사냥꾼들이 떠난 후 늪의 수면으로 천천히 악어가 모습을 드러낸다
늪은 이제 고요하다
악어는 다시 수프를 끓인다
먼 피의 강으로부터
악어의 딸들이 돌아올 시간이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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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며칠 전에 집에서 가까운 산으로 단풍 구경하러 갔습니다. 그 너머로는 이름난 속리산도 있지만, 그날 갔던 산은 그리 높지 않고 혼자서도 걷기에 좋은 고적함이 있었습니다. 이왕 산에 들었으니 정상까지 올라가려고 했지요. 그런데 정상에 가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작년부터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왼쪽 무릎이 욱신거리며 오를수록 통증이 더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무리하면 무릎 관절염이 더 심해지겠다는 생각에 그만 포기했습니다. 그러고 8부 능선쯤의 바위에 앉아 가져간 물과 빵을 먹으며 한참 쉬었습니다.


산꼭대기가 아니더라도, 거기서도 겹겹의 산줄기들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멀리 제가 사는 동네도 보이고 그 앞 국도로 성냥갑만한 차들이 바삐 오가는 것도 보였습니다. 문득 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문학의 높이라면, 제 시쓰기의 자리는 어디쯤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가리키는 봉우리는 꼭 문학적 성취나 성공의 높이를 이르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는 쓰고자 하는 글의 목록이나 쓰는 글의 내적 열망의 크기를 가리키는데 더 가까운 말입니다. 요즘 제가 원고지앞에 옛 습작 시절의 추억과 열정을 자꾸 소환하는 것도 그 이유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제 위치는 지금 산 날망이 아니라, 오르는 비탈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처럼 무릎이 아프면 쉬엄쉬엄 올라야 하거나 아예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나이에 따른 퇴행을 넘어 무릎의 건강을 바라는 심정과 같이, 저의 ‘문학에의 등정’을 포기하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할 뿐입니다.

 

지난 몇 년간 시에 대한 고민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앞으로 제가 쓰는 시가 새롭지 않으리란걸 압니다. 그래도 계속 시를 쓸 것입니다. 그렇게 쓴 시가 평이하게 비쳐도 수긍하겠습니다. 제17회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저를 호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에 상을 주시는 것도, 비록 평이한 시가 나올지라도 거기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치열한 갱신의 정신으로 다가가라는 격려와 채찍의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심사해주신 선생님들께 시에 대한 더욱 부지런함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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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우리 인간의 세상에서 말처럼 굳세고 목질이 좋고, 말처럼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지닌 것은 없다. 말은 상냥하고 심지가 곧고, 언제, 어느 때나 정의로운 길로 인도하며,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 부모형제, 단군, 하나님, 도덕, 종교, 사상, 이념, 가정, 군대, 학교, 경찰, 회사, 국회, 정부, 진리, 허위, 선악, 남녀 등―, 이 모든 것은 말의 꽃이자 열매라고 할 수가 있다. 말보다 키가 크고, 말보다 힘이 세고, 말보다 빠르고, 말보다 높이 나는 것은 이 세계에 없다.

 

말은 명령하고, 말의 명령으로 우주가 탄생하고, 말은 모든 것들의 영원을 원하고, 이 생명의 숲을 가꾼다.

 

2019년은 『애지』 창간 20주년이며, 어느덧 제17회 애지문학상을 시상하게 되었다. 2018년 겨울호부터 2019년 가을호까지 발표한 작품들 중에 10편의 시를 후보작으로 선정했고, 그 결과 송찬호 시인의 「악어의 수프」와 이영식 시인의 「꽃의 정치」를 공동수상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박분필의 시인의 「자작나무 自敍傳」, 천양희 시인의 「어느 미혼모의 질문」, 이병률 시인의 「그 배를 타기는 했을까」, 고재종 시인의 「길에 대하여」, 김병호 시인의 「누가 괜찮아, 했을까」, 송승언 시인의 「나 아닌 모든」, 서효인의 「종각에서의 대치」, 김기택의 「발바닥」 등은 모두가 탁월한 시들이고, 대단히 안타깝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송찬호 시인의 「악어의 수프」는 사회적 천민들의 ‘눈물의 수프’이며, 그 ‘수난의 역사’를 우화적으로 노래한 명시라고 할 수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제국주의와 똑같고, 소수의 귀족들(자본가들)이 생산과 소비의 과정을 다 움켜쥐고, 소비자의 구매의사결정능력까지도 다 빼앗아 버린 사회라고 할 수가 있다. 그토록 사납고 포악한 악어는 육체노동을 하는 농민들이고, 이 농민들은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최고급의 농산물을 생산해내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고작 피곤하고 지친 육체와 가난과 병과, 심지어는 농약을 먹고 자살하는 것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 과정은 송찬호 시인이 역설한 대로 악어가 악어사냥꾼들을 위해 그토록 처절하게 수프를 끓이고, 끝끝내는 자기 자신의 육체마저도 먹잇감으로 바치는 것과도 똑같다. 하나도 희생정신이고, 둘도 희생정신이고, 이 악어들의 희생정신이 도시의 자본가들, 또는 도시의 고급문화인들의 삶의 토대가 된다.


