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대상] 장마 / 김향숙

 

 

국숫집 마당에 젖은 국수가락이

하얀 기저귀처럼 흔들린다

 

햇볕이 나면 보송보송 말려

시장 골목 구멍가게로 배달한다

국수 값 몇 푼으로 유지하는 가족의 생계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국수가락이 젖는 날에는

아버지의 가슴에도 장대비가 내렸다

한숨으로 허기를 달래고

마르지 않는 궁핍으로 앞치마를 동여맸다

 

장마가 지면 근심도 길어져

밀가루를 온몸에 묻히고 국수를 뽑던 가장의 빈자리에

고단했던 시간들이 방울방울 맺혀 있다

국수가 길어지던 날 빗물에 풀려 버린 끈

주인 없는 앞치마가

빈 벽에 걸려 비바람에 날리고 있다

 

하늘에서 가늘고 긴 소면이 내리는 날

물의 가락을 뒷산이 후루룩 말아먹는다

장마 때마다 국수를 드시는 아버지

산소 앞에 식구들을 불러놓고

잔치국수를 대접한다

 

국수 위로 쏟아지던 눈부신 햇살이

널린 국수 가락 사이를 비집고

숨바꼭질하던 아이들 웃음소리가

국물 위로 떠오르는 밤

 

눅눅한 국수가락이 기억 속에 출렁이고

퉁퉁 불은 빗소리가 뒤척이는 밤을 적신다

 

 

 

 

[최우수상] 머리없는 불상 / 강태승

 

 

경주 남산에는 머리 없는 불상이 법을 설한다

천 년을 살았기에 만 년도 너끈히 살 수 있는 

머리가 있어도 없어도 불(佛), 나비 날아들고

잠자리가 모가지에서 눈깔 데굴데굴 굴리거나

살모사가 날름거려도 자세를 고치지 않는다

 

참새 개구리 까마귀가 앉아도 나무라지 않는

계절의 잎사귀가 쌓여도 뒤척이지 않는

머리를 누군가 치우고 허공을 얹어 놓았다

해와 달이 머리에 앉으면 환해지는 삼라만상

별이 뜨면 불상은 아침까지 반짝인다

 

불개미와 송충이가 발자국만 남기거나

이내빛 물들어도 내용이 변하지 않는다

시방은 가을이라 단풍이 불상의 머리 

구름모니불 바람모니불 서릿발 솟은 목에 

첫눈이 쌓이면 잠시 눈사람이 되는 불상 

 

머리 없으니 분노 슬픔 기쁨도 없겠다?

사대에서 버려져 산이 된 불두(佛頭)를

산영(山影)이 간직하려 하지만 검어지는 능선

으름 머루 솔방울 도토리도 불상이 되는

노루와 고라니도 즐거운 무두불이 지상에 산다.

 

 

 

 

 

[우수상] 숲의 기억법 / 김영욱

 

 

 



[장려상] 돌의 연대기 / 김순철

 

[장려상] 햇살의 차가워질 때까지 / 하태희

 

[장려상] 그녀의 몸속에 바다가 산다 / 최정희

 

 

 

 

[장려상] 고깔제비꽃  /김숙희 
 
 
흥부전같은
먼 먼 이야깃구절을 들추다보면
남녘은 내게 처마 하나 제공해 주지
내 지붕은 보라색
낡은 슬레이트 처마밑은 웬지 빛이 바래
아파트 실외기는  주추를 틀기에는
너무 간당 간당해 그렇다면
공중재비처럼 한바퀴 돌아버릴 수도 있지
나는 봄마당을 아우르는 봄의 전령사  
 
황토바람이 말을 몰아도
벌 나비 의 군무가 구름 떼 같이 몰려와도
보랏빛 지붕하나면 봄 날을 쓸 수 있어 
 
봄바람에 꽃잎들이 흩어지고
꽃샘바람이 게걸스레 탄주를 튕길 때 쯤  
 
들녘은 아픔이 흩날리지
아픔은 희망의 남쪽
따사로운 빛이 주추를 올리는 봄 날
보랏빛 지붕아래서
은밀한 침묵이 움트고 있어
처마가 자라도록
노란부리의 언어가 생동하고 있어 

 

 

 


 

 

 

 

+ Recent posts