모든 고급문화는 「악어의 수프」의 역사이며, 이 땅의 이름없는 사회적 천민들의 희생의 역사라고 할 수가 있다.

2019년부터는 애지문학상 문학비평부문을 다시 부활하여 시상하고자 했지만, 그러나 최종심에 올라온 후보작들을 보고 그만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비평가는 사상가이며, 그 모든 것을 주재하는 심판관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한국문학비평의 후퇴는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제17회 애지문학상 공동수상자인 송찬호 시인과 이영식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부디 더욱더 좋은 시 많이 쓰시고, 우리 한국어와 우리 한국인들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시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글 반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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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방식 / 이종원

 

 

1

흙에서 나온 울음이 날을 세운다

오랫동안 숨죽였던 갈구

단층을 벗겨낸 쇳덩이는

부엌에서 거실을 지나 현관으로 나선다

자르고 베고 나누는 것에서

하늘로 오르거나 바다를 가르거나

그의 초식은 진화하기 시작한다

찌르고 베는 변이로부터

칼의 원초적 사명을 지켜내기 위해

오른손이 거친 외침을 내려친다

오만이 무릎 꿇는 순간 

두들겨 맞은 단면에서 소리가 피어난다 

 

2

칼에 쓰러진 나무로부터 풀잎까지

종이가 되지 못한 이름을 기억하리라

허공에 적어 내려간 녹슨 글자들이 

지면을 관통하여 가슴으로 굴러가는

칼의 꼬리가 꿈틀거린다

같은 음을 내거나 화음으로 섞일 때

활자에 무릎 꿇는 칼의 방식은 

덤과 같아 보인다

등을 보이고 누웠어도 예리한 각도

전파를 타고 날아온 구호는 

살처럼 생생하다

칼은 언제나 서 있는 것은 아니다

 

3

피 또는 투쟁에서 벗어나고자 

숫돌에 마름질한 귀 기울여

수 천 도 불꽃에 지는 법을 배우라 했다

선 이쪽과 저쪽에서 대립하는 시선들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다

휘어지지 않으려는 수식

검기를 갈피에 감추고 저울을 불러낸다

양날을 두들겨 숙성된 바늘을 뽑는 일

저울추가 제대로 좌표를 읽는다면

칼집에 꽂혀있는 칼은

열리지 않아도 해의 눈처럼 빛날 것이다

차가운 서술에도 불구하고

쇠 울음은 가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이륙을 허가하다   

 

내 활주로는 늘 짧아서

꿈이 이륙하지 못하고 자주 떨어졌다

자소서로 출발한 걸음은

출입문에서 넘어지기 일쑤였다

나의 섬은 점점 쪼그라들어

길은 눈앞에서 자주 멈추었으며

가시 울타리를 넘어간다 해도

바다 직전에 날개를 접어야 했다

해의 눈빛을 놓치고 

바람의 손과 미끄러지고

돌아서는 길은 절벽처럼 고요했다

태어난 곳이 섬이었으니 언제까지나 섬 소년이었고

뚝뚝, 흙수저는 걸음도 느렸다

비 내리는 날에는 먼저 울었으며

구르다 떠난 바퀴 자국 끝

닳아빠진 운동화 한쪽만 덩그러니

멍투성이 하늘이 통곡처럼 나부꼈다

얼마나 추락을 암기하고 

승모근에 지식을 쌓아야 이륙할 수 있을까

구멍 난 심장으로 볕을 나르고

걷어낸 상처에 바람을 발라

수백 번 지우고 쓴 시뮬레이션 복기가

비상활주로 문을 열었다

또 다른 바람이 폭풍우를 가져간 후

오늘 나의 이름이 불리었다

 

 

 

 

 

 

나의 일몰                   

 

오후 여섯 시가 유리창에 사선으로 걸린다 정면으로 응시했던 눈동자가 교신을 통해 바람개비를 접는 순간이다 귀로에 연착륙한 사람들은 여의주를 내어주고 고치로 들어간다 양력이 부족한 나는 네온이 범람하는 강 동쪽으로 바람을 쫓는다 어둠에 기댄 동체가 모자란 하루를 채우려는 것이다 마주치는 시선마다 뿔뿔이 흩어지고 분주한 걸음에도 호출에 닿지 못한 손가락은 전쟁 같은 공습에 하나둘씩 꺾인다 취한 유리 조각에 베어진 날개에서 바람이 새고 욕이 눌어붙은 가슴으로 구멍이 지나간다 시간을 속여 몇 장의 지폐와 바꾸려는 아우성에도 날개는 졸음에 겹다 발기되는 아침은 숙면의 또 다른 이름, 나의 숙면은 호출이 쉬고 있는 동안만 허락될 것이다 호출부호가 멈춰 설 때면 아랫목이 그리워져 귀로에 올라선다 먼동으로부터 삶을 복기하는 곳, 들숨을 벗고 옥탑방 거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외등이 날숨을 토해놓으면 도시의 일출과 함께 수많은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나의 일몰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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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희망 / 복연금

- 거미 한 마리

 

 

고층 아파트 계단 꼭대기에

집 한 채 지은 거미 한 마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나

바람에 떠밀려 왔나

 

마실 이슬 한 방울도

향긋한 들꽃내음도

눈부신 햇살도 느끼지 못할텐데

 

가늘게 짜놓은 거미줄이 흔들린다

어두컴컴한 사각 모서리 끝에서

생존의 찌가 흔들린다

 

깔끔하기로 소문난

1901호 젊은 새잭 눈에 띈 날

죽을힘을 다해 지어 놓은 무허가 집 한 채

 

한순간 먼지털이에

울울 감겨 사라지고

놀란 거미 한 마리

계단 난간 사이로

몸을 숨긴다

 

거미 한 마리

등짝에 희망 하나 들쳐 업고

아래층으로 아래층으로

기어 내려간다

 

 

 

 

 

 

[우수상] 어느 날 / 이재홍

 

 

찬란한 해 뜸에도

몸둥이는 굼벵이가 되고

두발은 지네다리가 되어 부산을 떨지만

갈 길은 멀다

 

해지면 검은 어둠이 허망해져

땅만 보고 퇴근 하지만

서산은 언제나 해를 기다리느라

저 만큼이다

 

가까워지지는 않지만 만정이 서린 동네 어귀를 돌아설 때

어둠은 도베르만처럼 달려오는 데도 매미는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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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고물선풍기 / 김금숙

 

 

다 안다고 하셨다

 

툭 누르면

돌아가는 것이라고,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할머니가 말을 건다

 

고맙다,

고생이 많다,

에고 좀 쉬어야지,

 

귀도 있고

눈도 있고

얼굴도 있다는 것을

 

다 알았다고 하셨다

 

 

 

 

 

 

까치밥 / 김금숙

 

 

누가

할아버지 까만 차에

똥을 사놓고 갔다

 

바로 위

전봇줄에 앉은

까치밖에 없다고

 

감나무 곡대기

빨갛게 익은

 

모조리

따버리겠다고

긴 막대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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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시인들이 온다… “잘 가요, 젊고 예쁜 시인들이여”

‘시골시인’이라는 이름을 단 일군의 시인들이 출현했다. 석민재 유승영 서형국 권상진 권수진 이필이 그들로 ‘시골시인-K’라는 제목으로 합동 시집을 출간

new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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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오른손잡이의 슬픔 / 정일근

 

 

오른손이 아프고 부터 왼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오른손 왼손을 평등하게 가지고 태어났으나
태어나면서 나는 오른손에 힘을 주며 세상을 잡았다
나는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잡았고
오른손으로 연필을 쥐고 공책에 글을 썼다
오른손으로 악수를 하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걸어 사랑을 맹세했다
우주의 무게 중심이 오른쪽이라 믿었으니, 全知者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라 가르쳤으니
왼손은 오른손에서 제일 먼 곳에서 잊혀져 있었다
오른손이 아프고 부터 왼손으로 세상을 잡는다
왼손으로는 지푸라기 하나 쉽게 잡히지 않는다
자꾸만 놓치고 마는 왼손의 未熟 앞에
오른손의 편애로 살아온 온몸이 끙끙거린다
오른손잡이도 왼손잡이도 折半을 잃고 산다
손은 하나다 두 손을 모아야 기도가 되듯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오른손잡이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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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청 주최하고 영랑기념사업회와 계간 '시와시학' 공동주관하는 제4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김남조 씨(본상)와 정일근 씨(우수상)가 선정됐다.

 

수상 시집은 김 씨의 '영혼과 가슴'(새미), 정 씨의 '오른손잡이의 슬픔'(고요아침)이다.

 

시상식은 제1회 영랑문학제가 개최되는 오는 29일 오후 7시 전남 강진읍 영랑 생가에서 열린다.

 

이 상은 영랑 김윤식(1903-1950)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올해부터는 고향인 전남 강진군의 지원으로 본상과 우수상으로 나눠 각각 상금 1천만 원과 300만원을 시상한다.

 

 

 

영혼과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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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묻은 손 / 이준관

 

 

내가 사는 아파트 가까이
버려진 땅을 일구어 사람들은 밭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촘촘히 뜨개질을 하듯
심은 옥수수와 콩과 고추들.
꿀벌이 날아와 하늘로 꽁지를 치켜들고
대지의 꿀을 빨아들이고,
배고픈 새들은 내려와
무언가를 쪼아먹고 간다.

아파트 불빛처럼 외로운 사람들은
제 가슴의 빈터를 메우듯
호미를 들고 와 흙을 북돋워주고 풀을 뽑는다.
옥수수 잎에 후드득 지는 빗방울은
사람들의 핏방울로 흐르고,
저녁에는 푸른 별 같은
콩이 열린다.

흙 묻은 손으로
옥수수와 콩과 고추와 나누는
말없는 따뜻한 수화.
사람들의 손길 따라
흙은 선한 사람의 눈빛을 띤다.

가을이면 사람들은 흙 묻은 손으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고,
흙에서 태어난 벌레들은
밤늦게까지 식구들의 옷을 짓는
재봉틀 소리로 운다.

슬프고 외로울 때면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가는 사람들.
겨울에는 시리고 적막한 무릎을 덮는
무릎덮개처럼
눈이 쌓인다.
사람들이 일군 마음의 밭에.

 

 

 

천국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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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시와 시학사가 주관하는 제3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자로 이준관(56) 씨가 선정됐다. 수상작 '흙 묻은 손'세상의 슬픔과 따뜻함을 함께 보는 '순한 사람의 눈빛'이 있다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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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시와 시학이 주관하는 제2회 영랑시문학상에 고 김남주(1946-1994)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평론가 염무웅이 올해 엮어 펴낸 시선집 꽃 속에 피가 흐른다이다.

 

고 김남주 시인은 혁명가라는 이름 못지않게 1970~1980년대를 풍미한 민중 계열의 대표적 시인이다. 그의 시는 민중운동의 뿌리였고 힘의 원천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시 세계를 일목할 수 있는 시전집이 없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아쉬워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0년이 지났어도 말이다. 물론 그는 생전에 여러 권의 시집과 선집-전집을 출간했다. 한 권의 유고 시집도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 옥중에서 밀반출된 시편들이고 그의 초기 시에서부터 죽을 때까지를 아우르는 전집은 아니었다. 유고 시집도 초기작 몇 편을 기존 시집에 가미했을 뿐 그의 문학을 파악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꽃 속에 피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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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때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자 문학평론가인 염무웅 교수(영남대 독문과)가 김남주 시전집 "꽃속에 피가 흐른다"를 펴냈다. 염무웅 교수는 김남주가 등단할 당시 [창작과비평사] 편집자였다. 등단 무렵 김남주의 문학적 속내를 들여다보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김남주 문학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이유다. 초기시의 소박하고 우렁찬 목소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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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천무 / 송수권

 

사랑이란 말 함부로 쓰지 말자
인연이란 말 함부로 쓰지 말자
만남이란 말 함부로 쓰지 말자

오직 한 사람을 찾아 밤하늘 은하계를 떠돌았다
대기권을 진입하면서 불타버린 돌맹이 하나로
그녀는 이 지상에 나를 찾아왔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그녀도 똑같이
우리 고향 성두리 뒷산에서 한 나무꾼에 의해
발견되었고, 한 일본인 손에 들려 두원운석이란 이름으로
도쿄 제국 박물관에 누워 있다가 환갑을 넘기고서야
이렇게 현해탄을 넘어왔다.

삐뚜름한 모자를 쓰고 금빛 단추를 달았던 흔적,
백조좌의 황금 수레를 타고 몇억 광년을 떠돌며
황금 수레의 말채찍을 휘둘렀던 흔적,
하늘과 숲과 내를 대질렀던 그녀의 함성,
그녀 또한 이 지상에 서서
밤하늘을 노래하는 나를 만나러 왔다.

사랑이란 말 함부로 쓰지 말자
인연이란 말 함부로 쓰지 말자
만남이란 말 함부로 쓰지 말자

 

 

 

파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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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영랑기념사업회(회장 조만진)는 제1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송수권(63.순천대 문예창작과 교수)씨를 선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영랑시문학상은 영랑 김윤식 선생(1903~50)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뜻에서 한국 시문학 발전에 기여한 시인에게 주는 상으로, 첫 번째 수상자인 송수권 씨를 선정했다

 

송 시인은 전남 고흥 출신으로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75문학사상신인상 산문에 기대어로 문단에 데뷔했다.

 

시집으로 꿈꾸는 섬’ ‘파천무’, 산문집 쪽빛 세상’ ‘남도의 맛과 멋등 다수가 있으며 금호문화예술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25일 전남 강진문화회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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